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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Feb 06. 2024

나는 달아나고 싶다

필사하며 나누며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달아나고 싶다.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내 것으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나는 홀연히 떠나고 싶다.


불가능한 인도나 모든 것이 기다리는 남쪽의 섬나라가 아니라 어딘지 알려주지 않은 곳, 작은 마을이나 외딴 장소, 지금 여기와는 아주 다른 곳으로, 나는 이곳의 얼굴들을 이곳의 일상과 나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낯선 이방인이 되어 내 피와 살 속에 뒤섞인 위선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 휴식이 아니라 생명으로써 잠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싶다. 바닷가의 작은 오두막, 아니 험난한 산비탈 벼랑의 동굴이라 할지라도 내 이런 소망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의지는 그렇지 못하다."

-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


<질문>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다면 어떤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것은 "달아남"의 핵심이 아닐까.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려면 그 달아남은 "홀연히 떠날"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들이 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우리는 달아나고 싶어도 사랑하는 것들이, 또는 사랑해야만 되는 미운 것들이 늘 붙잡기 때문에 달아나지 못하고 사니까.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진 못해도 언젠가 멋진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으로 로또를 사면서 일상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전 생애에 걸쳐 있었지만 달아남은 "다음에"로 유예되곤 했다. "다음에"라는 말에 녹아있는 개인적인 정서와 복잡한 상황은 단순한 어휘로 쉽게 말하지 못한다. 스스로의 처지는 물론 타인의 처지에 대해서도 섣불리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제대로 달아난 적이 없었다는 것만 분명하다. 달아남을 계획하다가도 달아난 뒤의 후폭풍을 생각하느라, 또는 체면 때문에 피하고 싶은 상황 앞에서도 용기는커녕 시작도 전에  싹을 잘라버리곤 하니까. 스스로 외면한 채 비겁한 생활인이 되어 비틀거리며 쓰러져 자는 날들을 견디는 것도 가상한 용기였다. 그래서 "용기가 없어서"라고 말하는 것도 때론 폭력적이다. 타인을 향해서든 자신에게든.


2년 전,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마음으로 짐을 차에 싣고(당시 나는 주 4일을 집을 떠나 일하고 있었다) 나는 떠나왔다. 감정의 둑이 터지면서 끝내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것으로부터 나는 달아났다. 더는 피동적인 상황에 몰리는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그날의 '달아남'은 거의 발작이었다. '나는 이곳의 얼굴들을 이곳의 일상과 나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랬다. 주변의 비난과 실망에도 불구하고 일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계를 놓아버렸다. 지긋지긋했다. 말 그대로 야심한 밤에 짐을 챙겨 집으로 달아났으니 그 놓아버림의 시작은 "달아남"이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대하니 제대로 달아나고 싶어 진다. 피동적인 상황에 몰려서가 아닌 적극적이며 생동적인 움직임으로 달아나고 싶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닌 온전한 선택으로써의 달아남, 작은 흥분이 일어나는 달아남, 어디로 갈까, 하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그런 달아남 말이다. "방을 얻다"란 시가 생각났다.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희덕, <방을 얻다>, 후략)"


나는 소백산맥 언저리 남쪽을 좋아한다. 불량한 정권의 불량한 교육을 받고 자랄 때 남도는 몹쓸 땅이었다. 스스로 대견하게도 나는 이 편견을 깨버렸다. 내가 본 남도땅은 불온한 곳이 아닌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할 만한 곳들이 많았다. 정겨운 사투리도 맛깔난 음식도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도 다 그랬다. 남도뿐 아니라 유년을 보낸 경북의 안동, 노란 은행잎의 가로수가 나그네를 맞는 영주도 좋아한다. 안동엔 병산서원이 영주엔 부석사가, 담양엔 소쇄원이 있다. 무엇보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지리산이 있고 그 아래 방을 얻어 오래 살고 싶은 구례가 있다!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

 

