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빛 May 09. 2024

10. 놀이터, 그 밖의 세계

" 그러지 마. A는 그렇게 느꼈대잖아. 그만해 "

거친 눈빛으로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며 자기 아이 손을 잡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보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A의 엄마와 나는 조금 전까지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왔는데, 이제 그 정도의 친분은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있는데도 내 아이에게 쏘아붙이는 A 엄마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듣는 순간, 십분 전까지 유쾌했던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일, 아이들의 일로 어른들이 피곤한 관계가 되는 일이 결국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었다.    


이사를 온 후,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생긴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놀이터에서 놀기 시작한 초반에는 아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고 오는 날보다, 울거나 화가 나거나 속상해서 혼자 일찍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유난히 말을 세게 하거나 행동이 거친 아이로 인한 위축, 사소한 일로 규칙을 위반하는 아이와의 트러블,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아이들이 들어주지 않는 경우 등등 듣고 보면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들이지만 아이에게는 심각하고 어려운 일들이었고 그렇게 마음이 다쳐 들어오는 아이를 내가 어떻게 품어줘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 아이지만, 사실 나 역시 아이의 말을 무조건 다 믿지는 않았다. 알게 모르게 아이들은 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하기 나름이고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해도 알고 보면 내 아이가 잘못한 구석도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본 것이 아니므로 말을 아껴야지 하면서도 자꾸 내 아이만 단속하는 일이 잦아졌고, 아이의 화가 나에게 쏟아지는 일들이 반복됐다. (그럴 거면 그냥 나가 놀지 마!라고 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두 번 내뱉은 같기도 하고......)

  

구체적인 상황을 상정해서 해야 말을 같이 연습해 보기도 하고, 아이에게 양보나 타협을 권해보기도 하고, 싫으면 싫다고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라고도 하고, 모두가 다 네 마음 같지 않으니 아이들의 성격을 이해하고 너무 간섭하지 말라고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사실 그게 맞는 건지, 내가 알려주는 말들이 바른 것인지모르겠고 아이가 힘들어할수록 역시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고 함께 휘둘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갈등 속에서 친구들과 상처를 주고받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가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절대로 아이의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심각하거나 지속적인 폭력, 따돌림 이런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아이는 속상해서 들어와도 자고 일어나면 또 까맣게 잊고 다퉜던 친구를 찾았고, 몇 마디 대화로 금방 화해하고 즐겁게 놀기도 했다. 아이들 사이의 관계란 얼마나 유연한 것인지 때로는 아이보다 속 좁은 나를 반성하며 아이도 나도  서서히 그렇게 적응해 나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한 명인 A가 엄마들이 있는 쪽으로 오더니 내 아이가 자기를 따돌리는 것 같다면서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는 식으로 내 아이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는 자기 엄마와 함께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내 아이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은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얼마 후 울고 있는 내 아이를 달래주며 함께 있던 다른 친구 하나가 나에게 오더니 A가 잘못한 거라고, A가 사과해야 하는 일이라며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A와 그 엄마는 들어가 버렸고 나는 늘 일어나는 일이 또 한 번 일어난 것이라는 생각에 우는 아이를 잘 달래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A의 엄마 및 다른 몇몇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고 하교한 아이들을 함께 맞이한 후 놀이터로 왔는데 그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이에게 물으니, A에게 어제 일에 대해 얘기하고 풀려고 했던 모양인데 대화의 시작을 듣자마자 A의 엄마가 그렇게 말문을 막아버린 같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지도 않고 순식간에 내 아이를 나쁜 아이로 만들어버린 순간을 눈앞에서 목격해 버리니 마음이 너무 불편했는데 그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아이에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고, A와는 자꾸 불편한 상황이 생기니 너무 얽히지 말라며 화를 내버렸다. "그런 애랑 놀지 마!"라는 말을, 정말 돌리고 돌려서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 앞에서 너무 어처구니없는 대처였던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나도 화가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 같다. 게다가 A의 엄마는 예전에도 놀이터에서 자기 딸을 따돌린다며 한 아이를 무섭게 몰아세운 적이 있었는데 놀이터에 아이들, 엄마들이 바글바글한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한 아이를 잡아 세우는 것을 봤던 터라 내 아이가 곧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평생 누구와 싸워 본 적이 없는 유리멘털이라 내 아이가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맞서 싸우며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겁을 지레 먹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학원에 간 후, 하원하는 시간에 또 마주치게 될 텐데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아까 왜 그랬냐고 물어봐야 하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냥 인사해야 하나 오만가지 불편한 생각들로 마음이 어지러운 가운데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하필이면 A의 엄마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어찌해야 할까 망설이는 짧은 순간에 A의 엄마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눈길도 주지 않길래 나도 그냥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굳이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A의 엄마는 자기 아이에게 뛰어갔고 그게 그녀를 본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2주 정도가 흘렀지만 한 번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일단 아이가 혼자 등하교, 등하원을 하고 있고 내가 더 이상 놀이터에 나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A의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건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그녀 입장에서는 내가 먼저 자기를 못 본 척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오후 놀이터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가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그녀도 나에게 감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막상 써 놓고 보니 정말 별 일도 아닌 거 가지고 유난떨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는 한데,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더 크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생전 겪어보지 않았던 상황이어서 며칠간 마음이 복잡했다. 같은 학교,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때문이라도 오다가다 안 볼 수 없는 사이인데 뭔가 불편한 마음이 생겨버렸고, 그 마음을 풀 시간을 놓쳐 버렸으며 이제는 그 마음을 풀고 싶지도 않아졌기 때문이다.


