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디 UnD Mar 02. 2024

호이안의 등불과 나룻배의 낭만

오행산, 바구니배 체험, 호이안 구시가지 구경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오행산이 다음 코스였다.

대부분의 소개글에서 볼 수 있는 오행산 입구샷

이곳은 동굴처럼 안쪽이 습하고 물이 떨어지는 재질의 공간이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어둡고 축축한 곳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취향이다.)그나마 좀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입구 쪽에 우리가 흔히 아는 12지 동물의 토르소가 조각되어 있는데, 한국의 12지에 포함된 토끼 대신 ‘고양이’가 있다는 점!

산 안쪽 공간은 천국으로 가는 길, 지옥으로 가는 길이 나뉘어져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그냥 오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지옥이었고,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 같은 미끄럽고 높은 계단을 힘겹게 올라야만 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천국의 입구인 마냥 2,3층 높이에 난 구멍은 누가 뚫은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천국 가는 길이 어디 그리 쉬우랴! 이 즈음에서 마침 비까지 흩뿌려 계단은 곧장 죽음으로 향하는 길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는 천국 가기를 쉬이 포기했다.


안쪽에는 사당처럼 향을 잔뜩 꽂아놓은 큰 향로가 있었고, 짙은 향 냄새가 가득했다. 점점 몽롱해지는 기분에 가이드의 설명은 별스럽지 않게 귓가를 지나갔다. 패키지 여행 코스에서 필수적으로 들르는 곳인 것 같았지만, 큰 감흥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도로에 소가 있는 진귀한 광경

오행산을 떠나 이동하는 길에 중앙선 연석 위에 소가 풀을 뜯는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듯 편안하게 대담한 식사를 하는 소를 보고 놀라자, 가이드가 설명해주길 베트남에서는 딱히 소를 묶어 두지도 않고 풀어 키운단다. 생김새를 보면 알 수 있듯 베트남에서 키우는 소는 대부분 물소인데, 노동력 측면을 포함한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아주 편안(?!)하게 대해주고 키운단다. 사고로 진흙뻘 밭에 자동차가 빠졌을 때도 사고처리반이 도착하기 전에 동네 주민이 물소에 밧줄을 달아서 꺼내기도 했다는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 코스는 바구니배 마을이다. 이 코스는 참으로 독특하기도 하고, 호불호가 강한 활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대부분 다낭 여행을 처음 오게 되면 이 코스를 밟게 되는데, 내가 선택한 패키지처럼 포함이 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옵션으로 40-50불 정도에 추가 관광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 가이드가 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며 심리적으로 떡밥을 깔아준다.


베트남전쟁 시절 고엽제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한국군인들과 이곳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들이 일반 사회에서 외면당하면서 자기들만의 마을을 형성해서 살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혜택을 거의 입을 수 없는 소수자인 이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관광 사업의 일부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아주 미묘하고도 신기한 지점에 있는 장소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체험이 어떤 것인지 상세히는 살펴보지 않고 갔었기에, 현장에서야 바구니배 체험의 실체를 알게 되었긴 했었다. 한번 겪어본 사람들은 패키지 여행에 무조건 포함된 이 코스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둘 셋씩 짝을 지어 한 바구니배에 운전자와 함께 탑승을 하게 되는데, 탑승구부터 귀를 터뜨리는 한국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미 여기서 약간 기가 빠질 수 있다.) 좁은 수로를 지나 넓은 강쪽으로 나가면서 바구니배 운전자들이 각자 자기의 실력을 뽐내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물에 빠질 것처럼 아찔하게 빙글빙글 배 돌리기, 커다란 공연용 스피커를 얹어놓은 섬 같은 부표 위에 서서 트로트 라이브 공연하며 춤추기, 커다란 그물 펼치며 던지기 등을 하며 팁을 받아내는 게 이 활동의 핵심이다. 30-40분 정도 진행되는데, 나중에는 팁을 주지 않으면 무한정 라이브 쇼를 들어야하기 때문에 못이긴 척 팁을 내게 되는게 묘미다(?). 1달러 짜리를 내겠다고 하면 그걸 물에 적셔서 바구니배 노에 떡하니 붙여서 전달하는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니, 공연자에게 팁을 주는 형태이긴 하지만 아마 1/n로 나눠갖는 체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가까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구경도 하면서 떠들썩하게 기부를 하는 활동이라고 평가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뱃사공들과 공연자들 모두 굉장히 밝고 활기찬 성격이라, 같이 한국어로 몇 마디 어설프게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유쾌하긴 했다. 살아오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텐션과 에너지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크게 나오기도 했다.

