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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보 Jan 20. 2023

반도체 연구원의 일상

따로 또 같이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곳은 아직까지는 회사다. 그리고 그 시간은 특별하지 않는 이상 반복된다.


정형화 된 틀 안에서.




07:00


지난밤 야근의 여파를 느낄 겨를도 없이 밤새 수많은 메일들로 채워져 있다. 수신과 참조 메일을 핵심으로 빠르게 훑어가며 오늘의 하루를 그려본다.


기본적인 단위는 하루지만, 파트 및 팀 자체는 주간단위가 더 핵심이다.


나만의 공간에 한주를 기준으로 하루하루를 빼곡히 채워나간다.


모니터를 응시하며 지난밤 아쉬운 허기를 달래 본다. 출근길에 받은 아침 메뉴가 퍽이나 마음에 든다. 리모델링하며 새롭게 마련된 즉석요리는 아직까지 나의 입맛에 유효하다. 초심이 변치 않기를 바라며 본격적인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08:00


랩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상황에 따라 사무실 내 자리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현장감을 느끼기 위해. 실제로 마주해야 이해되고 풀리는 것이 있다.


장비는 24시간 묵묵히 그 역할을 수행 중이다.

긴 밤에 나온 분석 결과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기본적인 분석 업무는 ‘시편 제작- 장비 분석 - 결과 재구성과 해석 - 최종 보고서 작성 및 공유‘ 순으로 진행된다.


이전과 달리 하나의 장비에서 결과를 도출하며 문제의 참 원인을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다양한 장비 간 correlation & correction 통해 최종 결론을 도출한다.


더 중요한 것은 분석 결과의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의뢰자인 소자/공정 엔지니어에게 있다. 결국 내가 노력한 결과의 빛은 핀조명 아래 독백, 방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진정한 소통, 대화를 이뤄야 한다. 끊임없는 엔지니어링을 통한 더 나은 스텝을 도모하며.



10:00


결국 분석을 하는 것은 장비 그 자체다. 사람이 조작을 할 뿐. 사람도 이따금씩 아프듯 장비도 마찬가지다.


반복된 업무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이미 발생했던 문제가 재발하기도, 가끔 새로운 문제가 돌발적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상 일시적인 오류인지, 실제 장비 하드웨어적인 문제, 다른 외부 환경 문제인지 등 다양하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는 것(BM, Breakdown Maintenance)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장비 문제에 따른 분석 TAT (Turnaround Time) 지연은 연구개발 생산성 저하로 연결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주기적으로 교체가 필요한 소모품 parts를 미리 준비했다가 예방 정비(PM, Preventive Maintenance)함으로 장비 가동률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14:00


분석 고유의 기술 자체도 중요하다.


 ‘분석기술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나 자신이 프로젝트 리더가 되기도 하고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와 ‘이유’.

과제 진행의 당위성을 도출하기 위해, 시간은 유한하며 그 시간 속 나의 시간은 제한적이기에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문제가 되는 배경을 제시하며 대내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수준도 비교한다. 배경을 바탕으로 필요한 수준의 목표를 수립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 기술도 고민하고 실험을 위한 기간도 설정한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의 경우, 어렵다. 기준이 없기에. 단순히 장비를 Set-up 해서 풀어낼 수 있는 기술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를 실제 애플리케이션 차원으로 확대, 풀어내야 한다. 그게 바로 엔지니어의 역할이다.


우리 내부적으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산학과제 형태로 외부 대학, 연구기관하고 과제를 같이 만들어간다.


인고의 시간을 지난 최종 결과물은 논문, 학회 발표, 특허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phase를 나눠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16:00


코로나가 시작된 지 벌써 3년이 흘러가고 있다.


코로나가 심각한 시절에는 실내외 인원 규정이 있었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상의 대회를 나누는 것조차 제약이 컸다. 그로 인해 사내 다양한 세미나와 행사 또한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간소화 진행하였다.


하지만 코로나 특수를 발판으로 비대면 Tool의 개발과 활용이 극대화되었고 이제는 위드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는 불편함을 빼고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중이다.


대면과 비대면의 양립으로 다시금 시작하는 기술 세미나, 포럼, 연구성과 발표 등 다양한 정보 공유의 장이 열린다. 내가 원하고 시간이 맞으면 자유롭게 참여 가능하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수많은 강연 중 기억에 남는 강연이 있다.


NASA에서 근무하면서 달에서, 지구 밖 저 멀리 행성에서 사용하기 위한 반도체를 만들고 연구하는 이야기. 알파, 감마선 등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인해 특수한 반도체가 필요하고 특히 새로운 물질을 사용한 패키징 기술이 인상깊었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도전해야 하는 이야기.


내 삶의 실패와 도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19:00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 뒤돌아 보면 나름의 쌓인 결과물이 있다. 그 의미는 물론 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 상대적이다.


나만의 고유한 가치가 절대적으로 통용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도 물론 마주하고 극복하면서.


속도에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특히 남들과 비교를 하며 욕심을 부리고. 결국 속력보다 벡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만 흘려보내면,

Quantum jump를 이룰 수 없다.


무엇인가 파격이 필요하다.



05:35


조금은 이른 새벽.

겨울의 찬공기를 마시며 출근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인상 깊은 두 인물이 있다.


‘엄마와 아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아들은 휠체어에 탄 엄마를 모시고 어디론가 향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다. 어떤 사연일까 한 번쯤 들어보고 싶다.


‘환경미화원’

묵묵히 빗자루질을 하고 쓰레기를 주우는 모습. 차도 상관없이 종횡무진하는 그의 역할로 우리는 깨끗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한 일상과 마주하면서 타성에 젖어 들어 ’감사함’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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