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못 권하는 사회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이젠 이 코로나라는 단어가 너무도 오래, 흔하게 우리와 함께 하고 있어서 코로나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무감각해져 버렸다. 닳고 닳은 유행어처럼.
마치 언제 어디서 누구 와든
"코로나?"
"코로나!"로 모든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다.
<3개월의 시간과 1000만 원> 브런치 북(https://brunch.co.kr/brunchbook/uniquemission)
을 쓰는 과정에서 지난 여행을 곱씹으며 어떻게든 2020년 끝 무렵을 버틸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지 이제야 1년이 좀 넘었을 뿐이지만, 2020년은 멀리, 아무도 못 쫓아올 정도로 머얼리 떠나지 못해 참으로 무료하고 허전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종종 답답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하면, 남편은 나에게 "너 같은 사람이 여행을 못 가니 그렇지"라며 모든 원인을 여행을 못 간 것으로 돌리기도 했다. 내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과 느낌을 너무도 쉽게 단순화해버린 남편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게 있어 가장 큰 기분 전환은 여행을 통해서 가능하다. 물론 돈도 그만큼 많이 든다는 게 함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돈을 그만큼 쓰는 데도 아깝거나 허무하지 않은 것은 여행이 거의 유일한 것도 같다. 여행은 남는 투자다. 나는 이렇듯 여행을 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지난 여행이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이었다면? 그 시기가 인류 전체의 마지막 여행이 가능한 때였다면? 다시는 해외여행을 자유로이 할 수 없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나는 아마도 여행 장례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뮌헨이 마지막이었다니, 애도하고 충분히 추모해야 한다. 그리고 가보지 못했던 모든 길들 또한 눈물로 그리워해야겠지. 아이슬란드여, 스페인 마요르카여..... 잘 있거라.
그리고 사회는 여행을 가본 자와 못 가본 자로 나뉠 것이다. 해외여행을 직접 가본 자는 마치, 전설 속 용을 만났던 사람처럼 특권 의식을 가지고 우쭐대며 직접 보고 듣고 맛본 경험을 전해주는 투머치 토커가 될지도 모른다.
"라떼는 말이야..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오고 갔었어, 지구촌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아 진짜야, 그때는 배낭 하나만 메고 마스크도 안 끼고 그냥 유럽 국가를 이곳저곳 아무렇게나 돌아다녔다니까~"
이 세대에서 해외로 여행을 가보지 못했던 자들은 두고두고 땅을 치고 후회를 한다. 아, 그때 알바를 그만두고라도, 빚을 내서라도 이탈리아를 갔었어야 했어. 이탈리아에서 파스타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들은 늙어 꼬부랑 노인이 되어서 손자들에게까지 파스타 타령을 할지도 모른다.
"손주들아 언젠가, 세계 여행이라는 게 다시 가능해지면, 꼭 나 대신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랑 피자를 먹어주렴?"
"... 말도 안 돼... 그런 일이 가능했단 말이야?"
"함무니, 세계 여행이 모에여??"
한 번도 해외여행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세대들은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며, 파스타는 레스토랑에서 사 먹으면 되지. 생각하며 조부모의 유언을 잊어버리고 평생을 살아간다. 더 이후의 세대는 파스타가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야?라고 부모한테 물어보겠지.
여권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구청에서 여권 발권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주민등록증 발급으로 직무를 변경하거나, 그마저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출입국 도장을 찍어둔 여권들은 골동품 가게에서 아주 희귀한 물건으로 취급된다. 외교관들 중 일부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자신의 것을 기증하기도 했다.
항공사는 항공기에 더 이상 비싼 값으로 승객을 태울 수 없게 되어 모두 화물용으로 변모한다. 다리가 좁아 불편했던 이코노미 좌석과 좌석 테이블 등은 모두 떼어 던져 버리고, 비즈니스 석과 1등급의 좌석은 모두 코로나 병상으로 병원에 수급된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해외를 맛보았던 선구자들은 세상을 떠나고.. 이제 인류는 사진으로, 영상으로, 과거의 기록으로만 다른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 더듬어도 닿을 수 없는 모니터 속 장면처럼, 그렇게 멀리에 무언가가 있구나 정도를 인식하면서.
다시는 알프스의 눈 덮인 산을 두 발로 밟아 오르는 일 같은 건, 이탈리아의 꼬모 호수 근처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바람을 맞는 일 같은 건, 영국의 킹스 크로스 역 9와 3/4 승강장으로 들어가 보는 일 같은 건,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가 지은 멋진 건축물 안에 안겨보는 일 같은 건, 솜이불보다 더 부드럽고 매끄러운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의 바다에 푹 잠겨 수영하는 일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직접 닿지 못하기에 잊히고, 지워지고, 없는 것과 같이 된다는 것은 정말 서글프고도 먹먹한 일이다. 이런 내 상상이 말도 안 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헛생각에 그치길 바라면서, 마스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보들보들한 서로의 얼굴 피부를 바라볼 수 있는 2021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