배를 타고 호이안으로 이동

광란의 바구니배 체험이 끝나고, 통통배까지는 아니지만 매연을 눈코로 계속 마시면서 가야하는 약간은 어설픈 관광 배를 타고 호이안 구시가지로 이동한다. 페리를 좋아하는 타입이 아닌 나는 약간 괴로웠는데, 이 때 쯤 가이드는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잭프룻이라는 과일을 사서 간식으로 선물해 주었다.

 호이안 구시가지에 도착하니, 풍경부터 다낭과는 뭔가 조금 달랐다. 아니? 여기야말로 사람들이 꿈꾸는 베트남 갬성 물씬 풍기는 곳인 것 같은데? 하며 놀라움을 느꼈다.(지금까지는 무엇을 했던 것인가 약간의 자괴감도 들 뻔 했다.) 아직 채 어두워지지도 않았지만 등불이 참 고풍스럽게 빛나는 아름다운 마을이 호이안이었다. 여기저기 예쁜 카페들과 포토 스팟이 눈에 띄었다. 아, 근데 나 패키지여행이었지. 자유시간을 그렇게 오래 가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 느낌이 좋았다.

도착하자마자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베트남의 부자 떤키의 집을 방문했다. 방문하는 워낙 사람이 많아 한 줄로 서서 쭉 집을 관통하는 형태로 구경을 했다. 호이안까지 배를 타고 온 강이 '투본강'인데 이 집안에 홍수가 날 때마다 수위를 표시해둔 것이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 사람의 키 높이보다 훨씬 더 높게 여러 수위가 표시가 되어있었던 걸 보니, 여기는 홍수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나란 사람이 지난 역사나 유물에 대해 워낙 관심이 없다 보니, 떤키의 집에서는 아무런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새삼스레 나라는 사람의 꼿꼿함에 대해 크게 실감하게 된다.

여기저기 예쁜 등불 장식이 되어있고,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많았다/ 재치있는 디자인의 티셔츠를 파는 가게

호이안이 다른 도시들과 조금 다른 것은, 아시아계가 아닌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왠지 짧게 관광하러 온 것처럼 보이지 않고, 여기서 생활하고 있는 듯한 바이브를 풍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속 사정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OO 한달 살기’ 같은 개념이 서양인들에게도 유행 중인건지 하며 궁금해졌다. 조금씩 둘러보면서, 호이안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어 빠르게만 흘러가는 현 시대에서 오리엔탈한 감성을 누리면서 슬로우한 라이프를 실천하기에 좋은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패키지 여행으로서가 아닌 자유 여행으로서 한번 더 와볼 수 있을까? 기대섞인 설렘이 마음 속에 스쳐갔다.

베트남의 전통모자 농라 모양으로 만든 등

낮의 색감도 멋지지만,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을 수록 호이안의 매력은 더 풍성해져갔다.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환하게 빛나는 등이 각자의 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빛깔의 등은 멀리서보면 함께 어우러져 묘하게 외롭고 쓸쓸한, 동시에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밤의 공기를 좀 색다르게 경험해볼 수 있는 인력거 체험. 이 활동은 패키지에 필수로 포함된 항목이다보니 대기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우리 팀의 차례가 돌아왔다.

