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지만 결혼 전에는 환경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소소한 개인의 삶을 살면서 대단히 환경을 위협하는 일을 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고, 한 번씩 미디어나 영화 등에서 표현되는 환경오염 이슈나 전지구적 환경 재난 등에 대한 내용을 볼 때에도 '괜찮아. 나는 저때는 이미 지구에 없어'하며 웃어 넘기기 일쑤였다.
아이가 생기면서 언젠가부터는 그런 농담을 할 수 없어졌다. 내가 없어도 여전히 내 아이가, 그리고 내 아이의 아이가 살아갈지도 모를 지구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최소한의 양심이 생겼달까.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사용하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분리수거 철저히 하기, 고기 소비 줄이기 등 일상에서 내가 지킬 수 있는 선은 열심히 지키며 살아왔는데, 하노이에 살면서 작디작던 내 양심은 솜사탕처럼 녹아버렸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한국의 8~90년대 정도의 생활 수준을 갖고 있는 하노이에서는 분리수거는 외계 행성의 일이다. 분리수거는커녕 음식쓰레기와 일반 생활 쓰레기를 뒤범벅해서 버리는 것도 일상이다. 아파트 각 층에는 trash room이 있고 음식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나누어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곳은 늘 벌레가 살고 있......오 마이 갓.)
처음엔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종이, 비닐 등을 막 섞어 버리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게다가 커피 한 잔도 배달이 가능한 이곳에서 하루종일 쏟아지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정신이 혼미했다. 하지만 이곳의 삶에 적응하면서 점점 무뎌져 갔다. 나 혼자 뭘 어떻게 하겠다고...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날이 더운 만큼 에어컨을 항상 켜고 살아야 하는데 전기세와 수도세가 회사에서 지원되기 때문에 집을 비울 때도 에어컨 끄는 것에 민감해지지 않아 졌고, 빈 방에 켜져 있는 불을 잘 끄지도 않게 되었다.
열대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비가 잘 오지 않아서(한국은 엄청난 폭우로 여름마다 난리인데 이곳은 오히려 비가 오지 않고 있다!) 하노이시에서는 전력난을 해결하고자 구역별로 전기를 하루씩 끊어버리는 패기(?)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생수를 사 먹다 보니 산처럼 쌓이는 플라스틱 용기들,
하루에 봉지 하나는 너끈히 채워지는 쓰레기들,
반찬 하나를 시켰는데 용기와 용기를 포장한 스티로폼, 그 모든 걸 담아 여러 겹으로 포장한 비닐봉지들,
배달음식을 시키면 말할 것도 없이 쏟아지는 쓰레기와 심화되는 전력난에도 점점 무감각해지는 나....
이래도 될까. 정말 이래도 될까.
길거리를 뒤덮고 있는 쓰레기들을 보며
다들 이렇게 사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할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래도 꾸준히 해야 되는 건 아닐까.
일단, 배달 음식을 줄이고 좁고 작아서 불편한 주방이지만 요리를 더 해 먹기로 했다. 집밥으로 건강도 지키고 생활비도 절약(하는 게 목표였는데 시키는 게 더 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무엇인가......)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겠다.
마트에 가서는 웬만하면 봉지를 받아오지 않기로 했다. 묻지도 않고 물건을 담는 통에 재빨리 봉지 노노!(아직도 제자리인 이놈의 베트남어....)를 외치고 있지만 왜?안받아? 하는 눈빛을 이겨내 보도록 하자. 쓰레기를 버려야 하니까 봉지가 아예 없으면 안 되긴 하는데 과자 한 개를 사고도 습관적으로 받아오는 봉지들은 이제 그만이다.
에어컨 온도는 올리고 빈방의 에어컨과 전깃불은 잘 끄도록 하자. 내 돈 아니라도 누군가의 돈이고 지구의 자원이다.
수질이 낮고 석회질의 농도가 짙은 물을 정수해서 먹는 것이 꺼림칙해서 한국의 생수를 사 먹지만
생수에 포함되는 미세플라스틱과 고온의 컨테이너에서 오랜 시간 실려 온 생수는 과연 안전한 것인지, 게다가 생수 때문에 쌓이는 쓰레기는 또 어떡할 것인지 요새 고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아직 이 문제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가득한 이곳의 하늘은 너무 예쁜데 발에 차이는 쓰레기들에 마음이 쓰린 현실의 삶.
지구야, 미안하다.
어떻게든지 노력은 해 볼게.
어쨌든 계속해보긴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