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살이 갓 50일을 넘겨가는 뉴비는 아직까지 종종 한국에서 연락을 받는다. 이곳에 없는 싱싱한 해산물을 먹을 때, 예쁜 디저트 카페를 발견했을 때 나의 친구들은 주저하지 않고 (주로 업무 시간에 이어폰 들고뛰어 나간다.)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초췌한 내 얼굴과 맑-은 우간다 하늘뿐이지만 말이다.
한국에선 방문도 안 닫고 자던 애가 자물쇠를 2개씩 걸어 놓았다고 하면 "우리 OO이가 셀프감금하며 살다니 ㅠㅠ" 놀라고, 여기도 동물원 가서 동물을 봐야 한다고 하면 "길거리에 사자, 치타 있는 거 아니냐"며 의아해하기도 한다.
출국 전 동기 선생님의 시 한편과 먼 길 내가 좋아하는 것만 들고 행차해준 동료 선생님. 글자 그대로 '행복'했다.
비슷한 대화는 출국 전에도 많았다. 아무리 우간다라고 말해도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는 사람들. 하하. 사실 속으로는 나도싱숭생숭해서 긴 말을 붙이지 못했다.안전/건강 교육으로 온갖 질병 이름과 범죄 동향부터 알게 되어서 정말 이러다가 큰 일 나는 거 아닌지 걱정이 앞섰기때문이다.
그리고 가족,친구들과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니!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론 하루라도 먼저 안 사람들과의 편안함이 그리울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어떠한 종류의 파견 생활에서도 이런 큰 감동의 선물은 받지 못할 것이다 흑흑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나 아프리카에 대해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는 친구들에게) 선뜻 연락하는 건 약간의 주저함을 이겨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보통의 20대 후반은 로컬 마켓을 혼자 갈지 말지, 저녁 7시 넘어서 들어와도 될지 등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으니까. 공감받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으려면 거기에 대한 긴- 설명을 덧붙여야 하니까.
그래서 더더욱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안부를 물어봐주는 이들의 연락이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시인 '꽃자리' 일부
출국 직전, 선한 인상의 동기 선생님께서 이 시를 공유해주셨다. 우리가 파견 생활을 하면서 어떤 것을 해볼까, 어떤 마음가짐으로지내야 할까 고민하던 시간에 조곤조곤 읽어주신 시다. 평소 담백한 글만 좋아하는 나지만 유난히 저 시는 뇌리에 박혔다. 덕분에 (예상했던 대로) 마냥 즐겁기만 한 파견 생활은 아니지만 내가 있는 곳이 '꽃자리'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뇌게 한다.
출처 - 인스타그램 @momentary_me
우리는 멍 때린다고 하면서도 생각을 쉬지 않기 마련인데, 그 무수한 생각 중 '내'생각이 났다는 건 정말 고마울 뿐이다. 나 한국에서 괜찮게 살았네? 이런 착각도 하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