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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민 Sep 29. 2020

할아버지와 고추밭, 기찻길, 원당

 사람은 각기 최초의 기억이 다르다.

내 최초의 기억에 대해 말을 하자면, 아마도 서너 살 때 즈음. 새벽 등산을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봤던 기억이 있다. 살짝 이야기를 더하자면, 당시 살았던 집의 구조와 약간의 가구들도 간간이 떠오른다. 그때 살았던 지역은 대구였는데, 그곳에서 약 3년의 기간 동안 살다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원당으로 이사 가게 되었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의 일상은 매일 똑같았다. 아침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남은 라면 국물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청양고추를 넣은 후 밥을 말아 먹었으며 항상 라면과 함께 소주를 먹었다. 가끔 방에 있는 작은 창문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기도 했고, 우리─나와 언니─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기 전까지 아파트 뒤에 있는 작은 고추밭에 나가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우리는 하교 후에 대부분의 시간을 아파트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보냈는데, 할아버지는 부모님이 퇴근하시기 전에 우리를 집에 데려오고, 깨끗하게 씻긴 후에 잘 자리에 눕혀 재워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우리─나와 언니─가 일주일 중 5일을 놀이터에서 보냈다면, 남은 2일은 할아버지가 아끼며 심은 고추밭에서 보냈었다. 할아버지의 고추밭을 가려면 아파트 후문에 있는 작은 폐역을 건너가야 했는데, 폐역이기는 해도 간간이 기차가 지나갔기에 그 순간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렇게 높지 않을 기차역의 플랫폼이 당시에는 100cm가 겨우 넘는 키였기에 마치 운동선수가 빙의된 듯 온 힘을 다해 넘어가야 했다. 기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는 기차역의 선로를 밟으며 백지영의 <사랑 안 해> 뮤비를 따라 하며 놀기도 했다. 이렇듯 당시 우리─나와 언니─가 지나다니는 모든 곳은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었다.
 폐역을 지나고 나면 작은 나무 창고가 있었고 그 옆에 할아버지의 고추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추밭 옆에는 누가 친 것인지 모를, 나무 울타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새끼 진돗개 두 마리가 있었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어디서 주워와 키웠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을 좋아했다. 여름이기는 했지만,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시간이라 그렇게 덥지 않았던 당시의 날씨. 바람에 흩날리는 고춧잎, 무거운 소음을 내며 지나가는 기차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강아지의 울음소리. 그리고 우리─나와 언니─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시선과 몸짓. 어느 하나 나를 채우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가끔은 고추밭 근처에 있는 옛날 다방에 놀러 가기도 했다. 담배 냄새와 세월의 냄새가 밴 연갈색의 가죽 소파에 앉아 다방 아줌마가 주는 핫초코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가 다방 아줌마가 투덕거리며 대화하는 것을 보고 어린이다운 발상을 던지며 웃고 떠들었던 기억도 간간이 떠오른다.

 원당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 할아버지와 고추밭 그리고 기찻길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그 시절의 나를 이루었던 것의 대부분이 그것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와 할애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와의 애정이 무한히 깊었고 지금도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원당은 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고, 고추밭은 아직도 자라나고 있으며
기찻길은 여전히 폐역으로 멈춰있다.
당시의 나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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