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 그림일기 2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 오물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세상에, 오물이라니. 맞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거다. 뭐 좋은 일이라고 요즘 유행인지 뉴스엔 유사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영주와 밀양 어디쯤에서도 오물 때문에 수영장 문을 닫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놀랍고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영장의 물을 빼고 깨끗하게 청소한 뒤 다시 물을 채워 넣으려면 최소한 일주일이 소요된다. 게다가 수천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 일로 몇 가지 논란이 일었다. 그중 하나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회원의 나이와 관련하여 갑론을박 말이 많았다. 요약하면 80세 이상의 회원들이 수영장을 이용하는 것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거였다. 한 마디로 출입을 금지하자는 얘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제 겨우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돌아왔는데 나이가 많다고 수영장에도 못 가다니, 아무래도 해법은 없어 보인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회원들 각자의 윤리의식과 양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참 답답한 현실이다. 도대체가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른다. 자기 엉덩이에서 뭐가 새는지도 모른다. 아닌 척하며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한다. 심지어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이렇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권리만 주장한다. 소정의 교육이라도 받게 해야 하는 건지, 본보기로 수천만 원의 비용을 물려야 하는 건지.... 회원들의 각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나는 일주일 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댕댕이와 산책을 한 후 곧장 수영장으로 가는 것이 나의 하루 시작이었고 최근 몇 년간 이어지던 루틴이었다. 그 루틴이 또 깨진 것이다.(봄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수영을 가지 못한 첫날은 하루가 너무 길었다. 밥맛도 없고 이상하게 피곤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날은 또 왜 그리 덥고 습한지. 일을 만들어 땀을 흘리고 샤워를 했는데도 수영을 끝냈을 때의 그 상쾌함이 없었다. 게다가 나의 서툰 배려에 마음이 상한 친구는 잠수를 탔다. 나도 풍덩 물에 들어가 잠수하고 싶었다....다른 계획이 필요했다.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빌렸다. 나도 문을 닫고 집에 들어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었다. 수영 대신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탔고 먹는 것은 간단히 했다. 수영장이 문을 닫은 동안 나는 다섯 권의 책을 읽고 여섯 편의 글을 썼다. 이석원(어떤 섬세함)이란 작가를 처음 만났고 윤택수 작가의 산문(훔친 책 빌린 책 내 책)을 읽으며 감탄했다. 글 세 편을 브런치에 올렸고 나머지 세 편은 퇴고 중이다. 또 앞으로 쓸 글에 대한 구상을 하며 새 매거진 두 개를 만들어 글쓰기 방향의 틀을 잡아놓았다. 지금은 빈 매거진이지만 하나씩 채워질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머리는 쥐어뜯겠지만 설렌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내 글은 책이 될 수 있을까....
브런치 작가들은 잠재적인 출간 작가들이다. 출간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라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다.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것뿐, 훌륭하게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김서령 작가도 브런치 작가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하며 어떤 의미에선 의무다.
모처럼의 휴가였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출간을 한 작가도 아니고 더구나 유명한 작가도 아닌 나는 그동안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적었다. 글감이 생기면 쓰고 없으면 쓰지 않았는데 하루에 글 하나는 쓰고 자자, 마음먹고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을 읽다가 메모하고 메모하다가 글을 썼다. 글은 글을 부른다.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수영을 못 하면 무슨 재미로 사나 했는데 읽고 쓰느라 괴롭지만 재미있는 일주일을 살았다. 시간을 그저 소모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어서 즐겁다.
연휴와 주말이 지나면 다시 수영장에 간다. 그동안 수영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서운했는데, 얼굴을 볼 수 있겠다. 월요일엔 수영을 실컷 하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셔야겠다. 수영장이 문을 닫은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참 좋았다. 매일이 유지되는 것도, 읽고 쓸 수 있는 것도 작은 기적이다. 충만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잠수 탄 친구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