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쯤이었을 것이다. 와이프와 함께 영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를 배낭 하나씩 메고 떠났던 여행. 스마트폰도, 지도 앱도 없던 시절이라 여행책자 한 권이 우리의 길잡이였다. 낯설고 불편했지만, 그래서 더 설레던 여행이었다.
영국 일정을 마치고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로 향하던 날이 특히 기억난다. 해저터널을 지나며 “바다 밑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신기했고, 3시간 만에 다른 나라에 도착한다는 사실이 그저 경이로웠다.
그 순간까지는 모든 것이 좋았다. 정말 즐거웠다.
기차에서 내려 지하철 표를 사러 가려던 그때, 한 프랑스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불어로 무언가를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자연스레 우리를 표 자동판매기 쪽으로 이끌었다. 기계 사용법을 설명하는 듯 손짓을 하고,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 보여주며 이것을 사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우리는 그가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냐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지폐를 가져갔다. 여행 초반이라 1프랑이 얼마인지조차 감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 뒤, 여행책자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가 받은 지하철 표 값의 몇 배를 뜯겼다는 것을.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기분이 상했고, 낯선 도시가 갑자기 낯설기만 했다. 원하지도 않은 호의로 다가와, 친절한 척하며 속아넘어가게 만든 그 행동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도 실망했다. 왜 조금만 더 주변을 살피지 못했을까, 왜 쉽게 믿었을까. 여행 초반의 들뜸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경험은 내게 작은 교훈 하나를 남겼다.
“내가 원하지 않은 상대의 호의는 경계하라.”
그 문장은 이후 여행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조용한 경계가 되어주었다.
그날 이후, 프랑스라는 나라는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에서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순간들 덕분에 여행도, 삶도 조금은 더 단단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