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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Mar 16. 2024

패키지 여행의 피날레, 자율강제쇼핑

베트남 침향, 위즐커피, 잡화점

아침에 일어나 숙소 주변 구경에 나섰다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밤 늦은 시간이었고, 이 날은 이전 며칠과는 다르게 일정이 많지 않았다. 너무 수동적으로만 여행한 것 같아, 오늘은 아침 조식을 빨리 먹고 대교 건너 다낭 길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하는 베트남 사람들과 한국어가 적힌 까페

오토바이 가득한 다리를 건너느라 호흡기 건강이 조금 나빠지는 기분이었지만, 건너편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투어 버스가 이끄는 데로만 움직이던 발길을 땅에 붙이고 직접 걸어보니 옛스럽기도하고 투박하기도 한 거리가 비로소 느껴졌다. 이게 진짜 베트남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구나 실감이 났다.


 구글 맵에서 평점이 좋은 로컬 카페를 찾아 방문했다. 이 곳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며 베트남 라이프는 꽤나 루즈하다는 걸 느꼈다. 남자들이 우루루 모여서 카페에 앉아서 끝이 없는 수다를 떨질 않나, 카페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다가 갑자기 한 테이블에 합석해서 대화를 나누질 않나. 한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나는 얼죽아답게 아아를 시켰다. 베트남 스타일 커피 답게 엄청나게 진한 맛이었는데, 한 잔을 다 마시자니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천천히 녹아내리는 얼음의 시간을 만끽했다.

갑자기 후두둑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옷이 살짝 젖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런 짧은 비가 내릴 땐 대부분 우산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워낙 비가 자주 오는 나라여서 그런지 개의치 않는 듯도 했다.


오전에 간단히 다낭 성당과 한시장을 구경했다. 관광지로서는 마지막 코스다.

핑크 성당이라고 불리는 다낭 성당

관광이라고 해봤자 성당 앞에서 가족별로 사진을 찍고 한 장에 천원을 내고 인화해주는 게 전부이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건물 색깔이 이뻐서 사진은 잘 나온다.

다낭 성당에서 도보로 조금 이동하면, 야시장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한시장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먹거리부터 의류, 신발까지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특히 크록스 신발이 주요 판매 품목인데, 신발 뿐 아니라 지비츠까지 우리나라에 비해 아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나이키, 아디다스 등 이런저런 브랜드의 상품이 가득 널려져 있다. 수많은 상품들이 전시된 빼곡한 공간에 한 30분쯤 머무르고 나니 나중엔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고 과일 무한 뷔페 레스토랑(?!)을 찾았다. 배는 불렀지만 얼리지 않은 망고와 패션프룻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게 감동이었다. 다만, 나이 앞자리가 달라자고 나서는 위장 용량이 크게 감소하여 크게 뽕을 뽑진 못했다. 아쉬웠다.


이제 본격적인 패키지 필수코스 쇼핑 3회의 시작이다. 제일 먼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멀끔한 건물 앞에 내렸다.’침향‘ 판매 센터다.

아쉽게도, 이 건물 안에 들어가서 남긴 사진이 한 장도 없는데 아마 한시장에서와는 조금 다른 결의 ‘혼미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침향은 침향나무가 스스로 상처난 부분을 치유할 때 생성하는 물질이며 항염 및 혈액순환.. 하여튼 뭐에든 좋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고? 이곳 어느 방에 들어가 침향에 대해 1시간 넘게 강의를 들었기 때문. 말잘하는 강사(또는 영업직원)이 무대에 나와 동양고전에 언급된 침향, 침향의 희소성, 베트남 침향의 특징, 침향의 효능 등을 각종 시청각 자료를 통해 학습시켜준다. 노니는 한물 지나간 트렌드이긴 하다며, 침향에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화법 또한 인상적이었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패키지 팀 가족 간의 조용한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팀이 꽤나 소규모였기 때문에 어느 편에서든 적당량 구매를 해줘야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암묵적인 부담이 지펴지고 있었던 것. 강의는 말미로 치닫고 있었고 오메가3도 녹이지 목한 스티로폼 알갱이를 침향추출액이 완전히 분해해 물로 다시 되돌리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뤘다. (속으로 ‘저거 먹으면 오히려 몸에 안좋은 거 아니야?’)


