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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도민 Nov 23. 2023

흥순순 플레이리스트

우리 아이 첫 플레이리스트

지극히 엄마 취향의 태교 음악 덕분인가(아님), 아이(aka 순순이)는 잘 태어났고, 와이프도 건강했다. 순산했다고 하기에는 산고가 길었지만, 엄마와 아이 모두 별문제 없이 큰일을 이겨냈다. 병원에서 며칠,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와이프와 순순이는 집으로 왔다. 이제 정말 셋이서 오롯이 지내는 날이 시작된 것이다.     

순순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부터 막 신나서 음악을 틀어주고 그러진 않았다. 아직 예민한 아기에게 함부로 막 무언가 들려주기엔 조심스러웠다. 처음에는 청력에 악영향을 미칠까 무서워 소리 나는 장난감의 음량도 가장 작게 했었다. 그래도 순순이는 그 작은 소리 하나하나를 좋아했다(그저 아빠의 눈에만 그래 보였을 수도 있다).     


순순이가 목을 가눌 수 있게 됐을 때 즈음, 팬데믹이 왔다.

아니, 와이프도 나도 순순이한테 묶여서 어디 잘 못 나가고 그랬는데, 이제 좀 나가볼까 싶어 졌을 때 난데없이 전염병이 창궐해서 우리 모두를 집 안에 묶어뒀다.

공연 관련 일을 하는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손발이 묶였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순순이랑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육아휴직 중이었던 와이프까지 함께, 순순이가 가장 빠르게 크는 그때 그 모습을 우리는 함께 볼 수 있었다.     


집에는 마샬 스피커가 하나 있다. 결혼할 때 신혼집에 스피커 하나쯤은 있어야지 싶어 큰마음먹고 산 것이다. 평소에도 잘 써왔지만, 팬데믹으로 온 가족이 집 밖으로 못 나갔던 이때 빛을 발했다.

이런저런 음악을 틀었다. 처음에는 특별히 “이걸 들려줘야지”하는 마음이라기보단, 이것저것 다양하게 들려주려고 했다. 바로크 시대 클래식 음악도 틀어보고, 무난한 팝도 틀어봤다. 어쿠스틱 한 팝송도 틀어보고, 적당한 보컬 재즈나 블루스도 틀어봤다. 그중 순순이가 유독 신나 하는 음악으로 구성된 순순이의 첫 플레이리스트가 생겼다. (상어와 호기심 많은 펭귄 노래는 내가 도저히 못 듣고 있을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피했다. 특히 난 이미 조카가 아기였을 때 내 누나가 무한히 반복되는 상어의 늪에 빠져 고통받던 모습을 봤기 때문에 각별하게 조심했다.)      


플레이리스트에는 크라잉넛과 비틀즈, 로버트파머, 빌리아이돌, 카트리나 앤 더 웨이브스, 델리스파이스, 퍼렐 윌리엄스, 엘라 피츠제럴드 등의 곡으로 채워졌다. 한결같이 느리지 않고 밝은 분위기였다. 자장가에는 그렇게 구슬피 우는 아이지만, 조금이라도 밝은 노래라면 신나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문제는, 정말 이 플레이리스트만 주야장천 듣게 됐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코로나는 우리 모두를 한 곳에 있게 했지만, 우리는 그곳을 떠날 수도 없었다. 가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근처에 잠깐 콧바람 쐬고 오는 게 아니면 우리는 계속 집 안에 머물렀다. 원래도 이런 것에 조심하는 성격들이었지만,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있었으니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그렇다고 돌도 안된 순순이한테 패드나 폰으로 유튜브를 틀어주기도 좀 그랬다. (지금도 잘 안 틀어주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서는 고요함을 없애기 위해 언제나 음악을 틀어놓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본인 의사 표현을 조금씩 시작한, 그리고 부모의 고집을 그대로 물려받은 우리 아이는 ‘그 음악’이 아니면 심히 싫어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와~ 얘 좀 봐~ 크라잉넛하고 비틀즈를 좋아하잖아!” 했던 우리도, “이제 룩셈부르크, 오블라디오블라다 그만 듣고 싶다.”가 됐다.     


그런데 뭐 어떤가, 호기심 많은 펭귄이 부르는 노래나 계속 같은 게 반복되고 편협한 성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상어 노래보다는 이편이 낫지.
      

흥순순 플레이리스트

크라잉넛 – 룩셈부르크

The Buggles – Video Killed the Radio Star

Robert Palmer – Addicted to Love

Tommy Tutone – 867-5309/Jenny 

Billy Idol – Dancing with Myself

Katina & The Waves – Walking On Sunshine

Prince & The Revolution – Raspberry Beret

The Beatles – Ob-La-Di, Ob-La-Da

Ace of Base – The Sign

The Cardigans – Lovefool

델리스파이스 – 뚜빠뚜빠띠

Pharrell Williams – Happy

Ella Fitzgerald – Old Mather Hubb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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