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가 다음 여행지가 된 tmi 스토리
2024년 겨울과 2025년 겨울은 어쩌면 비직장인으로서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나에겐 이제 한두 번 남은 겨울 방학이다.
여행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했을 때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는 장거리 여행은 어려울 것 같고, 그래도 여행하는 기분은 확실히 나는 곳을 가고 싶었다.
익숙하게 다녔던 유럽이나 그나마 영어가 통하는 미주 쪽은 막 정해도 부담이 없었는데 막상 대안을 찾으려고 하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름 여권에 도장 쾅쾅 찍으면서 이곳저곳 많이 다닌다고 다녔지만 구글 맵을 열고 다녀본 곳의 핀들을 살펴보니 아직 미 정복(?) 지역은 차고 넘쳤다. 어디를 가야 가장 만족스럽고 후회가 없을까?
한 여행 끝날 때부터 다음 여행을 생각하는 나. 동거인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여행중독자'다. 평소에는 늘 가고 싶은 여행 후보지가 마음 속에 몇 개는 있었다. 계획이 딱히 없을 때에도 SNS로 예비 리서치를 많이 해두는 편이라 떠오른 장소는 있었으나, 아직 방아쇠가 당겨질 정도로 확신은 없는 상태였다. 그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 섬 중 하나인 발리였다.
나에게 있어 발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여행지였다. 화산 폭발이 있을 즈음 발리를 다녀왔다는 언니 부부의 소식을 들었을 때, 우연히 유투브에서 힐링 그 자체인 발리 vlog를 봤을 때도, 발리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아마도 대안이 많다보니 우선 순위가 밀려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발리를 두 번이나 다녀온 발리 매니아인 친구가 있었고, 그녀는 나에게 발리를 강력 추천했다.
발리 한번 가면 넘 좋아서 오기 싫을걸?
자연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며칠을 가든 아쉬워!
분위기 자체가 여유롭고 사람들도 너무 친절해 좋았던 기억 밖에 없다며 다른 동남아 여행이랑은 다를 거라고 확신의 믿음을 전해주었다. 센스있고 유쾌한 이 친구의 픽이라면 믿고 가도 될 정도라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정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우선 오고가는 비행기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LCC, 대한항공 등 노선이 좀 있긴 했지만 인당 최소 60-90만원은 필요했다. 또 한국에서 겨울인 11~3월까지는 발리의 우기여서 비를 완전히 피한다는 게 불가능해보였다.
(구름을 몰고다니는 여행자로서 비와 관련해서는 이전부터 여러 글에서 어려운 마음을 토로한 적이 있다.)
결정적으로 20여년 쯤 단체로 발리 패키지 여행을 다녀오셨다는 60대의 내 부모님은 '볼 것 없다'는 코멘트로 발리를 추천하지 않으셨다. 여행에서도 열심히 관광을 다니시고 액티비티를 해야 뭔가 한 것 같다 느끼는 스타일이셔서 그런가보다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같은 장소라도 어떤 것을 느낄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라 답답함은 가중되어갔다.
이렇게 나에게는 너무나 미지의 세계였던 열대 지방, 그리고 발리.
지난하게 길었던 여름을 보내고 몇달 되지 않았던 터이지만, 얼어붙는 추운 겨울에 더운 지방으로 놀러가 게으름 피우기는 인생 로망 중 하나였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그런다지 않는가. 여름에 시원한 곳으로, 겨울엔 따듯한 곳으로. 부자들을 흉내낼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때는 못이기는 척 비행기 티켓부터 끊고 보는 거다. 여행 세 달 전,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쯤 결단을 내렸다. 장소만 정하고 모든 건 미래의 나에게 맡기자! 여러 시간대에 걸쳐 나라는 존재에게 부담을 나눠 지게 했을 때의 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학기가 마무리 될 때 까지, 떠나야 할 때와 떠날 곳이 있다는 것이 나의 하루를 설렘으로 살아가게 할 힘이 되어 주리라.
그렇게 열어보지 않은 보물 상자를 얻은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