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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빛 Dec 28. 2022

5. 지극히 현실적인 주재원 와이프의 삶

지난여름 한국에 잠깐 다니러 갔을 때, 한창 골프에 빠져있는 사촌언니는 아직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나에게 왜 그 좋은 환경에서 골프를 치지 않냐며 거의 화를 내다시피 했다. 나는 골프에 관심이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언니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주재원 와이프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며, 너는 거기서 골프도 안치고 뭐 하냐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재원 와이프의 삶은 아마도 사촌 언니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마사지를 받고,

자주 골프를 치러 고,

메이드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나와 카페와 맛집 투어, 쇼핑과 네일아트를 받는 일상.


사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마사지나 네일 아트를 받고 골프를 칠 수 있으며  메이드를 고용할 수 있으니까. 그동안 지켜본 결과 이렇게 사는 분들도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우르르 커피숖으로 가는 무리들도 있고, 열심히 운동을 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고, 공부나 일로 바쁜 사람들도 있고,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른 문제인 만큼 사실 함부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재원 와이프는 어찌 됐든 '팔자 하게 놀고먹는' 이미지인 것 같기는 하다.(억울하다!)


그럼 나는 이 중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마사지와 네일은 합쳐서 열 번도 안되게 받아 본 게 전부고 골프는 치지 않으며 메이드도 고용하지 않는다.

꾹꾹 주물러주는 마사지가 아니라 쭉쭉 밀어주는 마사지는 몇 번을 받아봐도 시원한지 모르겠고

네일아트는 한번 받고 나면 손톱이 남아나지 않아

석 달은 쉬어야 한다.(일 년 내내 어떻게 받는 걸까?)

게다가 사람을 부리는 것 자체가 어색

특히 모르는 사람이 집에 와서 내 집에 손을 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 메이드는 쓰고 싶지 않다.(메이드를 구하고 교육시키고 물건이 없어졌네마네 하는 정신노동도 피곤하다)


대체적으로 필요하않아서  지 않는 일들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모든 것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무척 저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을 기준으로 삼아서 비교했을 때 이야기다.

어쩌다 며칠 정도 여행을 오는 것이라면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에 눈이 휙휙 돌아가 신나게 즐기겠지만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를 때까지 베트남에 살아야 한다.


아무리 저렴한 비용이라도

비용은 비용이다.

남편의 월급은 한계가 있고

그 안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살림을 운영하며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나에게는 불필요한 지출이 될 수밖에 없다.


남편의 월급이 적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베트남에 나와 있는 대기업 주재원들은 회사의 이름에 걸맞은 엄청난 복지(웬만한 중소기업 주재원 월급과 맞먹는 월세 지원, 국제학교 학비 100% 지원 등)와 월급을 받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한정된 기간에만 이곳에 살 예정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때 누려라! 하는 마음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환경이라면 아마 조금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한들 지금과는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나와는 상관없는 현실이니 나는 내 상황에 맞게 살아야 한다.


베트남 물가가 싸고

쌀국수도 맛있고

열대과일도 지천이지 않느냐고 하지만

싸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싸다고 다 가능한 게 아닌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므로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고

(쌀국수 먹으면 되잖아!라는 말은 제발 그만...)

그런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어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한식당을 이용하자면

한국과 비슷 비용이 든다.

현지 마켓에서는 입맛에 맞는 제품을 찾기가 어렵고

한국 마켓에서 살 수 있는 한국 제품들은 비싸다.

(특히 냉동식품들은 너무 비싸다.)


외국인이라 병원비도 비싼 데다

한인 약국에서 사는 약값도 만만치 않다.

감기로 병원 한번 다녀오면 기본이 3~4만 원이다.(대한민국의 의료보험은 정말 세계 최고다)


여행 올 때마다 잠깐 먹었던 망고는 꿀맛이었지만

다디단 망고를 매일 먹을 수는 없다.

한국에서 발에 차이게 먹던 사과나 귤은

비싼 미국, 뉴질랜드산 수입 사과오렌지로 대신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길러졌는지 모를 중국산을 먹어야 한다.


아이 교육비는 또 어떠한가.

한국보다 학원비가 2배는 비싼 데다 공급도 부족해서

한인 선생이 하는 모든 수업은 부르는 게 값이고

저학년 때 흔하게 시키는 예체능 교육도 맘 편하게 시킬 수가 없다.


저렴해도 질이 낮은 베트남 물건에는 손이 잘 안 가고

저렴해도 위생 수준이 낮아 보이는 로컬 음식점에는 쉽게 발길이 안 기에 필요한 경우에만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


외국이든 한국이든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뭘 해도 돈이 들고 그 돈에는 한계가 있어 언제나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는 것.


너무 구질구질한 현실만 나열했나 싶지만

지극히 솔직한 일상의 모습이다.

하지만 때때로

한국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호사를 경험하는 것도

사실이기에 더 기쁘고 감사할 뿐.


그러므로 앞으로

'팔자 편한 주재원 와이프'라는 말은

요리조리 잘 알아본 뒤 확인된

일부 특수 계층에게만 하도록 하자.


어쩌다 한 번씩만

팔자 편하게 사는 날이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덧1> 아, 나는 운동과 외국어 공부를 선택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구질구질하게 투덜투덜하며 집에만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덧2>솔직히 남편이 현지에서 회사를 옮겼으니 나는 이제 주재원 와이프는 아니다. 현지채용된 외국인 근로자의 아내 정도랄까? 현지채용과 주재원, 주재원 별 사는 아파트에 따라 자기들끼리 급? 을 매기는 재밌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주재원와이프 #지극히현실적인 #하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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