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첫인상, 습해도 너무 습해!
들뜨는 마음으로 여행 짐을 출발 며칠 전부터 싸기 시작했다. 잊고 지냈던 얇고 팔랑팔랑 한 옷들을 개어 넣고, 비로소 마음의 준비를 시작한다. 동거인과 함께 큰 캐리어 하나씩을 챙기고 만일을 대비해 작은 캐리어 2개도 빈 상태로 가져간다.
여름 나라로 갈 땐 공항에 무엇을 입고 가야 할까?
경험상 적당히 톡톡한 츄리닝 바지에 반팔, 위에 겉옷을 걸치는 게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택시로 이동할 거고 공항 안에 들어서면 춥진 않을테니 몸은 무겁지 않게 가기로 했다.
비행 시간은 약 7시간 반. 다행히 비행기가 신 기종이라 실내도 깨끗하고 모니터 화면 해상도도 좋다. 하지만 어쩐지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맘놓고 푹 쉬기가 힘들다. 뭐라도 들여다 보고 조물조물대다가 피곤한 몸으로 Bali 에 도착한다.
공항에 내리니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 사람들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택시기사들도 정말 많았다.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기도 하고 태블릿에 이름을 띄워놓기도 했는데, 이런데서 우리 기사님을 찾는다는 건 모래 밭에서 모래알 찾기다. WhatsApp 으로 겨우 연락을 해서 기사님을 만났다. 첫 숙소 짱구가 있는 곳 까지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밤 도착 비행기로 늦은 시간이었지만 숙소에서는 직원들이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아침 메뉴까지 고른 뒤에 방에 들어가 쓰러져 잤다. 깜깜해서 몰랐던 풍경을 아침에 일어나 보고서 깜짝 놀랐다.
둘러보니 온통 푸릇푸릇하고 투명한 색감. 들려오는 새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이 낯설지만 좋았다. 좀 마음에 안드는 게 있다면 테라스로 나서자마자 물어뜯어대는 모기와 엄청난 습기! 잠깐 앉아있다보면 간질간질 따끔하게 부어오르는 모기 문 자국과 꼬불랑거리는 내 반곱슬 머리카락을 발견하게 된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금세 얼굴과 몸이 축축해질 정도로 대단한 습도였다.
챙겨주는 아침밥 든든히 먹고, 무작정 도시 구경을 나서기로 한다. 근처에는 유명한 비치 클럽이 있다는데, 그런 chill한 분위기를 즐기는 타입이 아닌 나에겐 딱히 필수 코스는 아니었다. 그저 짱구 여행은 발리는 이런 곳이구나 알아가는 첫 인상을 갖는 시간이었다.
해변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짱구에 있는 해변은 눈으로 보기에도 파도가 매우 거칠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서핑 성지였다. 사람들이 통행 하는 곳까지 파도가 철석 철석 언제 몸을 적셔 버릴지 모를 정도로 거세게 쳐들어 왔다. 멀리 보이는 서퍼들만이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조심조심 걷다가도 어느새 파도에 발이 젖어 버렸다. 포기하고 신발을 벗어 들고 걸어가 본다. 습한 동시에 시원한 감각이 느껴진다. 햇빛이 조금만 세게 내리 쬐어도 옷 가지를 벗어 던지고 바다에 풍덩 뛰어 들고 싶은 온도다. 그렇게 잔뜩 언성을 높이 파도를 구경하다가 다시 골목으로 들어왔다.
더위도 피할겸, 점심도 먹을겸 구글맵을 뒤지다가 깔끔해보이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홀리데이인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브랜드 체인이라 그런지 숙소 규모나 위치도 좋고 더 깔끔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레스토랑 내부와 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꼭 숙박을 해야만 즐길 수 있는건 아니니 맛있는 밥 한끼 기분좋게 먹고 가기로 했다.
https://maps.app.goo.gl/QQTPpPu9vvmsY3is6?g_st=com.google.maps.preview.copy
발리에는 나시짬뿌르 라고 하는 가벼운 쌀과 각종 반찬이 나오는 인도네시아 로컬 음식이 유명하다. 나름 발리에서의 첫 끼이니 로컬 음식을 먹어봐야지 하고 주문했다. 같은 아시아 국가 답게 우리나라처럼 밑반찬이 있다는 게 반가운데, 문제는 그 반찬에 들어가는 향신료는 먹어보지 않고 예측이 어렵다는 것. 예쁘기도 하고 맛있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알고보니 매운 고추가 거의 모든 반찬에 들어가 있다! 점점 더 타오르는 듯한 입술과 모든 땀을 배출시킬 듯한 얼굴 상태는 견디기가 힘들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음식 맛이 좋아 계속 먹게되는 중독성이 있었다.
정신이 반쯤 얼얼해진 상태로 길을 걷는다. 땀을 쭉 뺐더니 오히려 덜 더운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래서 더운 나라에선 매운 음식을 먹는 건가 싶었다.
목적성 없이 걷다보니 발리는, 아니 적어도 짱구는 도보로 다니기에 좋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수 없이 많은 오토바이와 좁은 길, 건너기 조금 부담스러운 갈래길들까지 보행자를 힘들게 하는 조건들이 많았다. 습덥한 공기와 매연까지 더해져 체력이 금방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부터는 꼭 마스크를 꺼내야지 라고 다짐했다.
발리는 그저 평온하고 한적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 만도 않구나 생각이 들었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아직 첫날인데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피곤함이 몰려와 숙소로 걸어가던 중에 스파를 발견, 워크인 예약(?)을 했다. 숙소에서 좀 드러누워 쉬다가 피로함을 풀러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허리를 다친 이후 마사지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3만원도 안되는 금액으로 90분 전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는 건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속는셈치고 한번 받아 보지 뭐 하고 예약시간에 맞춰 다시 방문 했다. 사실 이 때부터 발리 사람들에게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너무너무 친절하고 다정하다. 서비스직 종사자로서 고객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친절 하다는 것에 자신있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마사지도 아주 훌륭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발리에서의 첫 하루가 무심히 흘렀다. 사람들은 짱구의 비치클럽에 앉아 꼭 일몰을 봐야한다고 했는데, 구름 때문에 지는 해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비치 클럽에는
발길이 닿지 않았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젤라또 하나를 사서 다시 오늘의 첫 목적지였던 해변가로 향했다.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높은 계단에 앉아 젤라또를 한스푼씩 먹는 기분이 좋았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황홀한 붉은 기운을 기다려보지만 사진에 담긴 모습이 최선이었다.
여행에 정해진 룰이란 건 없다.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는 아름다움이나 좋음도 없다. 이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발리의 처음은 특별하지 않은 것들로 빼곡히 찬 만족스러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