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영의 eX-file] 브랜드 이미지와 UX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지난여름 비즈니스 차 상하이에 방문하게 되었다. 서울만큼 발전한 도시 인프라와 활기를 띤 경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번은 상하이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난징동루를 가게 되었는데, 맛집과 볼거리가 몰려있어 두 번이나 방문했었다. 상하이에 간다면 꼭 들러야 할 명소이다. 명동과의 차이점이라 한다면, 형형색색의 화려한 네온 간판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또한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K-pop, 그리고 한국 브랜드와 한글을 쉽게 찾을 수 있어 한류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탄하며 길을 걷던 중, 익숙한 대형 광고판을 보게 되었다.
이게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바나나맛우유! 이번에는 백화점에 들어가 보았다. 식품 코너 한편에서는 바나나맛우유가 한국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백화점 직원은 “바나나맛우유는 고급 음료라 비싸서 자주 못 먹을 정도입니다. 중국인이 사랑하는 우유입니다.”라며 ”우유곽이 귀여워 버리지 않고 연필꽂이로 활용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의 중국인 친구는 “바나나맛우유가 비싸긴 하지만 한국 제품이라 믿음직하고 유통기한이 짧아 신선한 것 같다. 다른 친구들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상하이를 떠나기 전, 공항에서도 바나나맛우유를 스타벅스 커피처럼 들고 마시고 있는 중국인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바나맛우유는 빙그레의 간판 상표로 가공 우유계의 스테디셀러이다.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등의 수많은 경쟁자들, 소비자들의 입맛·연령 변화 등의 조건 속에도 바나나맛우유는 어떻게 45년 동안 장수하며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
바나나맛우유의 탄생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우유를 장려했지만 흰 우유에 대해 국민들이 크게 호응하지 않았고, 이에 빙그레는 고민 끝에 당시 고급 과일이던 ‘바나나’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바나나맛우유를 만들기로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개발에 성공한다.
바나나맛우유의 트레이드 마크는 단연 ‘항아리’ 모양의 용기다. 당시 연구팀은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바나나맛우유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한국인에게 가장 적합한 용기 외형을 고집하던 중, 한 도자기 박람회에서 ‘달 항아리’를 보고 영감을 얻어 개발에 착수했다. 이렇게 탄생한 패키지 아이덴티티는 냉장보관과 유통기한 관리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용량 240ml와 독창적인 모양을 유지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취향에 따라 다른 SNS를 향유하는 1020 세대를 만나기 위해 그 접점을 카페와 올리브영, 카메라 필터 어플에서 찾았다. ‘바나나맛우유’에 대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카페에서 바나나맛우유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여 친숙한 경험을 주었다. 추억만큼 강력한 이야기도 없기 때문이다. 또 올리브영에는 바나나맛우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담은 바디라인 코스메틱을 만들어 진열하고 카메라 필터 앱을 개발해 고객의 추억에 더 많은 접점을 만들었다. 식품회사의 놀랍고 혁신적인 시도였다.
새 시장이기에 우선 UX 리서치에 집중하였다. 상하이 시내에서 무작위로 약 500여 명의 행인들에게 질문하는 Gang Survey와, 이후 구매자와 비구매자로 나눠 심층적으로 Focus Group Interview 조사를 하였다. 이렇게 UX 리서치와 매장 바이어, 편의점 주를 대상으로 유통 조사를 병행하여, 소비자가 경험하는 제품 이미지와 음료 후 맛과 향, 감정 등에 대한 경험을 집중 조사했다. 그렇게 바나나맛우유의 주 구매자와 구매 시간대를 파악하였고, 타깃의 소비 경험을 극대화하는 브랜드, UX 디자인 전략을 펼쳤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Office Attack 이벤트와 웨이보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었다.
독창적인 브랜드 정체성과 UX친화적인 전략으로 바나나맛우유는 KBPI에서 10년 연속 브랜드 파워 1위를 지켜오고 있으며,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필리핀, 그리고 베트남 등 10여 개 국가에서 같은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성공하고 있다. 한편 김호연 회장은 “브랜드의 생명은 혁신과 변화에 있다.”라는 혁신 마케팅을 주문하며 새로운 시대와 시장 환경에서도 그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한편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식품 기업도 있다. 이번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거대 식음료 회사인 크래프트 하인즈(The Kraft Heinz Company) 이야기이다. 케첩의 대표 제조회사인 하인즈는 철저한 UX 디자인 혁신과 브랜딩으로 성공했지만, 소비자 취향 변화에 대응하는 대신 비용 절감에만 골몰하다 몰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실 하인즈의 창업주인 헨리 존 하인즈는 브랜드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업가였다. ‘가장 느리게 나오는 케첩’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으로 케첩의 진한 농도와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하인즈를 고급 브랜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일류 호텔에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 제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평소 문제라고 생각하던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리서치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제품을 혁신하였다. 먼저 내용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케첩 병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 신뢰를 주었다. 이는 당시 가공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감이 없었기 때문에 투명한 병은 고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하이즈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케첩을 쉽고 남김없이 짜 먹을 수 있도록 용기를 ‘고무’로 바꿔 사용성을 업그레이드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병을 ‘거꾸로’ 세워 중력의 힘으로 항상 빠르게 짤 수 있는 패키지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UX를 고려한 디자인의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브랜딩·UX 디자인 과정을 통해 하인즈는 회사를 세계적인 대기업을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하인즈 케첩은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100개가 넘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UX를 무시한 채 녹색 케첩을 출시해 실패하고, 비용 절감에만 매몰되어 브랜드가 진부화되었다. 그리고 주가는 폭락하는 온갖 수모를 겪고 있다.
