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적으로 표면적으로 다낭 맛보기
1화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부모님과의 시간에 대한 우선순위를 재설정한 후, 나의 제안으로 여행이 시작되었기에 예약 제반 사항은 내 몫이 되었다. 자유여행 준비하는거보다야 훨씬 쉬운 준비 단계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부모님이 요청한 패키지 여행 상품을 고르는 조건은 까다롭지 않았다. 너무 저렴하면서 숨겨진 옵션가가 있는 상품은 피하고, 되도록이면 쇼핑을 최대한 안할 수 있는 방향으로가 기본 기조였다. 보통 홈쇼핑에서 내놓는 주말 낀 3박 5일 다낭 호이안 패키지 여행은 499,000원부터 시작하는 상품들이 많은데, 이런 초저렴이 상품들은 보통 옵션 상품마다 추가 비용이 들거나 가이드비가 따로 들기 때문에 막상 총 경비를 따지면 경비를 초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 했다. 비용 범위를 좀 높여 한 단계 윗상품을 찾아봤는데, 쇼핑까지 없는 상품을 찾자니 고가 여행 브랜드에서 주관하는 1인당 10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프라이빗 상품이 유일했다. 동남아 여행의 묘미는 비교적 가성비가 좋다는 것인데 이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고가 상품은 아니다 싶어 적당한 선에서 투어를 예약했다. 쇼핑이 3회 포함되어 있는 것 말고는 대체로 괜찮은 느낌이었다.
3박 5일 다낭호이안 패키지는 앞뒤로 이동 비행을 빼면 실제적으로 여행은 3일간 꽉채워 진행된다. 다낭행 비행기는 저녁 늦게 출발해서 다낭 시간으로 밤 늦게 도착하는 스케줄이었다. 도착해서 현지에서 자고 일어나는 일정이라서 괜찮겠네 했지만, 비좁은 저가항공 좌석에 앉아 5시간 정도 애써 잠을 청하며 눈을 감고 있자니 몸이 더욱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물 한잔 주지 않는 비행이다보니 나중에는 너무 건조하고 목이 말라서 쬐깐한 삼다수 300ml 병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구매하게 됐다. 거기다가 좌석 스크린조차 없는 상황, 현대인은 진실로 스크린 중독임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지루함이라니)
첫 위기를 잘 딛고 공항에 내렸다. 일단 숙소로 가서 푹 자고 일어나기로!
생각보다 눈이 일찍 떠진 다음 날. 다낭을 하루 온종일 메인으로 여행하는 날이다.
첫 코스는 마사지였다. (으아니, 이것도 문화충격. 첫날부터 마사지를? 참고로 마사지는 이걸 제외하고도 2번 더 남아 있었다.)
버스가 내려다준 곳에서 내려 오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건물로 들어가면 어설프게 한국어를 조금씩 하는 베트남 마사지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본 그녀들에게 몸을 온통 내맡긴채 2시간을 누워있자니 이 경험은 너무도 생경했다.
“아파요?”
“살살”
언뜻 잘못 들으면 외설적으로까지 들리는 마사지사와의 대화가 이어지고,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해본다. 평일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주는 밥 먹고 마사지 받는 경험도 인생에서 자주 오지 않을 기회이리라. 그렇게 어색한 상견례와 2시간의 나른한 시간이 지나고 눈뜬지 몇시간 되지않아 노곤해진 몸으로 점심 식사를 할 식당으로 이끌려간다.
패키지 단체 손님을 위해 미리 셋팅된 테이블에 함께 둘러 앉았다. 한국의 분짜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는데, 국물이 훨씬 더 많고 연한 느낌이어서 물국수 말아먹듯이 모든 재료를 빠뜨려서 먹는게 특이했다. 약간의 숯불맛이 나는 돼지고기와 동그랑땡 같은 전과 함께 곁들여 먹으니 화려하진 않지만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
다음 행선지는 미케 비치! 23km나 된다는 이 해변은 평평하게 좌우로 펼쳐진 고운 모래의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낭 여행을 오면 이 곳은 필수 코스 중 하나인 듯 보였다. 옆에 해변 카페가 있어 베트남에서 유명한 코코넛커피, 연유 커피, 망고 주스 등 음료를 주문해서 잠깐 이 곳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이 시기의 다낭은 흐리거나 비가 자주 온다고 하는데, 이 날만큼은 햇빛이 눈부셔 해변가 구경을 하기 좋았다.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남편은 골고루 음료수를 한 종류씩 시켜서 기다리는 동안 열심히 기념사진을 남겼다.