부석사 앞 동네는 어떨까. 부석사 바로 밑에 있는 동네에 방을 하나 얻고 싫증이 날 때까지 매일 부석사에 올라 부석도 보고 배흘림기둥도 손으로 쓸어보고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소백산맥의 능선들을 바라보면 좋겠다. '안양'이 극락이란 뜻이니 안양루에 오르는 것은 곧 극락에 오르는 것이다. 나는 매일 극락에 갈 수 있다. 특히 먼동이 틀 무렵 여명 속에 드러나는 소백산맥 봉우리들을 보고 싶다. 희뿌연 실루엣 속에 햇살이 비치며 서서히 드러나는 세상의 모습을 보면 그만 마음이 너그러워져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부석사 밑 동네를 어슬렁 거리면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낯선 여자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할 테지. 경계의 눈과 함께 나에 대해 알아보려고 몰래 나를 주시하는 눈들이 보이는 것 같다. 때로 동네분들이 "서울서 오셨소?"하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 남의 나무나 꽃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꽃이 예쁘다고 처마에 달아 둔 곶감이 탐난다고 남의 집 마당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 헐렁하게 편한 바지를 입고 동네를 어슬렁 걸어 나와 나희덕 시인의 시를 읊조리며 매일 부석사에 오르고 싶다. 이런 걸 호사라고 하는 것일 게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의 안양루 풍경은 또 어떨까. 햇볕이 쨍한 여름에 한 번, 노란 낙엽이 질 때 한 번, 보았으니 다른 모습은 알 수가 없다. 10여 년 부석사 가는 길은 온통 노란 은행나무 길이었다. 아이들은 떨어지는 은행잎을 잡으려고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은행잎 하나가 차 안으로 들어와 우린 까르르 웃었다. 별 일 아닌데도 까르르 웃으며 가던 부석사에 다시 가고 싶다. 나는 뭐에 씐 것처럼 인터넷을 뒤져 실제 지역 부동산에 연락을 했는데 부석사 동네에는 빈집이 없다고 했다. 동네에 빈집이 있었다면 방을 얻었을까. 선뜻 장담할 수 없으니 실망도 할 수 없다.



배흘림기둥
안양루와 소백산맥 봉우리들

운주사를 보러 갔었다. 화순에서 담양까지 1시간 남짓이라고 했다. 남쪽에 왔으니 소쇄원을 보고 가야 한다고 우겼다. 그렇게 처음 간 소쇄원은 희끗희끗 잔설이 깔려 있었고 찬 바람이 불던 초겨울이었다. 옷깃을 잔뜩 세우고 대나무 숲을 지나 광풍각이 바라보이는 입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운주사를 보고 와서 그랬을까.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그곳은 스스로를 외부와 차단한 세계였다. 그러나 고립되지 않았고 기막히게 세련되고 품위있는 공간이었다. 옛사람이 그랬듯 달아나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복사꽃 언덕에서 맞는 봄 새벽/오동나무 언덕에 드리운 여름 그늘/골짜기에 비치는 단풍/

 눈에 덮인 붉은 치자/나무 홈통을 뚫고 흐르는 물/다리너머 두 그루 소나무/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넓은 바위에 누워서 보는 달/담장 밑을 뚫고 흐르는 물/저물어 대밭에 날아드는 새"


이것이 소쇄원의 모습이다. 컴컴한 대숲을 지나오면 작은 집 두 채가 위, 아래 자리하고 있고 깊이 파인 개울엔 물이 흘렀다. 그 물이 흘러오는 위쪽을 바라보니 일부러 뚫어놓은 담장 아래로 물이 흐르는 곳. 