하지만 상당히 비싼 가격에 어느 팀도 선뜻 사겠다는 액션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사는 약간 격양된 듯한 태도로 이런 기회는 더이상 없을 거라며 영업적인 태도로 우릴 끝까지 압박해왔다. 이걸 한달 먹고 LDL 수치가 낮아지지 않으면 환불해준다는 회유책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슬슬 짜증과 함께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 동안 가이드는 얌전한 모범생처럼 문 앞 자리에 앉아 진지한 경청 모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이 일과 상관없는 관찰자라는 듯이.


모두가 애매한 고민에 빠졌다. 첫 글에서 밝혔듯 우리 아빠는 최근 혈관계 건강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의 딜 끝에 약간의 할인을 받고 끝내 침향을 구매하시고 말았다. 강사의 설명이 너무 절절해 돈만 많으면 속는 셈 치고 한번 먹어보지 뭐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영 찜찜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강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른 집에까지 침향 세트를 판매하고 나서야 홀가분한 얼굴로 우리를 나가게 해주었다. 지져스!

아빠의 침향 3개월치
족제비 똥 커피 위즐 커피

다음은 위즐 커피 판매점. 이미 침향센터에서 약간 마음이 상하긴 했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기대에 부풀어 여기서만큼은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겠지 했다. 여기서도 비슷하게 한국인 바리스타(?)가 여러 종류와 향의 커피를 내려주며 위즐 커피가 생산되는 방식, 특징 등을 설명해준다. 베트남의 ‘핀’이라는 커피 기구로 내려 먹어야하는 분쇄 제품과 코코넛가루나 시나몬과 배합된 믹스커피가 있었는데, 달달하기도 하고 나쁘지 않은 맛에 모두들 부담 없이 구매를 했다. 가격이 엄청 저렴하진 않았지만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니 지갑이 비교적 쉽게 열렸다.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는 콩 원두로 된 제품도 사왔는데, 주력 제품이 아니라 그런지 그건 정말 별로였다. 그 외에도 커피스크럽, 바디크림 등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충격적인 장어포

마지막은 종합 잡화점이었다.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규모가 꽤 큰 곳이었는데, 각종 먹거리, 미용, 장식품까지 정말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마지막 쇼핑이라   많은 물건을 사진 많았지만, 여기서 샀던 제품이 가장 가성비와 만족도가 높았다. 나는 건조동결된 과일 칩 여러개를 샀는데, 지인들이나 회사 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좋고 맛고 좋았다. 이거나 잔뜩 사올걸 싶었다. 그렇게 장렬한 자율강제 쇼핑은 끝이 났다.


원래는 미케비치 해변가에서 보이는 큰 불상이 있는 영흥사가 마지막 코스였지만, 국가 행사 때문에 입장이 불가하다고 가이드가 전해왔다. 대신 사랑의 부둣가에서 자유 시간을 갖고, 마지막 저녁 식사인 노니보쌈을 먹었다. 그러고도 비행시간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추가 비용을 내고 마사지를 또 받게 되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나는 이제 마사지 자체가 물려서 안받고 싶었지만 딱히 할 일도 없는지라 가볍게만 받겠다고 했다.

하트 모양의 등이 켜진 부둣가와 여기까지 진출한(?) 남산 자물쇠

깊은 밤이 되어서야 마사지 샵에서 나온 우리 패키지 팀은 비행 일정이 달라 일찍이 인사를 하고 작별했다. 가이드는 더 늦은 비행 일정인 다른 가족과 함께 선택관광을 하나 더 하러 가기로 했고, 현지인 가이드가 공항까지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며칠 전 한국인 가이드가 케익과 함께 사다 준 친절한 과일바구니는 먹어질 기회도 없이 며칠 동안 짐이 되었다. 공항 체크인 전까지도 먹을 일이 없어 그렇게 다시 현지인 가이드 손에 들려졌다.

‘미안한데, 이거 먹을 수가 없어서.. 좀 버려주세요’

그는 언제 그걸 버렸을까? 그게 다낭과의 마지막 안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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