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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 Mar 04. 2021

음악 일기




나는 절대음감이다. 그 사실은 아주 어렸을 때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발견하게 되었는데, 가정집에 피아노를 두고 수업을 하는 곳이었다. 2층짜리 주택 정문에 붙어 있던 '이화 피아노'라는 글씨를 아직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그 공간을 퍽 좋아했던 것 같다. 일곱 혹은 여덟 살이었고, 옆방에서 연습하는 소리가 계이름으로 들려왔다. 음표가 뛰어놀던 피아노의 집에서 나는 거실 창가 바로 앞에 놓인 피아노를 가장 좋아했었는데, 그 자리에 앉아 기억하고 있는 곡을 쳤을 때 두 선생님이 모두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마음대로 조바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계속 쳐보라 권했고 나는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무섭지 않은 것만큼 무서운 것이 많은 나이였다.


이화 피아노는 얼마 후 상가 건물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는 추운 기운이 났다. 마룻바닥도 없었고, 내가 좋아하던 나무 계단도 없었다. 그래도 거길 또 오래 다니다가 이사를 왔다.


이사를 와서도 엄마는 열심히 피아노 학원을 찾아다녔고, 그중 한 곳을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계속 다녔다. 그땐 체르니를 다 떼고 모차르트와 베토벤, 바흐 같은 거장의 악보를 들고 다녔는데 나는 그저 악보가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피아노에 대한 애정은 물론 내가 가진 재주에 대한 애정도 식어가고 있었다. 골라주는 곡을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러다 대회에 나갔다. 엄마가 나를 기특해하고 좋아해 주는 것을 볼 때 안도감을 느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편이었는데, 손등을 찰싹찰싹 때리거나 대회 전날엔 모든 불을 끄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연습곡을 연주하게 했다. 어디에도 즐거움은 없었다. 저절로 움직이는 손가락만 있을 뿐.


그 사이 학교에서는 오빠를 따라 사물놀이패에 들어갔는데, 처음엔 뒷 구석에서 장구를 배우는 새내기였다. 호기심이 닳은 친구들은 하나 둘 연습에 나오지 않게 되었고, 나는 장구가 재미있어 계속 가다 보니 어느새 고학년이 되었다. 선배들이 모두 졸업을 하고, 누가 꽹과리를 쳐볼래? 물어서 해보겠다 말했다. 꽹과리를 열심히 치다 보니 부쇠가 되고 상쇠가 되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절대 빨라지지 않고, 느려지지도 않고, 꽹과리를 높이 들어 신호를 보내고, 절정이 끝난 연주를 적절한 때에 사그라뜨리는 모든 과정이 내게는 늘 잔치였고 축제였다. 대회를 앞두고는 학교가 끝나고 날이 캄캄해지도록, 오른손에 물집이 잡히고 왼손가락 손톱이 다 닳아 벌게지도록 연습을 했는데 그럴수록 기쁨이 배가되었다. 몸짓으로 합을 맞추고, 소리가 한 몸처럼 되었을 때 몹시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매 여름방학이면 부여에 있는 한울림 교육원에 일주일씩 머물며 종일 꽹과리를 치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왔다. 외딴 시골의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그곳에서 나는 대장처럼 아이들을 이끌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견학을 온 외국 손님들에게 공연을 해주기도 했고, 우상이었던 김덕수 선생을 만나기도 했다.


공부를 더 많이, 더 오래 해야 했을 무렵부터 연주는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악기를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어진 대신 미친 사람처럼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힙합에 빠져 홍대에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막차를 놓쳐 친구 부모님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온 적도 있다. 그러다 팝송에 눈을 떴고 도서관에서 퀸 음악을 들으며, 박자를 타며 온갖 시험공부를 했다. 언뜻 밋밋하게 들리기도 했던 어쿠스틱 음악이나 인디 음악을 좋아한 건 조금 더 커서인데, 나 이런 음악 들어, 말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라디오를 즐겨 들었고, 자습실에서 몰래 라디오를 틀어 듣고 있으면 대단한 비밀이 생긴 기분이었다. 수능을 앞둔 고삼 때는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클래식 덕후인 아빠 덕분에 쉽게 쉽게 많은 것들을 찾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음악이 없이 살 수 없다. 음악을 듣고, 이거 좋아, 주고받는 일이 좋다. 누구의 힘들었을 날에 내가 듣던 좋은 음악을 보내주는 일이 좋다.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서 춤을 추는 밤이 좋다. 모두가 한껏 취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좋다. 알아주기를 바라고 쓴 가사를 알아봐 주는 일이 좋다.


어떤 노래에는 너무 많은 기억들이 스며들어 있고 그것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 영원해지는 시간이 있다. 음악은 이미 내게 많은 것을 해주었고, 앞으로도 음악에게 빚지며 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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