씨클로 대기 장소의 무인 서점 가판대
달려 달려~ 혼란스러운 거리 속 능숙하게 운전하시는 씨클로 드라이버님

걸어다니면서 구경하는걸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씨클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관광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타보니 적당한 온도, 바람 속에서 속도감 있게 풍경들을 지나치는 기분이 꽤 좋았다. 재미있는 것은 골목이 워낙 좁다보니 이 거리만의 룰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아슬아슬 휘청휘청 위험해보이면서도 절대로 사고를 내지 않는 씨클로 드라이버님들의 연륜이 느껴졌다. 경적이 따로 없기 때문에 입으로 "삡삡!" 뺍뺍!" 하며 정신 팔린 보행자들에게 경고를 주면서 달리는데, 저렇게 하루 종일 하면 목이 아프지 않을까 오지랖섞인 걱정이 들었다. 약 15분 정도 되는 짧은 드라이브였지만 운전 실력 하나 만큼은 정말 최고셔서, 팁 4달러가 아깝지 않았다.

씨클로 체험을 마치고 다리를 건너가다 보니 강 위에 띄운 나룻배에서 소원초를 밝히는 사람들이 하나 하나 빛나고 있는 듯 했. 다리 반대편에는 이쪽 저쪽으로 야시장이 펼쳐져있었다. 씨클로를 기다리다보니 저녁 시간이 훌쩍 넘어서, 우선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뷔페식으로 재료를 골라 철판에 볶아주는 몽골리안 비프가 저녁 메뉴! 계란으로 만든 얇은 면을 좋아하는 나는 저녁 밥을 2그릇이나 먹어버렸다. 배를 든든히 하고 야시장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비교적 흥정에 잘 응해준다는 호이안 야시장에서 실컷 에누리도 해보면서 한국에 가지고 돌아갈 선물을 잔뜩 사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렴한 가격을 더욱 흥정해서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에그누들을 넣은 몽골리안 비프 / 과일바구니를 긴 장대에 지고 돌아다니면서 파는 상인들 / 야시장에서 산 마그네틱 기념품들

마그네틱을 붙여놓을 마땅한 곳이 없었기도 하고 여행 때마다 마그네틱 기념품을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얼마 전에 고모네 집에 놀러갔다가 본 캔버스 작품을 보고 본 후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고모네 거실 벽에는 세계 각국에서 산 마그네틱들이 아기자기 예쁘게 붙여진 하얀 캔버스가 예술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오! 아이디어 너무 좋은데요, 하면서 남편과 함께 다음 여행부터는 마그네틱을 모으자고 다짐했었던 것이다. 아직 충분히 갯수가 모이지는 않았지만 포켓몬 도감을 채우듯 앞으로의 여행지에서도 바지런히 마그네틱을 수집할 생각이다. 얼른 완성되어 캔버스에 붙일 날을 기다리며!

강물 위의 나룻배와 소원초

원래 호이안에서 나룻배를 탈 계획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빛의 풍경에 홀려버린 우리 가족과 패키지 팀은 추가로 소원초 띄우기까지 함께 하자는 데 마음이 모였다. 구명조끼를 입어야해서 인물 사진을 예쁘게 찍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잔잔한 물결 위에서 타오르는 색색깔의 소원초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불멍과 물멍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체험이 호이안의 소원초 띄우기 활동이었다.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소원을 말하고, 소원초를 물 위에 띄웠다. 다른 일정들 때문에, 물리적 거리 때문에 연말 연초나 생일에도 쉽사리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진 얼굴을 보며 회복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잊혀지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장면일 것이다.

이와중에 호이안의 유래 설명 중인 우리 아버지 (영상에 소리 있음)
떠 가는 소원초 (영상에 소리 없음)

정해진 대로 해야 할 게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맘껏 할 수만은 없는 패키지 여행이라는 제약 속에서, 호이안과 같은 아름다운 낭만이 녹아든 장소를 방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만큼 매력이 큰 마을, 뒤돌아 보면 마음을 아리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운명에 의해 이끌린 은둔자가 살 것 같은 도시 호이안에서의 하루였다.

이전 02화 코코넛 커피 때문에 생사를 넘나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