보통 유명하다는 곳을 실제로 찾아가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보다 달랐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나 너무 현대화되어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고 혹은 심미적 안목이 부족하여 실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소쇄원은 달랐다.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태어난 곳을 찾아온 기분이었다. 때로 논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는 일도 있지 않는가. 소쇄원이 그랬다. 다산초당에서 받지 못한 감동이 소쇄원에서 일어났다. 장소가 주는 분위기가 사람을 끌어당겼다. 특히 마음을 끄는 곳은 제월당이었다. 달빛을 받는다는 제월당 댓돌 위에 흰 고무신이 놓여있고 아궁이엔 장작이 타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기거하고 있었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마루에 앉아 댓돌 위에 놓인 흰 고무신을 쳐다보았다. 그날 이후 그곳에서 지내는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광풍각 아래 개울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과 바람을 느끼며 제월당 마루에 앉아 책 읽는 모습. 찾아 온 친구와 뒷산을 걸으며 두런두런 정다움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다. 햇살이 비치는 제월당 마루에선 고소한 냄새가 나고.... 대나무 숲이 소쇄원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나를 숨기고 살다가 제월당 이마 위로 뜨는 보름달을 보며 생각하리라. 보름달이 점차 사라지는 그믐달이 되어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천하에 무릉도원은 없다고 김훈선생은 말했지만(자전거 여행)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곳이 무릉도원 아닌가. 나는 광풍각 옆 너럭바위에 앉아 "*명리를 원치 않고 가난을 걱정하지 않으며/은거하여 깊은 산속에서 속세를 멀리한다네"  구절을 읊조리다 보니 조금 쓸쓸해지고 말았다. 잠깐 떠나왔으나 영 달아나지 못하는 신세 때문이었다.


뒷산 소나무 숲에 앉아 소쇄원을 바라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주차장으로 오니 군밤을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에게 혹 소쇄원 주변에 방을 얻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잘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근처 부동산에 가보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선 흔한 부동산이 소쇄원 주변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초여름에 한 번, 늦가을에 한 번 더 갔으나 비가 내려 광풍각 아래 개울물이 콸콸 흐르는 것은 보지 못했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 꼭 다시 가 보리라.



광풍각
광풍각 위로 제월당이 보인다. 저 돌들, 담벼락과 기둥에 진 그늘...
제월당 -낮엔 고소한 햇살이 밤엔 달빛이

필사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다. 지금 떠날 수 있다면 어떤 곳으로 가고 싶은가. 아니 그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알아야겠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못한 것은 치기 어린 낭만이라고 물색없는 철부지 생각이라고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서였다. 한가로운 투정이라고 스스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무수히 떠남을 꾀하고 여행기를 읽으며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살았다. 지금도 나는 "다음에"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여행의 이유, 김영하 )"


조금이라도 능동적으로 살고자 한다면 왜 살아야 하는지 묻는 대신 제대로 달아나 보자. 기꺼이 "낯선 이방인이 되어" 외로움과 낯섦 속에서 차오르는 두려움, 그 신선함을 만들자. 일상의 힘과 거룩함을 되찾기 위해서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낯선 곳에서의 고독이 나를 깊이 있게 만들고 영혼을 쉬게 한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낯선 이방인이 되어 내 피와 살 속에 뒤섞인 위선에서 벗어나" 쉴 수 있어야 한다. 이 해방이 없다면 우리의 남루한 일상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결코 내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것들이 나를 붙잡아서가 아니라 내가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내 것으로부터" 기억과 회한으로부터 달아나 봐야 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기에 부석사 아래동네든, 소쇄원이든, 제주도든 터 잡고 사는 지금의 둥지를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적극적으로 달아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관계의 여백을 발견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로 꽉 찬 시공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제대로 달아나고 싶다.


필사를 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실제 현장으로 달아나진 못했는데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달아남과 떠남을 경험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선명해졌다. 선택이 내 삶을 실제로 이끈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니 여행에서 돌아와 집 현관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필사가 이끌어 준 글쓰기의 또 다른 기적이다. 







*조선시대 문인 김인후가 소쇄원에 대해 쓴 "소쇄원 48경"의 오언절구엔 소쇄원의 모습과 계절, 교류와 문화가 잘 드러나 있다.

*적실선사, 산거(山居) 중에서 (한시)

*부석사 자료는 인터넷 이미지에서 빌려왔고 소쇄원 자료는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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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fragancia 작가님께 문의하시면 따스한 필사의 세계가 열립니다. 제공되는 글을 필사하고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자유롭게 쓰는 모임입니다. 다양한 글읽기와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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