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행과 일반
지하철 9호선에는 급행과 일반이 있다.
급행은 주요 환승역만 선다.
고속터미널역, 동작역, 노량진역, 여의도역 등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장 분주한 곳들이다.
그 외의 역은 일반 열차가 모든 정차역을 빠짐없이 지난다.
급행은 언제나 붐빈다.
문이 열리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 사이로 다시 밀려드는 사람들.
타야만 한다는 듯,
하루라도 더 앞서가야 한다는 듯한 표정들이 이어진다.
나에게 급행은 그저 ‘조급함’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진다.
물론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있을 때는 타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굳이 그 속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일반 열차를 선호한다.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빈자리에 앉아 생각하는 여유가 좋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 보일 때면,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덜 피곤하게 느껴진다.
출퇴근 시간만 지나면
일반 열차 안은 한결 느긋하다.
책을 읽는 사람,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사람,
아무 말 없이 지하의 창문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 속에 앉아 있으면
세상도 조금은 천천히 흘러가는 듯하다.
나는 가능한 한 급행을 타지 않으려 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삶이 좋다.
급행만 타다 보면
정작 중요한 풍경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지나쳐버린 역처럼,
스쳐간 사람들처럼 말이다.
급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자세를 낮추고,
틈새를 찾아 몸을 밀어 넣는다.
그 표정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다.
반드시 타야만 한다는 절박함,
그 몇 분을 단축하기 위한 치열함.
결국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놀랐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무엇을 향해
그렇게 서두르는 걸까.
급행과 일반.
지하철 노선의 구분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느긋한 일반 열차에 만족하려 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도착지는 결국 같을 테니까.
오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