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 그림일기 2
"고요함이 자연이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나절을 마치지 못하며
소나기는
종일을 다하여 쏟아지지 않는다"
(도덕경 제23장)
십수 년 타던 내 차를 폐차했다. 이상한 상실감에 같은 차를 거리에서 보면 고개를 돌렸다. 때가 되었다는 듯이 하필 이때, 남편의 SM 5 -노바마저 심하게 덜그럭 거린다. 차도 타는 사람처럼 오래된 탓이다. 고쳐야 하는데 부품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 이 차 저 차 흘깃거리고만 있다.
노자 스승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자동차 생각만 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라 차가 꼭 필요한데 새 차를 장만하자니 돈은 없고 슬그머니 화가 올라온다. 그동안 나는 뭐 했나. 급기야 스스로 미워진다. 자동차 때문에 찌질해져서
즐거이 도덕경을 읽을 수가 없다. "소나기는 종일을 다하여 쏟아지지 않는다"는데 내 머리 위에서만 퍼붓고 있는 거 같다.
책을 덮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찌질해진 나를 구해주는 건 노자가 아니라 자동차인데 고치는 것도 쉽지 않고 주말에 계획된 일정도 차질이 생겼다. 도덕경은 뭐 하러 읽나.... 노자 선생님이 혀를 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