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패션브랜드 런칭기
얼마 전 친한 친구를 만나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의 제품을 주며 입어보고, 주변에 많은 홍보를 부탁한다 돌려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친한 친구 내외를 만나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제품이 타사에 비해 차별점이 떨어진다고, 좀 더 고민을 하고 출시하지 그랬냐고. 팩폭에 가까운 피드백을 들으면서 냉정한 척, 별일 아닌 척, 객관적인 척, 주변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은 건강한 것인척 다 했지만 사실 가슴이 무척 상했다. 아직은 달콤한 말만 듣고 싶어.. 나 아직 준비가 안됐나봐 친구야.
반박할 거리 100개를 따발총처럼 쏘아댈 자신 있었지만 선배 사업가격인 친한친구가 악의로 한 조언이 아니니 애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래, 대중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내가 자신있게 낸 제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차별점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어디서부터 얼마나 더 데이터 분석을 파고 들었어야 할까. 정말 상품기획 단계를 좀만 더 고심해볼 걸. 더 비싸고 고급진 원단을 찾아볼 걸. 자괴감이 밀려온다.
타사 스포츠웨어의 동일 제품군을 서칭해본다. 아 이렇게 소재를 썼었구나. 두껍게 내장재를 덧댔네. 근데 투박해보인다. 우리가 추구하는 우아미는 별로 볼수 없네. 근데 싸긴 엄청 싸네. 그렇네. 가성비 메리트가 없을 수도. 잠깐, 우리 가성비 브랜드였나? 아니잖아, 우리는 뛰는 사람들을 위해 진정성있게 제품을 만들자고 했었잖아. 가방에 마구 구겨 넣어도 괜찮을 제품 만들자고 다짐했잖아. 제품을 생각하는 방향이 이렇게나 다르네.
시간이 흐른 뒤 결과적으로는 팩폭으로 후드려 팸 당했던(?) 해당 제품은 우리브랜드의 best seller 제품이 되었다. 사람들은 되려 적당히 도톰해서 좋았고, 그래서 가벼워서 걸치기 좋았고, 우아한 실루엣이 좋았고, 맨살에 닿는 보드라운 느낌을 좋아해서 구매했다. 무엇보다, 아직 추워지기 전인 지금 입기 너무 좋다는 것이다.
패션 상품기획을 할 때는 여러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머천다이징 5대요소라기도 하는 상품,장소, 시기, 가격, 수량에 대한 기획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시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판기- 판매가 가능한 기간
패션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두려움을 떠는 단어. 우리나라는 특히 4계절(혹은 그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날씨와 기온에 맞는 적합한 옷을 제때에 출시해 판매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판기를 놓지면 판매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판기 그 무서운 것이 끝나면 더 무서운 재고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품기획자는 언제나 판기 앞에서 제품 정도에 대한 타협과 협상을 해내야만 한다. 조금만 더 수정하자는 완벽주의자와 곧 출시 안하면 전부 재고가 될것이라외치는 실행주의자 사이에서 말이다.
만약 그 때, 내가 좀 더 방향을 고민하자 했더라면, 혹은 더 나은 원단을 찾기 위해 시간을 더 지체 시켰다면. 그래서 가을이 가네 겨울이 오네마네 하는 이 시기를 기어코 놓쳤다면. 이런 베스트 셀러 제품은 탄생되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나 이번 판에도 완벽주의자보다 실행주의자가 이겼다.
날씨야 이제는 종잡을 수가 없는, 내 손을 떠난 자식이라 차치하더라도 유행이라는 것 있지 않나. 유행을 따라야만 패션업이 건재 할 수 있다는 공식. 그러나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라는 말이 신조어로 생겨났 듯 이 시대는 유행이라 칭할것도 없이 짧은 찰나 혹은 절묘한 타이밍이라는 실낱같은 기회만을 엿봐야 하는 절망적인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기회가 이따금씩은 온다거나 평타나 치면 반은 성공했지 뭐 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요놈은 대중없이 오거나 대대손손 선행하여 복을 쌓은 자에게나 가끔 찾아오는 희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대담한 서퍼처럼, 이 파도 저 파도를 따지지 않고 오는 것을 일단 잡고 타야한다. 뭐가 됐건간에 오기만 한다면. 해야 한다 그 무엇이든.
타이밍- 그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귀한 것은 완벽주의자보다 실행주의자에게 더 빨리 찾아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뭐라도 하면 물론 실패할 수도 있으나 어쩌다 성공할 수도 있다. 그렇게 확률을 높여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