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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빛 Nov 14. 2023

8. 하노이 두 번째 집

재재계약을 앞둔 시점에 집주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월세 인상을 요구했다.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수요가 늘면서 월세 인상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고 인상 비용이 무리가 되는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올려주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번 재계약 때도 월세를 인상한 터라 이번에 또 월세를 올리면 회사 지원액에서 초과되는 금액은 우리가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터였다.

그래봤자 얼마 안 되는 비용이니까 웬만하면 그냥 살고 싶었다. 집 컨디션도 좋고 나름 적응해서 잘 지내면서 종종 커피 마실 수 있는 지인들도 생긴 데다 무엇보다도 이사가 지긋지긋했다. 하노이로의 이사를 위해 서랍 속 먼지 한 톨까지 다 꺼내 정리하면서 이사에는 학을 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남편은 그 얼마 안 되는 비용이라도 자비를 부담하는 것이 아깝다며 나를 설득했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집으로 이사를 한다면 그 차액을 우리가 사용할 수도 있는데 굳이 초과 금액을 지불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남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데 집에 문제가 있어서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 문제로 이사를 선택해야 상황이 조금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올려달라는 비용이 그리 높은 수준도 아닌데 고작 그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이사를 간다고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내 알량한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 회사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곧 남편 회사의 수준, 나아가 집의 경제 수준을 나타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 이곳의 삶이기에 나 혼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자존심은 이내 조금이라도 아끼고 더 좋은 곳에 쓰자는 냉정한 자본주의적 마인드의 외침에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계약 종료 한 달 반쯤을 앞두고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먼저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이의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는 곳, 내 활동 환경이 너무 달라지지 않으면서 월세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는 저렴한 아파트 2~3곳을 선정했고 딱 그 아파트의 매물만 보기로 했다.


한국어로 진행을 할 수 있는 몇몇 부동산에 열심히 손품을 팔았지만(대부분 카톡으로 매물을 소개해 주기 때문에) 노옵션 매물이 거의 없는 데다 집이 있다고 해서 보러 가려고 하면 금방 계약이 되어 버리곤 해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이 좋아 보이면 거리가 멀고, 렌트비가 싸면 집이 별로인 것 같고.


비용 절감을 위해 이사를 하기로 한 거 이왕이면 가장 큰 보람을 느끼기 위해 월세의 마지노선과 이사비 외에 청소와 방역비까지 지출해야 할 비용을 정리해서 예산의 한도를 정해놓았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내 입맛에 맞는 물건은 잘 나타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손을 잡아 끈 것은 결국 예산 한도를 꽉 채운 물건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크고,

넓은 현관!! (목놓아 부를 이름이여.....)과 신발장이 있고

한인 거리에서 가까워서 걸어서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는 집. 결국 우리는 이 집을 선택했다, 비어있는 집이어서 미리 청소와 방역 작업도 예약했다.


그리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삿짐 업체를 수소문했다. 사실 하노이에서 이사를 하는 데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이사할 때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현장 인력들을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많은 사례가 있었기에 그런 일을 피하고 싶었고 결국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업체에 의뢰했다.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 사장님이 운영하는 업체였다. 아마 한인 이사는 이분이 다 하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나도 바로 견적을 받고 예약을 한 뒤 애꿎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귀중품들은 미리 챙겨 이동시켜 두었다.


대망의 이삿날 아침,


8시부터 7명의 이삿짐 인부들이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한국 이삿짐센터의 박스에 들어가지 않는 부피 큰 가구와 짐들은 전자레인지에 들어갈 것도 아닌데 랩으로 돌돌 싸여 이동되었다. 과연 저 랩이 나의 가구들을 흠집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인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누에가 고치를 만들 듯 탱글탱글 돌리며 가구를 감싸는 인부들의 래핑 실력을 믿을 수밖에.


게다가 냉동실에 남아있는 음식들은 아이스박스에 넣어 옮겨 준대서 믿고 있었는데

스티로폼 박스에 차곡차곡 담기는 나의 냉동식품들을 보며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의 식량들아, 조금만 버텨 주려무나.....


인해전술+속전속결의 이사는 그렇게 끝나고

짐을 다 채워 넣은 집에서 산 지 2주가 넘었다.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어

드디어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 있게 된 아이가 제일 신났고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부엌, 넓은 현관과 수납장, 창고로 쓸 수 있는 방에 각종 짐들을 보관할 수 있어 만족감이 크다.


걸어 나가면 맛있는 식당들이 많고

문 앞까지 배달되는 곳도 많아 편리해졌다.

이사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사를 하고 나니 좋은 점이 가득하다.

집주인이 내일이라도 '나가줄래?' 하면 군소리 없이 나가야 하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기에

그런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월세를 꾸준히 올려주더라도 계속 머무르고 싶다.


​벌써 하노이에 온 지 2년이 되었다.

이사도 한 마당에

새로운 집에서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사를 결정하고 집주인에게 통보했을 때

처음엔 당당하게 돈을 올려달라고 하던 주인이 목돈이 필요한 듯 1년 치 월세를 미리 주면 월세를 올리지 않겠다며 갑자기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년 치 월세를 목돈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갑자기 그러는 게 수상해서 그냥 이사를 하로 했다.


이사를 나가는 과정도 피곤했던 게 집주인 측 사람이 와서 집의 하자를 점검하는데 우리가 박지도 않은 못, 살면서 더러워진 벽, 원래부터 그랬는지 알 수도 없는 커튼의 문제까지 다 우리에게 뒤집어 씌워서 적잖은 수리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생각지도 못한 비용을 지출해야 해서 부아가 났지만 타협이 통할 상황이 아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수리 비용을 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기가 막힌 사실은 우리가 처음에 계약했던 부동산은 베트남 현지인이 사장으로 있는 곳이었는데(남편은 이 사실도 모르고 계약을 했던 것이었다.....정신차려. 남편님아.....) 우리가 살던 집의 집주인은 원래 홍콩사람이라고 했었는데 계약을 종료할 시점에서 보니 웬 법인이 가지고 있는 집이었고 (남편님은 이것도 몰랐다......) 이 부동산 사장이 우리  집을 비롯한 여러 집의 보증금을 먹고 튀어버려 난리가 났다. 다행히 우리는 아주 소액의 보증금을 받지 못했지만 사실 그 받지 못한 보증금에서 수리 비용과 남은 관리비를 제했기 때문에 큰 손해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애를 써 준, 우리가 계약한 부동산의 직원도 아니면서 그 부동산 직원의 친구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는 이유로 끝까지 우리 일을 봐준 다른 부동산 직원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물론 모르시겠지....)

매해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튀어버린 부동산 사장의 농간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어쨌든 그 부동산과의 연이 끊어져서 다행이다.

자나 깨나 부동산 조심, 보증금 조심.

투명 랩과 아이스박스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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