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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도민 Nov 20. 2023

쿵짝쿵짝 태교 음악

어느 날 와이프가 나한테 말했다.

“미국에 놀러 갔다 와. 비행기표는 내가 쏜다.”     

나한테 미국, 정확히 LA는 편한 곳이다. 자주 가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다 있는 도시라 그렇다. 맨날 일 많다고 투덜대던 나한테 와이프가 일종의 특박을 준 거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붙였다. “아마 이번에 가면, 아이가 생겨서든 일이 많아서든 한갓지게 놀러 미국 갈 기회가 많지 않을 거야.”     


이것이 여자의 촉인가?

2주 일정을 잡고 갔는데, 5일째 되는 날이었나? 와이프한테 카톡이 왔다.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이 찍힌 사진과 “이제 정말 한갓지게 미국 못 가겠네?”라는 내용이었다. 와이프는 이 일 때문에 일찍 돌아올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로부터 또 몇 날 지나지 않고 한국의 기관에서 내가 제출한 제안서류가 1차 심사를 통과했으니, 바로 다음 주에 2차 심사 발표하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쨌든 와이프의 예상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심사는 결국 떨어졌다.)     

여하튼, 나는 미국에서 임산부에게 좋다는 온갖 비타민과 디카페인 원두를 사서 한국에 돌아왔고, 우리는 슬슬 임신 기간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나에게 있어 그 준비에는 어떤 음악을 들을지에 대한 고민도 포함됐다. 와이프는 유난 떨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신나는 마음이 유난 떠는 걸로 발산됐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합의를 봤다.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들려주기로. 그건 아기가 세상에 있던, 엄마 배 속에 있던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에 태교 음악이라고 검색하면 정말 많은 정보가 나온다. 임신 5개월부터는 태아도 완벽하게 소리를 듣게 되고, 바깥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 잔잔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하고, 이때 들려주는 음악이 태아의 두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태교 음악회라는 것도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도 있고, 그냥 떠도는 소문 같은 것도 있다. 이 세상에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은데,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엄마가 행복해야 태아도 행복하다는 것. 그러니 어떻게 보면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듣는 게 가장 좋은 태교일 것이다. 우리끼리 규칙을 정해놓은 건 ‘음량’ 하나였다. 큰 소리가 태아한테 좋지 않다는 정보 때문이었다.(그런데 또 주변 연주자 중에 임신 중에도 연습하고 연주하다가 출산 잘해서 애 잘 키우는 집 많다. 악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악기 음량을 상당히 큰 편이다.)     


우리는 남들이 태교 음악이라고 모차르트 듣고, 명상 음악 듣고 그럴 때, 얼터너티브 록과 네오 펑크, 뮤지컬 음악을 주로 들었다. 그린데이, 너바나, 콜드플레이 같은 밴드 음악 아니면 마틸다 뮤지컬, 썸띵로튼, 헤드윅, 렌트 등 뮤지컬 넘버였다. 와이프와 함께 있을 때는 메탈과 현대 음악은 잘 안 틀게 됐다(나도 모르게 틀었을 때도 있으니 여지를 남겨두겠다).     

태교 음악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내 아이를 두고 본격적으로 관찰 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행여 그랬다 하더라도 이건 우리 부부와 내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경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언제나 케바케고 사바사니까 말이다.)


다만 태교 때문에 엄마가 좋아하지도 않는 음악을 억지로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크 시대 음악이 좋으면 그걸 들으면 되는 거고, 힙합이 좋으면 그걸 들으면 되는 거다. 그걸 듣고 엄마의 세로토닌이 늘어난다면, 그게 태아에게 가장 좋은 것 아니겠는가? 두뇌도 일단 기분이 좋아야지 발달하든지 말든지 하지, 엄마가 억지로 하는 게 태아 두뇌에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있겠나.     


물론,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들었던 음악에 익숙함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걸로 봤을 때, 임신 중 들려주는 음악에 따라 나중에 아이의 취향이 그걸 따라갈 수도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걸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애가 괜히 크라잉넛을 좋아했던 게 아니구나 싶다.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쯤 내가 기획한 청소년 합창 연주회가 있어 와이프가 만삭의 몸으로 보러 왔었다. 그때 아기가 배 속에서 하도 발로 차고 그래서 결국 끝까지 보지 못했다고 한다. 큰 소리에 놀랐던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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