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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Mar 11. 2024

산꼭대기 테마파크 바나힐 가던 날

안개 그윽한 산 정상을 지키는 바나힐

가이드에게 미리 부탁한 꽃다발

이전 편 이야기인 호이안에 다녀온 날이 아빠 생신이었다. 미리 가이드에게 축하를 하고 싶은데 사례를 하겠으니 간단하게 꽃과 케익을 준비해줄 수 있는지 하고 부탁을 해두었었다. 가이드는 한국에서의 자기 직업이 파티플래너였다면서, 흔쾌히 우리 사진을 인화해서 케익 위에 꽂을 수 있도록 토퍼까지 준비해드리겠다고 말하는거다.


나룻가에서 소원 등까지 띄우고 빡센 스케줄로 늦은 밤 숙소에 도착했는데, 사진의 꽃다발과 큰 케익을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바탕 밤늦게 생일파티를 하고, 한국 돈으로 얼마쯤을 준비해서 건네려는데, 이 가이드가 한사코 돈을 안받겠단다.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덥썩 받기가 민망한가보다 하며 헤어질때쯤 약간의 팁을 주면 되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안되는 거였다. 나중에 보니 역시 세상에 공짜 없다는 옛 격언을 되새기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자세한 이야기는 에필로그에서 적어볼까 한다.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뻥뚫려 보이는 좋은 날씨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점심은 불고기전골과 새우면사리
한국식 반찬과 절대 빠져선 안되는 모닝글로리 무침

나는 가리는 음식이 있거나 까다로운 입맛을 주장하는 편은 아닌 사람임에도, 패키지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식사 메뉴이다. 자유여행으로 다녀가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맛집을 찾아 비교적 저렴한 예산으로 그럴듯한 베트남 음식을 여러 끼니로 돌려먹을 수 있는 것 같은데, 패키지에서는 호텔 조식을 제외하고 현지식 1끼와 한식 1끼를 배정해놓기 때문에 다소 한정적인 식당을 방문하게 된다. 대부분 뷔페식으로 반찬 같은 것을 무제한 먹을 수 있게 되어있는 곳이라 푸짐하긴 했으나, 특별한 대식가가 아닌 이상 메리트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저 새우면은 베트남에서 꽤 유명한 라면이라는데, 먹어보니 정말 기본만을 갖춘 맛이 났다. (MSG향과 얇은 면 ㅎ)

마늘과 특유의 소스로 무친 나물무침 같은 맛의 모닝글로리는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들 좋아한다는데, 나 또한 한국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맨 밥에 저것만 먹어도 너무 맛있어서 메인 메뉴를 먹기도 전에 배가 차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한국에서도 찾아먹고 싶은 맛!

바나힐은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프랑스인들이 해발 1487m 산 위에 만든 휴양지로 시작되어, 현재는 선월드 그룹에 의해 운영되는 테마파크, 즉 놀이공원 같은 곳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 곳인데, 이 이케이블카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케이블카 타러 가는 길 풍경


케이블카 속도가 상당히 빠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길이 한참 걸렸다. 가족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얼마나 하늘 위 높이 떠있는지 감탄하며, 공포감을 느끼며 천천히 산 중턱으로 올라간다. 높이에 따라 날씨가 계속 바뀌기도 했는데, 첫 번째 목적지인 골든 브릿지부터는 안개가 가득해지더니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는 그 높이 차가 실감이 날 정도로 귀가 꽉 막혀왔다. (아무리 침을 삼켜도 해제되지 않는 기막힌 상태..)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아마 이 케이블카를 타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안개 자욱한 골든 브릿지

모든 여행자들이 한번 1차 목적지로 골든 브릿지를 찍고, 다같이 우르르 사진도 찍고 간다. 금색 빛깔의 다리를 누군가가 손으로 감싸고 있는 구조인데, 석조물의 규모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광경이다. 비에 젖는걸 싫어하는 나와 가족들은 인증샷만 후다닥 찍고 퇴장했다.

본격 테마파크 입성

테마파크 쪽으로 올라가면 곳곳이 유럽 거리들처럼 지어져있는데, 아마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네들 나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내려고 미니미 버전의 프랑스를 이 산꼭대기에 지어둔 것 같다. 테마파크 지하에는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곳과 상점들이 있는데, 우리 가족 중 놀이기구를 탈 나이의 사람들은 없어서 줄곧 지상층에만 머물렀다. 자유시간이 2시간이 채 되지않아, 가장 높은 정상 지점을 들렀다가 고풍스러운 바나 호텔 1층의 카페에 들러 목을 축였다. 축축하고 추워진 날씨 때문에 네 명 모두 왠지 모르게 지쳐버려 앉아서 쉬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자 평균 나이가 높은 탓이다. 한국인답게 각자 와이파이에 접속해 온라인 상태로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


다시 다낭으로 돌아올 때쯤엔 퇴근 시간대였다.

다낭 퇴근길/ 초록색 헬멧이 오토바이 택시

베트남 사람들은 정말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닌다. 오죽하면 오토바이 택시까지 있을까. 모르는 사람의 등짝을 붙잡고 달려야 한다니,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아슬아슬해보인다. 오토바이 불법 운행도 많고 안전 이슈로 인해, 정부 정책으로 대중교통 수단을 확대하고 몇년 후면 오토바이 운행을 하지 않도록 할 계획이란다. 대교 위를 빼곡하게 메운 오토바이와 함께 달리는 기분 나쁘지 않은데 하며 괜히 아쉽기도 하고, 실효성이 있는 정책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 많은 타던 오토바이들은 어떡하라고?


여행자의 버스에 타 앉아, 이 곳의 사람들과 풍경들을 유리 사이에 두고 내려다 보는 일은 너무나 한계가 많은 경험이다. 어떤 장소에 가봤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고, 하루를 보냈다는 것만으로는 여행 장소를 진정으로 아는 데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극도의 효율이 주는 공허함, 바나힐에서 보낸 하루 끝에 주어진 감상이다.

이런 회의감에 젖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다낭에서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공감을 한 순간이 있었다. 바로 합법적인 불장난! 주말마다 용다리라고 불리는 대교에 불꽃쇼가 진행되는데, 이걸 보러 베트남 전역에서 여행을 오기도 한단다. 용처럼 생긴 저 다리에 일정 시간에 특정 주기로 용 입에서 진짜 불이 쏟아져나오는데, 이걸 보기 위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다리 끝쪽에 모여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별 것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 구경이 생각보다 놀라웠던 것은, 불을 내뿜을 때마다 멀리까지 저 화염의 뜨거움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주 단순하고도, 자극적인 눈요기를 모두가 같은 얼굴을 하고 기다리는 경험은 사촌들과 폭죽놀이를 함께 하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불길에 얼굴이 후끈하다가, 마음이 뜨끈하게 녹아내리는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꿈 속 장면처럼 이 날이 생생하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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