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필리핀의 달동네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내가 머물던 곳은 '면형의 집'이라는 이름의 작은 수녀원 건물이었는데 외벽은 온통 하얬고, 안쪽으로 아름다운 성모상이 있었다. 인솔하는 선생님 하나,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계시던 수녀님 둘, 그리고 학생들이 열 명 정도 함께 갔는데 골목 쓰레기를 치우거나 가난한 이웃을 방문하거나 결연을 맺은 그곳 친구들과 근교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평일 낮에는 학교에도 갈 수 없고 먹을 것도 마땅찮은 어린아이들이 방문하여 글자를 공부하고 놀이를 하다가 갔는데, 보조 교사가 되어 그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날이 무진장 더웠고, 매캐한 공기 속에서 하루를 보내면 온몸이 축 늘어졌는데 야무지게 샤워를 할 수 있는 환경도 못 되었다. 음식은 대부분 입에 맞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 먹고 치워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는 선생님과 수녀님들을 따라 대형 마트에 가보는 일정이 있었는데, 얼마 없는 돈으로 과자와 초콜릿, 망고 같은 것들을 사 오며 기뻤다. 주변을 돌아보면 마음껏 기쁠 수 없는 기분이었지만 외려 그곳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많이 웃어 주었다. 그때 어른들은 산미구엘 맥주를 몇 캔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 냉장고엔 한 캔밖에 남지 않았다.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선배 언니들은 그 맛이 무척 궁금하여 반나절 그 맥주 훔쳐 먹을 궁리를 하다가 내가 총대를 매어 살금살금 부엌에서 맥주를 꺼내 왔다. 넷이서 돌아가며 한 모금씩 꿀꺽꿀꺽 넘기다 보니 금방 동이 났고 캔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맥주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게 된 건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이다. 그는 범인을 색출하기 시작했고, 가장 가깝게 지내던 나를 쉽게 의심했다. 결국 우리가 다 마셔버린 것이 들통났고 우스운 해프닝 같은 것으로 넘어갔지만 그중 나만은 그토록 시원하던 맥주 맛을 쉽게 잊지 못했다.
술을 물처럼 여기는 우리 가족들은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소주를 마셔보게 했는데 생애 첫 소주를 한 병 반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다. 대학 엠티에 가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아 선배들은 내게 계속 술을 따라 주었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데낄라 같은 것을 잘도 사 마셨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쭉, 술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아무데서나 자고, 열변을 토하고, 밤을 새우고, 다음날 고생고생을 하며 출근해도 어느새 술을 또 마시고 있다.
며칠 전, 곱고 잔잔한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저녁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떠들었다. 술을 마실 때는 내가 깊은 우물이 된 것 같아, 무엇이든 마음 깊은 곳까지 듣고 마음 깊은 데서부터 말하게 된다. 술은 좋을 게 하나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술이 만들어주는 그 깊이를 무한히 존중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침 작업실에 멋진 사람들이 놀러 왔고, 우리는 또 어떤 술을 무엇과 함께 마실까 설레는 고민에 빠진다. 사랑을 간직하고 떠난 이에게,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