하나 둘 음료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아빠가 주문한 코코넛 커피가 가장 먼저 서빙되었다.
콩카페 등 한국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에서 판매한다는 코코넛 커피. 소문으로만 들어봤던 이 음료가 상당히 궁금했었다. 일단 달달 고소한 게 엄마 아빠 입맛에는 딱 맞았는지 맛있다며 한입 먹어보라는 말에 후루룩 빨대로 한모금 들이켰는데, 뭔가 목구멍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말린 코코넛 조각이 그대로 식도와 기도 사이 어딘가에 그대로 흡입되어 끼어버린 것 같았다.
“켁켁!” “컥켁켁!”
아무리 기침을 하고 뱉어내려 해보아도 절묘하게 내 목구멍 크기에 맞게 박혀버린 코코넛 조각은 큰 생선 가시가 걸려버린 것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빼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숨구멍을 막아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지 시작했다.
머릿 속에는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응급실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되면 오늘 남은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 근데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는데? 기도가 막혀서 죽은 사람들도 처음에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시작된 걸까? 그러다 회사에서 1년에 한번 필수가 된 응급처치 교육이 떠올랐다.
.....
“여보, 당신 하임리히법 할 줄 알아?“
“엉? 당신 그렇게 심각해?”
죽겠다며 하임리히법을 하라는 아내의 아우성에 남편은 어떻게든 해보지만 왠지 누르는 위치가 그 위치가 아닌 것 같다. 배만 아프고 조각이 빠지지는 않는다.
결국 억지로 구역질을 해가며 침과 여러가지 것을 질질 흘리며 한바탕 난리를 부린 뒤에 겨우 식도로 넘어갔는지 숨통이 틔였다. 가이드도 그제서야 괜찮냐며 물어본다. 어휴, 하나도 안 괜찮았어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응급 모먼트를 겪다니!
그 뒤로 코코넛 커피는 무서워서 먹고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죽음의 문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돌아온듯 신체가 놀라 얼떨떨해진 상태로 내가 주문했던 연유커피만 마셨다. 그와중에 커피는 쫀쫀하게 맛있었고, 직전에 코코넛 조각만 아니었다면 이 맛을 더 잘 음미할 수 있었을텐데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약간의 트라우마를 남기고 그렇게 미케비치를 떠나 호이안으로 향한다. 먼저,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이를 입어볼 수 있는 체험관으로 향했다.
패키지 여행이 재밌는건, 사전 공부도, 여행의 목표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가이드가 하루의 할 일을 단계마다 알려주고,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게 핵심인데, 이런 여행도 수용하게 된건 전적으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몇년 간 모든 걸 능동적으로 처리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 업무 환경에 있었다보니 조금은 이렇게 생각 없이 머무르고 싶은 시간과 공간이 있는게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 예전의 나였으면 절대 이런 여행은 돈 주고 안했으리라 생각이 드는게 우스웠다. 나는 아오이 체험이 이렇게 직접 옷을 입어보는 것인 줄도 몰랐을 뿐더러 사진을 남기기 위한 코스인줄도 몰랐다. 어린 시절 소꿉놀이 같은 행위들을 하며 아빠 엄마와 노닥거리는 게 웃기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했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스럽게 나온 사진들을 보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아니 근데 아직 호이안도 못 갔는데, 첫날 여행 하루가 왜이리 길었던 걸까요?
다음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음편 미리보기: 광란의 바구니배 체험과 호이안 야경보며 나룻배에서 등불 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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