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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빚

by bigbird

글빚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글빚을 지었다.”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뜻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인데, 그것이 왜 ‘빚’이 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글을 써보며 조금씩 그 의미를 알게 된 듯하다.

글은 마음의 그림자와 같다.
한 줄을 쓰기까지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때로는 아픈 기억을 꺼내야 하고, 때로는 부끄러운 마음을 솔직히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쓴 글은 어느새 나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스님이 말씀하신 ‘글빚’이란,
아마도 그 글을 읽는 이들의 마음에 남긴 흔적 때문일 것이다.
글은 단순히 종이 위의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흔들고 위로하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 씨앗이 마음속에서 싹트고 자랄 때,
글을 쓴 사람은 그만큼의 마음을 세상에 빌린 셈이 된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책임을 짊어지는 일이다.
그 말 한 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글을 쓰며 늘 마음의 빚을 느끼셨던 게 아닐까.

나 또한 글을 쓰며 비슷한 생각을 해본다.
쓰는 동안은 내 글 같지만, 다 쓰고 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읽는 사람의 해석과 감정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래서 글은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 된다.

글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이자,
한 마음이 다른 마음으로 건너가는 길이다.
그 길 위에 남겨진 발자국이 바로 ‘글빚’이다.
그 빚은 갚을 수 없지만, 다음 글로 조금씩 갚아나갈 수는 있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글빚을 진다.

오늘도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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