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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수 Feb 15. 2024

오늘같은 오늘

목요일 | 2024.02.15

 또 오늘이다. 대학원생에게도 어김없이 오늘은 온다. 올해 대학원을 졸업한 고등학교 동창은 여름에 전공을 살려 취업을 했다. '대학원때는 맛있는 커피만 마셔도 힐링이더라.' 직장인이 된 동창에게 시간되면 커피 한 잔이나 하자고 말하자 그녀가 한 말이다. 영화 다큐멘터리 조연출을 하며 20대를 마무리 해야했던 나는 이대로는 평생 조연출로 살다 끝나겠다고 이참에 석사학위나 목에 걸어보자 했다. 대학원생의 심리조사 결과 90%이상이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그 친구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원서를 쓴 것이 재작년 하반기. 작년부터 학교에 들어가 1,2차 학기를 마쳤다. 예체능이니까 괜찮겠지,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작업을 여기서 원없이 해본다며 1년을 마치고 겨울 방학이 됐다. 나는 그렇게 친구가 '너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각오하고 가면 됐어' 라는 말을 왜 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던 대학교를 늦게 졸업하고 영화라는 전공을 살려 일을 하던 나는 또다시 영화를 공부하러 대학원에 앉아있다. 학교를 졸업하던 26살의 반복. 하지만 지금은 뭐든 해보겠다는 각오가 나에게 불어닥쳤던 돌풍과 비바람에 얌전히 깎여있었고 지금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헤쳐나가야하는 길이 진흙길로만 보인다. 애초에 영화감독은 꿈꾸지 않았고 나는 편집감독이 되고 싶었다. 꿈은 명사면 안된다고 하지만 그 명사에 담긴 내 소망과 결심은 나이가 먹으면서 실하게 익어가는 과일처럼 명작품들을 편집하는 일을 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그 모습은 여전하다.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은 하나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19살의 나는 '돈을 못 벌어도'라는 전제와 각오가 나에게 새겨져 있었다면 재작년엔 '돈을 벌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적게 벌어도 관심있는 일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면서도 마무리를 해왔던 과거의 20대가 왜 지금의 30대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까. 답은 당연하게도 새로운 가족을 꾸릴 준비와 같이 커온 주변인들과의 비등한 경제적 여력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내가 다른 친구들과 다르고 같은 목표를 가졌던 이들에게 설레했던 것, 내가 좋아했던 내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비단 돈을 안벌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외치던 모습만은 아니었을텐데. 그저 오늘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나날을 보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어딘가에 파묻혀있는 작은 조각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석촌호수 위 설치된 커다란 러버덕처럼 제자리에서만 주변을 돌아보며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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