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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Feb 17. 2024

우리의 아빠들은 점점 아파져 간다

이번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

cover image by Tatuya tanaka (Miniature life)


우리 아빠는 치과의사다. 아빠의 직업을 말하면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꽤나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 감탄사와 함께 “우와, 대단하시다.”

다들 직설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바로 치과의사의 수입에 대한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때 담임 선생님마저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현장에 앉아, 모래를 가리키면서 모래알을 갈퀴로 긁어오듯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치과의사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니까. 나도 사실 그런 것에 별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철들때까지 아빠가 치과의사여서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지금껏 돈 안 내고 치과 진료를 받거나 아무때나 사랑니를 뽑을 수 있는 식의 무료 서비스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우리 언니는 나보다는 더 나이가 많은 자식이어서였는지 아직도 아빠 안경에 튄 핏자국(?!)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고 직장 생활을 하는 생활인이 되고 나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느껴졌다. 치과의사는 업무 강도도 높고, 아무래도 한 자세로 굳어 일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직업병을 필수로 얻게 된다는 것. 환값이 넘은 아빠는 목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버려 스트레칭도 하기 힘든 몸이 되버렸다. 특히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본다거나, 허리를 굽혀 발을 잡는 동작은 꿈도 못 꾸게 되셨다. 나는 왜인지 웃기기도하고 불쌍하기도 한 우리 아빠를 보며 운동 부족이라며 웰빙적 삶을 권하기 바빴다.


하지만 사실 아빠의 진짜 문제는 몸이 뻣뻣해서 생긴 운동학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아빠의 몸 속에는 나이가 들 수록 여러 가지 부분에서 적신호가 켜졌다. 혈압 문제, 심혈관계 문제로 스탠트 시술을 몇번이나 받고, 갑상선에 갑작스레 혹이 커져 절제 수술을 받고, 그렇게 몸 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심도 깊은 수술이 필요한 순간들이 점점 더 자주 닥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고향을 떠나 생활하고 있는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이 들었다. 아빠를 어느 날인가부터 볼 수 없게 된다면?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나는 더없이 당황스러운 심정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건강 이슈가 터질때마다, 인생은 우리에게 우선순위를 바꾸라고 외치는 것 같다. 나는 혼자하는 자유 여행을 너무도 좋아하고,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과의 여행이 일상이 되었지만, 언젠가부터 부모님과의 여행에는 너무도 인색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내 삶도 꾸려가기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도 바쁘고 신경 쓸 게 많다는 이유로 서로에 대한 만남을 미뤄둔 시간이 얼마나 길어졌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할 수 있을 때 하자. 그게 지금이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정신없이 일에 치여 살아가다가 누군가 차려준 밥상을 먹어볼 심산으로, 아빠엄마와 함께하는 베트남 패키지 여행을 검색하게 되었다. 어쩌면 완벽히 이상적인 여행은 아닐지 모르지만, 함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여행, 베트남으로 떠난 그 여행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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