2015년 워런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와 사모펀드 3G캐피털은 크래프트와 하인즈를 합쳐 크래프트하인즈를 만들었다. 거대 식품 회사 둘을 합하면 효율적으로 제조할 수 있고, 부서들을 통폐합해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쓰인 금액은 모두 7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6조 원이다. 합병 직후 2016년 하인즈의 매출액은 202억 달러에 달해 세계 식품 기업 중 4위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역시 투자의 귀재 워런버핏이라며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며 큰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 기대는 2년도 되지 않아 무너졌다. 지난해 4분기에 무려 126.8억 달러의 적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버크셔 해서웨이는 3조 4천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다. 주가도 폭락했다. 실적이 발표되었던 날, 주당 48달러였던 주가는 하루 만에 35달러까지 주저앉았다. 회계 문제와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도 있었겠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면 시장 반응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인즈가 최근 이렇게 어려움에 빠지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비용 절감을 통한 손익 극대화로 주주 환원을 강화하는 전략은 정체된 회사들의 흔한 전략이다. 불필요한 경쟁을 제한하고 중복되는 비효율성을 제거해 투자도 적절히 할 수 있어 안정된 회사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하인즈로서는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과격한 비용 절감을 하며 연구개발 비용도 크게 줄어 신제품 개발도 사라지는 등 성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웰니스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은 건강에 좋은 유기농 채소를 선호하고 가공식품은 피하고 있었지만 하인즈는 새 트렌드에 대응하지 않고 전통적인 포장 식품에 머물게 되었다. 오직 원가 절감에만 몰두하고 브랜딩, UX 혁신에 게을리하면서 브랜드는 점차 구식이 되었다.
결국 효율성에만 매몰된 비용절감은 결국 하인즈를 구식 기업으로 만들었다. 매출액 기준 세계 4위에 빛나던 거대 식품기업이 시대 트렌드를 쫓지 못하고 몸에 좋지 않은 제품만 만드는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번엔 위기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무인양품의 이야기이다. 무인양품은 일본의 브랜드 없는 브랜드의 대표이다. 한국으로 치면 노브랜드와 비슷하다. 무인양품은 무색무취한 디자인으로 제품을 둘렀다. 패키징은 간소화했고 비움을 강조했다. 이런 무인양품은 일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동안(1991~2000년)에도 경상이익은 107배 증가했다.
무인양품도 처음에는 기본을 잘 지키며 본질에 집중했다. 고객의 필요를 고민하며 품질에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무인양품이 상장된 1995년부터 위기가 시작되었다. 회사의 매출과 이익은 매년 급격히 성장했으며 매장은 폭팔적으로 늘었다.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고 브랜드의 내실을 다져야할 때 무인양품은 수익을 높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혼이 사라지고 사내정치도 횡행했다. 그렇게 무인양품의 브랜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무인양품의 실적은 곤두박질 쳤다. 2001년 38억 엔 적자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였고 시총은 1/6로 쪼그라들었다. (4900억 엔->770억 엔) 기본을 상실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하지만 무인양품은 다시 일어섰다. 사업부장이던 마쓰이 타다미쓰가 대표이사로 승진하며 리더십을 교체했으며 유명 디자이너 하라 켄야를 아트디렉터로 영입했다. 이들은 무인양품의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무인양품이 왜 세상에 존재해야하는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가?
하라 켄야식 해석이었다. 무지다운 제품을 위한 명확한 기준점이었다. 이렇게 무인양품은 경영과 브랜딩의 기본을 정립하고 철저히 지켜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이듬해부터 흑자로 돌아서 이후 매년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7년 기준 매출 3795억 엔으로 성장하였으며 전 세계 30개국 9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회사가 성장하다 보면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하기도 하고, 주주 환원을 위해 비용을 절감해야하기도 한다. 위 바나나맛우유·하인즈 사례를 통해 불가피한 변화 속에서도 기업이 브랜드와 UX를 가장 기본에 두고 변화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쳐 준다. 기업의 생존은 시장 트렌드와 UX변화에 맞는 변신을 끊임없이 계속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식품 브랜드든 IT 브랜드든 어디에서나 공히 적용된다.
바나나맛우유처럼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 기존 브랜드의 독창성 유지와 새로운 시대, 시장에 대한 혁신 전략을 세우는 것은 성공의 첫 열쇠이다. 하인즈의 사례와 같이 단순히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에만 집착해선 안된다. 비용절감은 기업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필수 요소이지만 비용절감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섣부른 시도는 기업의 수익은 고사하고 오히려 기존의 고객들까지 잃는 해로운 전략이 될 수 있다.
비용절감을 하더라도 브랜드 이미지와 UX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기업들은 성과가 혹시 고객이 누려온 경험과 이미지가 맞교환 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사실 고객들은 기업의 전략에 별 관심이 없다. 아무리 획기적인 비용절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고객경험을 조금이라도 훼손한다면 그들에게는 불쾌할 뿐이다. 따라서 변함없는 브랜드 경험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혹시 훼손 위험이 있다면 이에 대한 보완책을 반드시 준비해야만 한다.
이젠 혁신과 성장이 없으면 제자리가 아닌 퇴보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브랜드와 UX는 항상 뒷받침이 되어주어야 한다. 지금 회사가 잘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비용을 절감해야하는 상황에서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양보를 할 수 없다. 당장 망하지는 않겠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이익만 챙겨서는 결코 오래 못간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나에게 바나나맛우유는 어릴적 목욕탕에서의 따듯한 추억이였다. 왠지 모를 아날로그적인 느낌과 친구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젠 거대 시장 중국에서도 쉽게 마추치는 넘버원 브랜드, 또 혁신의 주제가 되었다. 글을 마치고 나니 입맛이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