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다리는 일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하는 날이다.
사랑이 내게 처음 온 날, 그날은 기쁨이 몰아치던 유난한 날이었다. 그가 다니던 자그마한 학교 교정을 걷다가 그의 아픔을 알게 된 날이었다. 바늘처럼 꽂히던 바람이 연한 향기 같은 것으로 변한 날이었다. 그가 이쪽저쪽 호주머니에서 내게 주고 싶은 것을 주섬주섬 꺼내놓던 날이었다. 오래오래 살고 싶은 날이었다. 밤이 영원하기를 염원하던 날이었다. 함께 더 멀리 가보고 싶던 날이었다. 사위가 고요한 거리를 우리 둘 목소리로 채우던 날이었다. 먼 데 뿌리내린 사람을 뽑아 내 곁에 심어 두고 싶던 날이었다. 사랑이 피어나는 것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던 날이었다. 황홀하게 슬픈 날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를 기다리기만 하다가 한 해가 다 흘렀다. 기다림은 습관이었다가 중독이 되어, 기다림 없이는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불안은 간절함이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기다림은 일생일대의 소원과 같아 감당할 수 없이 웃자랐다. 불안이 많아 꿈을 많이 꾸었고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기다림을 계속했다. 기다림을 멈추면 사랑도 멈추고, 멈춘 사랑은 곧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포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기다림일 뿐임을. 포기는 무력한 것이 아니라 애쓰는 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내 몸에 무겁게 붙어 있던 기다림을 벗어버린 후 불안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랑도 속도를 늦추다 끝내 멈추었다. 지쳐있는 사랑을 부축할 다른 마음 또한 갖게 되었다.
봄의 시작, 나는 사랑의 끝을 보고 서 있다. 사랑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