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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 May 19. 2020

아침, 아침




이렇게 눈이 일찍 떠지는 날이면 베란다에 나가 어둠이 물러가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서늘한 바람, 조용한 소리가 다녀가고 나면 서서히 밝아지는 아침이 있다. 이곳의 아침은 새벽을 밀어내듯 오지 않고, 새벽을 물들이듯이 찾아온다. 나는 그런 아침의 배려가 좋다. 아침, 아침 하고 발음할 때 꼭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좋다.


영국에서 공부를 할 땐 풍성한 잔디밭 쪽으로 창이 난 독방에서 지냈다. 커다란 가로수도 많았고 주변이 온통 초록이었다. 큰 도시였지만 자연도 인간만큼 풍부한 고마운 곳이었다. 영국의 여름에는 밤이 별로 없었다. 아홉 시까지 해가 지지 않았고, 다음날 일찍 아침이 찾아왔다. 새벽은 짧았다.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아침은 들이닥쳤다. 그곳의 아침은 늘 새소리와 함께 왔는데, 왁자지껄한 그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눈을 뜨면 다른 세계에 와있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되었다. 맑고 싱그러운, 쨍하게 외로운 아침이었다.


낙성대역 자취방에서의 아침은 먼 새벽부터 시작됐다. 그때 난 열심일 뿐 잘하는 것이 없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밤중에 일어나 다시 잠들기를 청하며 누워 있어도 한 시간 두 시간 정신이 말짱했다. 조금씩 밝아지는 새벽을 보며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가끔, 적막하고 척박한 원룸촌의 새벽을 일기에 옮기기도 하고 난데없는 대청소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침 안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시간에게 쓸모없어 보였고 잠이 필요했기에 하루하루 찾아오는 새벽과 아침을 하나도 반길 수 없었다. 너무도 탁하고 어두웠다.


일을 그만두고, 본가에 돌아왔을 때 가장 많이 달라졌던 것은 바로 아침이었다. 그때 내 아침을 깨우는 것은 불면증도 아니었고, 새소리도 아니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분주하게 아침밥을 짓는 소리였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엄마의 버거움을 알면서도 나는 그 소리를 멈추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제발, 매일 그렇게 있어줘. 안온함은 익숙한 것이 되고 나의 아침도 이제는 자리를 잘 잡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무한한 위로감을 잊을 수 없다.


요즘의 나는 나의 불면을 조금 사랑하게 되었다. 적막한 새벽의 틈에서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나만 존재하는 듯한 시공 속에 매료되었다. 아직 어두컴컴할 때 베란다의 식물들이 밝아질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새벽과 아침 사이의 부드러운 경계를 즐기게 되었다.


오늘은 일찍 시작된 나의 아침을 이렇게 보낸다. 어스름하게 비가 오는 봄날의 아침, 내가 지나온 수많은 아침에 대해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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