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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수 Jun 02. 2020

김봉곤_그런 생활

책을읽고_06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中)

폭설과 함께 번개가 치는 날을 기다리기보다 

매일 백엽상에 들러 오늘의 날씨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작가노트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심지어 주인공 이름은 작가 본인의 이름인 봉곤이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혹은 그 어떠한 것으로 이 산문작을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글의 포장지가 어떠하든 작가의 진솔하고 담백한 이야기들이 이미 그 글의 색을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봉곤은 차갑고 외로워 보이며 동시에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듯한 남자와 연애한다. 사랑하는 이를 포용하는 입장에 위치하며 자연스레 을의 포지션을 취하는 봉곤은 그 남자가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에도 그를 용서하고 이해하려 든다. 그것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에 대한 사랑을 스스로가 부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관용이다. 

그 사람에게 맘 잡고 큰 소리 쳐보기도 하지만 모든 문제에는 한 가지 원인과 한 가지의 결과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복잡다단한 생각들과 함께 그는 여전히 그와의 삶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화자의 이름을 빌려 작가의 생각을 전한다. 


나는 가끔 어떤 소설가들이 '어떠한 것으로 살아가는 삶'을 나긋이 이야기해줄 때가 좋은데 김봉곤 작가는 이 소설 말미에 '그런 생활'(p.111에 나오는 엄마의 대사절이다. "니 진짜로 그 애랑 그런 생활을 했냐?")을 살아가고 있다고 얘기해준다. 소설 속의 생활로서 그려지는 나날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다 어쩌면 영원한 것은 없지 않은가 하며 마음을 의심하다 또다시 그저 사랑하고 마는, 그러다 어떠한 일들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를 생각해보는 일. 

이러한 따듯한 생각과 말들은 '살아간다는 것'에 생기를 준다고 생각한다. 말과 글이라는 것이 정말 상대에게 쉽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야기시킬 수 있는 것인데 그러한 방향이 아닌 상대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기다려주며 포용해주는 수단으로써 그것을 행하려 노력하는 삶의 방향이 좋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삶에 오래 젖어 머물러있게 만든다. 


p.123

    - 응, 나도 어제 형한테 그런 욕망이 생기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지만, 행동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했다. 그 말하면서도 되게 자존심 상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내가 뭐가 모자란 사람인 건지 생각했다. 그 사람을 모르겠으니까, 나는 내 행동을 뒤져볼 수밖에 없잖아.


p.145

    저는 외골수가 아닙니다. 저는 눈치를 아주 많이 보고, 또 모든 것을 파악하길 원하고 알고 싶어 합니다. 모든 것을 밝혀지길 바라고 투명하길 바랍니다. 저는 비밀이 없었으면 좋겠고 거짓말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말해도 좋을 공간으로 소설 외의 것을 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산문의 잡식성은 그 구질구질함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제가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며, 그렇기에 제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산문은 제게 가장 자유로운 예술 장르입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말하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고,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저는 부단히 눈치를 보며 아주 교활하고 영리하게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p.149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감상에 빠지는 대신 눈앞의 그를 바라보며, 엄마도, 나도, 서로에 대해 정말로 모르는 채 사랑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도 엄마도 상처가 될 만큼 진부한 말을 내뱉고 때로는 미칠 듯이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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