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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Oct 20. 2023

오르막과 내리막

즐라해요!


평소엔 몰랐다. 늘 오가던 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자전거는 두 다리로 페달을 밞아 구동하므로 땅의 생김과 형편이 그대로 내 몸에 전달된다. 자전거를 타보고서야 매일 오가던 길을 비로소 보고 그 생김과 형편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 출발해 처음 만나는 길은 경사 15도 남짓되는 200m 거리의 내리막이다. 경사가 있는 내리막은 조심해야 한다. 부드럽게 그러나 단단히 브레이크를 잡고 내려가야 한다.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는 내리막은 두려우면서도 짜릿했다. 이 맛에 자전거를 타는구나, 싶었다. 돌아올 때 알았다. 내리막오르막이 된다는 사실을. 모든 길의 내리막은 곧 오르막이고 오르막은 내리막이었다.


오르막은 완만한 경사와 급경사로 나뉜다. 급경사가 더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구간이 길지 않은  급경사는 의외로 어렵지 않다. 오르기 전 가속을 낼 수 있는 구간이 있고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을 수 있는 허벅지가 함께 한다면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다. 급경사가 연속으로 이어져있다 해도 중간엔 평지나 내리막이 끼어있으니 가속의 도움을 받아 다시 전력질주하여 오르면 그만이다. 반면에 소나기보다 가랑비에 속옷이 젖는 것처럼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은 괴롭다.


완만한 경사는 급경사에 비해 오르막의 길이가 길어서 호기롭게 페달을 밟는다 해도 계속되는 오르막에 자전거는 지치고 만다. 기어를 변속한 보람도 없이 서서히 속도가 줄면서 허벅지의 통증을 이겨내지 못하는 순간 자전거는 멈춰버린다. 몸은 숨이 차 헉헉거리고 땀방울은 투툭 떨어지지만 길에 나선 이상 가다가 말 수는 없기에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야만 한다. 간이 휴게소와 같은 잠깐의 평지가 나타나면 자전거는 다시 힘을 내고 남은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다. 내리막이 시작되는 오르막의 끝에서 자전거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며 아무도 모르는 승리를 음미할 수 있는 기쁨도 이 오르막에 있다.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동시에 품고있다

내리막은 어떨까. 사고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일어난다. 페달을 굳이 밟는 수고가 없어도 쉽고 짜릿하게 갈 수 있는 내리막은 아주 위험한 유혹이다.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앞, 뒤 바퀴의 제어를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앞브레이크는 완전히 정지할 때 쓰이며 뒤브레이크는 속도를 조절한다. 균형 잡힌 힘으로 앞뒤 바퀴의 속도를 제어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잡아서도 안 되고 약하게 잡아서도 안 되며 어느 한쪽에만 힘이 가해져도 안 된다. 만약 어느 한쪽 브레이크에 힘이 가해진다면 뒷바퀴가 들려서 뒤통수를 내리칠 수도 있다. 특히 내리막에서는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리게 되므로 엉덩이를 뒤쪽으로 길게 빼 중심이동을 해 주어야 자전거가 뒤집히지 않는다. 길의 사정에 따라 적당한 힘으로 양쪽 브레이크를 잡으며 너무 빠른 속도가 나지 않도록 제어해야 한다. 길이 젖어있거나 낙엽과 모래, 흙이 깔려있는 길에서의 과도한 브레이크도 위험하다.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선을 놓쳐서도 안 되고 콧잔등이 가렵다고 긁어서도 안 되며 맞은편에서 오는 자전거와 뒤따라 오는 자전거도 감지해야 한다. 내리막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내리막이 주는 속도와 고단한 다리의 노역에서 해방되는 짜릿함은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이 내리막 또한 한없이 지속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다시 오르막이 눈앞에 나타나므로 내리막이 끝날 때쯤 두 다리로 힘껏 페달을 밟아야 또 다른 오르막을 넘을 수 있다. 만일 내리막의 짜릿함을 즐기다 오르막을 오를 준비를 하지 못하면 오르막은 올라갈 수 없다. 뜨거워진 숨을 뱉으며 더 뜨거운 지면의 열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내리막을 잘 내려와야 오르막도 잘 오를 수 있고 오르막의 고통을 이겨내야 내리막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평탄한 길만 걷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평지의 평화로움과 오르막의 고통, 내리막의 환희와 위험이 함께 하듯 우리 삶의 여정도 그렇다. 자전거가 가야 하는 그 길엔 평탄한 꽃길도 있고 멈출 수밖에 없는 오르막도 있고 짜릿하지만 위험한 내리막도 있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할 수는 있지만 선택한 후의 길의 생김과 형편은 자전거가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길이든 길가엔 꽃이 피어있고 나비가 날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자전거는 제가 원할 때 언제든 멈춰 서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욱신거리는 엉덩이의 통증을 느끼고 손바닥은 점차 무감각해지며 손끝이 저려온다. 허리와 무릎도 아프다. 오르막이 나타나면 한숨이 나온다. 어쩌겠는가.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자전거는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오르막을 오르고야 말겠다는 순수한 욕망과 오르막을 올랐다는 순진한 기쁨에 환호하고 자전거가 지나는 길의 풍경에 그만 마음을 주어버리고 말랑해진다. 잃어버렸던 체력을 회복하여 고난 앞에서 씩씩하게 하고 함께 가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자신을 보며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흐뭇해 한다. 자전거든 인생이든 우리의 여정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앞에 가는 사람을 믿고 따라가는 한편 뒤따라 오는 사람을 돌아보며 그들과 보조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만나는 소나기를 묵묵히 맞고 바람에 젖은 몸을 말리며 사람은 자전거와 함께 길 위에서 겸손해진다. 


사나운 계절비가 밤새 내리더니 날이 기가 막히게 좋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잎마다 깨알같은 전구를 달아놓기라도 했는지 반짝거린다. 강물도 길도 햇살 아래 모든 것이 반짝거린다. 나는 내일도 오늘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의 길에서 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자전거의 페달을 밟을 것이다. 



미니벨로라고 얕보지 마시길... 최대 35km의 고속주행도 가능한 나의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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