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디 연애 후 롱디 부부로 살고 있습니다
롱디 연애면 롱디 부부도 괜찮을까?
2년 반의 연애 기간 중 대부분의 시간은 직접 만나지 못한 채로 사귀어온 나의 과거형 남자친구, 현재형 남편. 모르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듣다가 롱디 '연애'에 한번 놀라고, 롱디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더이상 말잇못, 우릴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대체 두 사람이 언제 어떻게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냐고 모두 궁금해 했다.
글쎄,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나도 어떻게 이렇게 된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와의 시간을 통해 나는 '기다리는 삶'의 미를 알았달까, 한편으로 한 인간이란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행복하게도, 미치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가 좋을 때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의 온도 차이는 롱디기 때문에 더 커져버리기도 하고, 롱디라서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커버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직접 만나서만 표현하거나 전달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혼을 결심할 즈음에는 '그래 뭐 맞벌이 부부도 아침 저녁으로 몇시간 정도 보는 거고, 그마저도 야근 많이 하는 직업이면 평일은 피곤해서 자기 바쁠텐데'하며 비교할 수 없는 대상과 견주어 계산기를 두드려 보며 쿨한 척을 해보기도 하고, '주말 부부도 많은데'라며 자위하기도 했다. 한 때는 그를 따라 외국으로 떠날 계획까지 꽤 구체적으로 세워보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어느 누구와 견주어 봐도 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실제로 내 지인들이 연인이나 남편과 떨어져 지내야 되는 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자폭 대사를 날리기도 했다.
"그래, 그래도 너네는 우리보다는 낫잖아. 나 보고 힘내. 다 그러고 산다."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지만, 씁쓸해질 때도 있었고, 현실 파악이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오고 있다
어제 저녁 8시 경 그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계좌 개설이 되지 않아 비자 신청도 못하고 19일을 더 머물다가 출국하게 된 그는 공항에서 경찰에게 붙잡혔다. 헐. 이렇게 돌아오지 못하는 건가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다행히 150유로의 어떤 명목이 있는 돈을 뜯기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입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참,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코로나 검사 애벌부터 시작해서 5, 6 단계에 걸친 꼼꼼한 검사를 다 받고 진이 빠졌다는 내 남편은 내가 쿨쿨 자는 동안에도, 일어나 회사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하늘 길을 날고 있었다. 이제 쯤 오려나? 하는 순간, 한국 번호로 그에게 전화가 왔다.
"나 비행기 내렸어."
"웰컴, 어서와!"
그렇게 목소리를 잠깐 들려준 남편은 그 뒤로 대꾸 한번이 없더니만, 입국 후 공항 코로나 관련 프로세스로 매우 시달렸다며 다시 연락이 왔다. 공항에서 씌워준 비닐 장갑까지 꼈다며 인증샷을 보내준다. 즉각 보건소로 달려가 이제는 꽤 유명해진, 긴 면봉(남편은 플라스틱이라고 주장했다.)이 콧 속 깊은 곳을 부주의하게 탐험한다는 그 검사를 받고 겨우겨우 귀가했다고 한다. 그제야 마음이 스르륵 놓인다.
그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며
사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오래 떨어져 지내면 재회가 괜시리 좀 어색하거나 불편해지기도 하고, 가족이라도 너무 붙어 있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혼자만의 쾌적한 집안생활을 향유하던 나는 그가 오는 것이 너무 반가운 동시에 미리 걱정도 생긴다. 또 두 살아있는 존재가 한 곳에 머무는 일이다보니, 공간에 대한 경쟁도 은근히 있다. 남편은 책상 작업이 늘 필요한 일이라, 내가 그동안 독점해왔던 작업용 방을 이제 내어주어야 할 것 같지만 내어 주기 싫은 마음도 든다. 미뤄두었던 집안일도 남편이 오면 괜히 꼬박꼬박 잘 분배해야 될 것 같고, 무의식적으로 남편에게 더 큰 노력을 요구하는 이기심도 솟구칠까봐 두렵다.
우리의 공존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은 무엇일까? 나와 그는 그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이행하며, 자기를 희생하며 노력할 만큼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자가 격리가 진행되는 14일의 시간 동안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그래도 반갑다, 남편. 웰컴백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