아이들끼리의 문제는 아이들끼리 푸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고 매번 개입하는 그녀의 육아관이 나랑 맞지 않고, 만났을 때 하는 대화의 절반 이상이 아이들의 학업 진도, 학원, 평가 결과 등에 치우쳐 있는 그 엄마와의 성향 역시 나와는 맞지 않는다. 아마 여럿이 만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단 둘이 가까워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와 내 아이 역시 취향이 맞지 않기 때문에 단 둘이 노는 일도 결코 없을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A와 그 엄마와는 거리를 두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미 A엄마의 레이더에 내 아이는 A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는 듯해서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논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정말 이렇게까지 새가슴인가 싶지만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떡하나.


게다가 A의 엄마는 이 아파트에서 어지간한 사람들과는 모두 친분이 있을 정도로 인맥이 넓어서 같이 어울리고 있는 다른 엄마들과 이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그들에 비해 나는 혼자고 어디에도 털어놓을 데가 없다. 사실 툭 터놓고 얘기하면 얘기할 거리도 안 되는 일을 계속 내 마음속에서 뭉쳐놓고 키워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이번 일을 통해 나는 A 엄마의 성향을 파악했고 이런 작은 일로도 멘털이 흔들리는 나의 나약함을 마주했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일에 더 이상 피곤하게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A의 엄마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본인만의 가치관, 육아관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랑 맞지 않아 거리를 두려는 것일 뿐이다. 학교, 학원, 놀이터 등 아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독수리처럼 서서 지켜주고 싶은 것이 그녀의 육아관이라면 아이에게 시선을 떼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는 성장하고 독립하는 것이라는 조선미 박사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더 편한 나는 내 육아관을 따르면 된다. 만약 오늘이라도 나가다 마주친다면 가볍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은 후(여유가 된다면) 나는 내 갈길을 가야지. 예의는 지키되 확실한 선도 지켜야지. 그리고 이렇게 불필요한 감정으로 힘들어하지 않고 아이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나 자신의 성장에 더 집중해야지.


놀이터 밖 세계에서 나는 오늘도 내 아이를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와 지나가는 길에 드디어 그 엄마를 보았다.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그녀를  보며 나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했구나 잠깐 머쓱했다. 다혈질인 그녀가 이미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씩씩하게 인사하는 아이 옆에서 나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하지만 이미 그어진 선을 지우진 못할 것 같다. 너무 속좁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뭐.



매거진의 이전글 9. 놀이터라는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