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디 UnD Feb 24. 2024

코코넛 커피 때문에 생사를 넘나들다

압축적으로 표면적으로 다낭 맛보기

1화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부모님과의 시간에 대한 우선순위를 재설정한 후, 나의 제안으로 여행이 시작되었기에 예약 제반 사항은 내 몫이 되었다. 자유여행 준비하는거보다야 훨씬 쉬운 준비 단계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부모님이 요청한 패키지 여행 상품을 고르는 조건은 까다롭지 않았다. 너무 저렴하면서 숨겨진 옵션가가 있는 상품은 피하고, 되도록이면 쇼핑을 최대한 안할 수 있는 방향으로가 기본 기조였다. 보통 홈쇼핑에서 내놓는 주말 낀 3박 5일 다낭 호이안 패키지 여행은 499,000원부터 시작하는 상품들이 많은데, 이런 초저렴이 상품들은 보통 옵션 상품마다 추가 비용이 들거나 가이드비가 따로 들기 때문에 막상 총 경비를 따지면 경비를 초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 했다. 비용 범위를 좀 높여 한 단계 윗상품을 찾아봤는데, 쇼핑까지 없는 상품을 찾자니 고가 여행 브랜드에서 주관하는 1인당 10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프라이빗 상품이 유일했다. 동남아 여행의 묘미는 비교적 가성비가 좋다는 것인데 이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고가 상품은 아니다 싶어 적당한 선에서 투어를 예약했다. 쇼핑이 3회 포함되어 있는 것 말고는 대체로 괜찮은 느낌이었다.

다낭으로 향하는 밤 비행기

3박 5일 다낭호이안 패키지는 앞뒤로 이동 비행을 빼면 실제적으로 여행은 3일간 꽉채워 진행된다. 다낭행 비행기는 저녁 늦게 출발해서 다낭 시간으로 밤 늦게 도착하는 스케줄이었다. 도착해서 현지에서 자고 일어나는 일정이라서 괜찮겠네 했지만, 비좁은 저가항공 좌석에 앉아 5시간 정도 애써 잠을 청하며 눈을 감고 있자니 몸이 더욱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물 한잔 주지 않는 비행이다보니 나중에는 너무 건조하고 목이 말라서 쬐깐한 삼다수 300ml 병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구매하게 됐다. 거기다가 좌석 스크린조차 없는 상황, 현대인은 진실로 스크린 중독임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지루함이라니)

첫 위기를 잘 딛고 공항에 내렸다. 일단 숙소로 가서 푹 자고 일어나기로!

한국인들 다같이 우르르~

생각보다 눈이 일찍 떠진 다음 날. 다낭을 하루 온종일 메인으로 여행하는 날이다.

다낭 빈펄 리조트
오토바이가 다닥다닥 엄청나게 많은 풍경
숙소에서 바라본 산뷰
잠깐 아침 산책
이번 여행을 함께할 투어버스

첫 코스는 마사지였다. (으아니, 이것도 문화충격. 첫날부터 마사지를? 참고로 마사지는 이걸 제외하고도 2번 더 남아 있었다.)

버스가 내려다준 곳에서 내려 오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건물로 들어가면 어설프게 한국어를 조금씩 하는 베트남 마사지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본 그녀들에게 몸을 온통 내맡긴채 2시간을 누워있자니 이 경험은 너무도 생경했다.

“아파요?”

“살살”


언뜻 잘못 들으면 외설적으로까지 들리는 마사지사와의 대화가 이어지고,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해본다. 평일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주는 밥 먹고 마사지 받는 경험도 인생에서 자주 오지 않을 기회이리라. 그렇게 어색한 상견례와 2시간의 나른한 시간이 지나고 눈뜬지 몇시간 되지않아 노곤해진 몸으로 점심 식사를 할 식당으로 이끌려간다.

