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한창 방영 중인 '더 글로리'가 인기다. 나는 넷플릭스를 가입하지 않았지만 '더 글로리' 2부가 방영을 시작한 다음 날, 텔레비전으로 2부 정주행을 완료했다. 또한 디즈니+에 론칭한 '카지노'도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고 티빙, 애플티비 등 각종 OTT에서 유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지간한 것은 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OTT에 가입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 모든 채널의 유명 프로그램을 볼 수 있냐고? 그건 바로 하노이의 한국 TV 서비스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SK, KT, LG U+ TV를 신청하면 기본 한국 방송 채널에다 각종 영화, 드라마를 VOD로 이용할 수 있는 셋톱박스를 집에 달아주는 원리와 같다. 다른 점은 하노이에서 신청한 TV 셋톱박스에는 한국 방송의 실시간 시청 외에도 개봉 영화, 각종 OTT 프로그램 중 유명한 것들이 대부분 자동으로 업데이트되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톱박스를 신청할 때 약정 기간에 따른 비용을 선불로 내면 그 외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없어서 보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중국의 서버를 통해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얼마전에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 방송 외에도 각종 OTT 프로그램까지 이것저것 볼 수 있는 것이 좋다고만 생각했지 이것이 불법적인 서비스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은 외국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도 여러 곳인 데다 엄연히 사용료를 내고 있으니까 별 의심 없이 이곳 나름의 법칙을 따라 한국과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 TV 업체를 소개해 달라는 단톡방의 문의에 누군가가 한 답변을 통해서, 이것이 불법적인 서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간간히 방송이 잘 연결되지 않을 때마다 텔레비전 하단에 뜨는 '중국 측 서버가 공격받아 방송이 원활하지 않다'라는 공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베트남 인터넷망을 이용한 서비스이니 공공기관의 승인 같은 걸 받지 않고서는 할 수 없을 사업인 것 같긴 한데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실시간 한국 방송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이러한 업체에 서비스를 신청하는 방법 뿐이니 아쉬운 사람이 눈을 감는 수밖에.
사실 이러한 합법적인 불법 현장(?)은 밖에 나가도 쉽게 볼 수 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거리에 나가보면 소위 말하는 짝퉁 명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가장 목이 좋은 자리에서 대놓고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카피 제품들을 파는 가게들은 골목 구석 안쪽에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영업을 할 것만 같지만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 주변으로 가짜 명품들을 파는 가게가 수두룩하다. 그만큼 쉽게 구할 수 있어 고민 없이 구매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많이 본다. 에코백만큼 샤넬, 구찌가 흔해서 진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속상할 것만 같달까. 습하고 더운 날씨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진짜 명품 가방에 금방 곰팡이가 피어 사달이 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가짜 명품 구입에 대한 이유라면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곰팡이가 핀다해도 구매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것 있다면 바로 책이다. 무게가 있다보니 한국에서 배송을 받기도 쉽지 않고, 현지 서점에도 영어 원서들은 많지만 한국어로 된 책(호치민에는 교보문고가 진출했는데 하노이는 아직이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역시나 하노이에서는 불법 복제된 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 한국 교재를 많이 파는 서점이 있다길래 방문했다가 뭔가 이상해서 가만히 살펴보니 하나같이 복제된 문제집들(책값은 한국의 정가에 못지않는 가격이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를 때였다. 아직 저작권 같은 권리들이 제대로 잡혀 있지도 않은 데다 복사비, 제본비 등이 엄청 저렴해서 길거리에는 복사 가게가 많고 책을 복사해서 보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잠시나마 출판업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출판 시장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제본과 복사의 맛을 들이고 난다면 과연 정식으로 출판된 책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
불법인지 합법인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잘못인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 잘못인지를 이야기하고 싶다기 보다는 하노이의 오늘의 모습을 얘기하고 싶었다.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오락가락 방황할지라도 일단은 살아가야 하는 생활인이기에 하노이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