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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 Jan 30. 2021

모과 모임




작년 초봄부터 시작된 모임이 하나 있다. 시를 계속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창작 모임인데, 우리를 하나  모은 시인이  이름을 모과라 지었다. 모과는,  필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있음으로 좋음을 나누어 준다는 점에서 시와 비슷하다. 울고 있는 얼굴처럼 어딘가 허물어지고 찌그러진  과일을 요즘 자주 접할  없지만, 친근한 마음만은 함께 있다. 게다가 노랑은 초록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에.


 달간 쓰고 다듬은 시를 가지고 만나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데, 흐르는 음악  같을 때가 있다. 무수한 음표가 되어 발산하는 우리. 시를 읽어줄 , 읽어주는 시를 가만 듣고 있을  시간이 멈춘  같기도 하다. 나는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살피기보다 시가 나에게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인데, 어두운 시도 아픈 시도 모두  안에 들어오면 일순간 밝아진다. 괴로워하는 내게 시인은,  안에 등불이 있어, 얘기를 해준  있는데  말이 사실이라면 시는 타오르는 불의 연료가 되는 셈이다. 다른 어떤 것도, 사람도, 사랑도 내게 그렇게 해주지 못한다. 순간도 기쁨도 내게  밝음일 수는 없다.


하루는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쓴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사람처럼 금방 대답했다. “읽을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  같고요,   내리는 비를  맞고 있는  같아요.” 비가 내리기만 한다면, 그것을 맞는 일은 쉽다. 비에 젖어드는 일은 자유롭고,  속에서는 애를  필요가 없다. 요즘엔 빗속에 나가 오래 앉아 있으려 노력하는데, 여러 가지 삶의 이유로 그리할  없을 때면 마른 모래의 풀포기가 되어 시들해진다. 모과 모임은 그런 나를 부축하여 종이 앞으로 잘도 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모두 모과의 마음을 가지게  걸까.


얼마 전에는 재미있는 과제를 받았는데, ‘울부짖음’이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쓴 서로 다른 시 구절을 합치고 재배열하고 변형하여 새로운 시를 탄생시키는 임무였다. 누군가에게 울부짖음은 커다랗고 시끄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아니다. 울부짖음의 생김새는 이런 것이다.





봄이 발밑에서 녹아가요

나는 안으로만 자라는 눈물

발등에는 이끼가 피고
자꾸 미끄러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목소리를 잃었어요
뛰어야 하죠
당신을 부르기 위해선

기다린다고 말하는 대신
기다려요

도망치는 꿈을 꾸었어요

계절의 습함은
나의 습함이 아니에요

더위는 시끄럽게 울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말해요

뒤를 돌아봐요
들리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것과 잘 보이는 것, 쉬이 볼 수 없는 것과 어디에나 있는 것을 시 안에 잘 담고 싶다. 들리지 않는 것과 잘 들리는 것까지도. 분명하고 평이하게, 아주 정확하게, 무엇보다 리듬을 타며. 시는 내가 추는 춤이라 말하는 시인을 따라.


작년에  시들을 추리며 여러 죽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의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진다. 사람도 지고, 해도 지고, 풀도 나무도 이슬도 계절도 손금도  진다. 그동안  안의 많은 것들이 지고 있었기 때문에. 발등에 피어나던 이끼처럼, 이제는 피고 피우는 것들에 대해서 써보고 싶다. 어림 사이에 서있고 싶다. 어떤 다짐들에게도 귀기울이고 싶다.  바깥에서,  안에서 모두 환함에게 기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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