베트남에서의 첫 외식은 분짜

패키지 단체 손님을 위해 미리 셋팅된 테이블에 함께 둘러 앉았다. 한국의 분짜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는데, 국물이 훨씬 더 많고 연한 느낌이어서 물국수 말아먹듯이 모든 재료를 빠뜨려서 먹는게 특이했다. 약간의 숯불맛이 나는 돼지고기와 동그랑땡 같은 전과 함께 곁들여 먹으니 화려하진 않지만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

다음 행선지는 미케 비치! 23km나 된다는 이 해변은 평평하게 좌우로 펼쳐진 고운 모래의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낭 여행을 오면 이 곳은 필수 코스 중 하나인 듯 보였다. 옆에 해변 카페가 있어 베트남에서 유명한 코코넛커피, 연유 커피, 망고 주스 등 음료를 주문해서 잠깐 이 곳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이 시기의 다낭은 흐리거나 비가 자주 온다고 하는데, 이 날만큼은 햇빛이 눈부셔 해변가 구경을 하기 좋았다.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남편은 골고루 음료수를 한 종류씩 시켜서 기다리는 동안 열심히 기념사진을 남겼다.

마침 이 날은 아빠 생일. 생일을 맞춰 떠난 기념 여행이었다.

하나 둘 음료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아빠가 주문한 코코넛 커피가 가장 먼저 서빙되었다.

문제적 코코넛 커피

콩카페 등 한국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에서 판매한다는 코코넛 커피. 소문으로만 들어봤던 이 음료가 상당히 궁금했었다. 일단 달달 고소한 게 엄마 아빠 입맛에는 딱 맞았는지 맛있다며 한입 먹어보라는 말에 후루룩 빨대로 한모금 들이켰는데, 뭔가 목구멍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말린 코코넛 조각이 그대로 식도와 기도 사이 어딘가에 그대로 흡입되어 끼어버린 것 같았다.

“켁켁!” “컥켁켁!”


아무리 기침을 하고 뱉어내려 해보아도 절묘하게 내 목구멍 크기에 맞게 박혀버린 코코넛 조각은 큰 생선 가시가 걸려버린 것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빼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숨구멍을 막아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지 시작했다.

머릿 속에는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응급실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되면 오늘 남은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 근데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는데? 기도가 막혀서 죽은 사람들도 처음에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시작된 걸까? 그러다 회사에서 1년에 한번 필수가 된 응급처치 교육이 떠올랐다.

.....

“여보, 당신 하임리히법 할 줄 알아?

“엉? 당신 그렇게 심각해?”


죽겠다며 하임리히법을 하라는 아내의 아우성에 남편은 어떻게든 해보지만 왠지 누르는 위치가 그 위치가 아닌 것 같다. 배만 아프고 조각이 빠지지는 않는다.

결국 억지로 구역질을 해가며 침과 여러가지 것을 질질 흘리며 한바탕 난리를 부린 뒤에 겨우 식도로 넘어갔는지 숨통이 틔였다. 가이드도 그제서야 괜찮냐며 물어본다. 어휴, 하나도 안 괜찮았어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응급 모먼트를 겪다니!


그 뒤로 코코넛 커피는 무서워서 먹고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죽음의 문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돌아온듯 신체가 놀라 얼떨떨해진 상태로 내가 주문했던 연유커피만 마셨다. 그와중에 커피는 쫀쫀하게 맛있었고, 직전에 코코넛 조각만 아니었다면 이 맛을 더 잘 음미할 수 있었을텐데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약간의 트라우마를 남기고 그렇게 미케비치를 떠나 호이안으로 향한다. 먼저,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이를 입어볼 수 있는 체험관으로 향했다.

갑분 패션쇼 준비
옷도 여러벌 입어볼 수 있고 다양한 배경의 포토존이 있다

패키지 여행이 재밌는건, 사전 공부도, 여행의 목표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가이드가 하루의 할 일을 단계마다 알려주고,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게 핵심인데, 이런 여행도 수용하게 된건 전적으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몇년 간 모든 걸 능동적으로 처리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 업무 환경에 있었다보니 조금은 이렇게 생각 없이 머무르고 싶은 시간과 공간이 있는게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 예전의 나였으면 절대 이런 여행은 돈 주고 안했으리라 생각이 드는게 우스웠다. 나는 아오이 체험이 이렇게 직접 옷을 입어보는 것인 줄도 몰랐을 뿐더러 사진을 남기기 위한 코스인줄도 몰랐다. 어린 시절 소꿉놀이 같은 행위들을 하며 아빠 엄마와 노닥거리는 게 웃기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했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스럽게 나온 사진들을 보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아니 근데 아직 호이안도 못 갔는데, 첫날 여행 하루가 왜이리 길었던 걸까요?


다음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음편 미리보기: 광란의 바구니배 체험과 호이안 야경보며 나룻배에서 등불 띄우기]


이전 01화 우리의 아빠들은 점점 아파져 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