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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플로 Apr 29. 2023

5. 음악이 죽은 날

청소년기의 성을 소재로 한 미국적인 코믹성장영화의 수작 아메리칸 파이는  그 제목을 동명의 노래 아메리칸 파이에서 빌려왔다. 포크록 가수 돈 매클린의 노래 아메리칸 파이는 1971 년 발표 당시 빌보드를 비롯한 각국의 차트를 휩쓸고, 지금까지 계속해 인기를 얻고있는 명곡으로, 후에 마돈나가 다시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 2023년에는 윤석열도 불렀다. 아메리칸 파이의 가사는 수수께끼 같은 구석이 있어서 명확히 이런 내용이라고 전체를 일관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사 중간에 나오는 "음악이 죽은 날 (The Day the Music Died)" 을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여기에서 "음악이 죽은 날" 은 1959 년 2 월 3 일을 의미한다. 이 날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http://www.youtube.com/watch?v=tr-BYVeCv6U

http://www.youtube.com/watch?v=Coy8Hoa1DNw


1987 년에 개봉한 영화 라 밤바 (La Bamba) 는 로큰롤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멕시코계 미국인 리치 발렌스 (Ritchie Valens) 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내가 중학교 때 일이라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라 밤바는 그 당시 상당히 인기를 끌었고, 영화에 들어간 "라 밤바", "도나(Donna)" 등의 노래는 귀에 익숙한 곡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리치 발렌스는 젊은 나이에 큰 스타가 되었지만 그 인기를 미처 다 누리기도 전, 겨우 17 세의 나이에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버디 할리 (Buddy Holly) 와 빅 바퍼 ("The Big Bopper" Richardson) 두 명의 가수 역시 리치 발렌스와 함께 유명을 달리했고, 이 날이 바로 1959 년 2 월 3 일 이었다. 그러니까 돈 매클린은 이들 세 명의 가수들이 죽은 그 날, 음악도 같이 죽었다고 노래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40대의 풍채인데 만 17세에 돌아가신 리치 발렌스. 사진은 https://www.discogs.com/artist/200956-Ritchie-Valens 에서.

비행기 사고는 이 세 명의 가수가 위스컨신에서 시작해 미네소타와 아이오와를 거치는 투어를 하던 도중 아이오와 북쪽에 위치한 클리어레이크 (Clear lake, Iowa) 라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에서 공연을 하고 나서 일어난다. 2 월 초였으니 미네소타에 인접한 이 동네는 무척 추웠을 것이고, 날씨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다음 공연을 위해 노스다코타의 파고 (Fargo, North Dakota) 로 이동해야 했고, 버스 여행에 질린 버디 할리는 소형 비행기를 전세 내기로 결정했다. 자정이 넘어 클리어레이크 인근의 메이슨시티 비행장을 이륙한 비행기는 클리어레이크에서 북쪽으로 6 마일 정도 떨어진 지점에 추락하고 만다. 조종사와 세 명의 가수 모두 사망했으며, 비행기가 추락한 곳은 후에 버디 할리 추락지 (Buddy Holly Crash Site) 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리치 발렌스의 생애가 영화화 되면서 최소한 내 기억 속에는 그의 이름이 더 잘 기억되어 있지만 당시 인기나 음악계 영향력 등에 있어서는 버디 할리가 더 비중있는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추락지에 버디 할리의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추락지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타와 음반 모양의 추모비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비교적 싱싱한 꽃다발이 있는 걸 보면 찾아오는 사람이 심심찮게 있는 모양이다. 추락지 주위는 온통 밭이다. 내가 갔을 때는 모두 콩이 심어져 있었는데, 콩과 옥수수를 번갈아 키울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아이오와시티에서 I-380 을 타고 워털루를 거쳐 27 번 주도를 달리다가 I-35 를 만나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클리어레이크가 나온다. 클리어레이크에서 북쪽으로 Buddy Holly Pl. 를 따라 올라가다가 310th St. 에서 우회전, Gull Ave. 에서 좌회전 해 비포장도로를 가다 보면 왼쪽에 밭 사이로 난 길과 버디 할리가 쓰던 안경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10 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추모비를 만날 수 있다. 아이오와시티에서 두 시간 반 거리. 

버디 할리 추락지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는 안경
옥수수밭, 혹은 콩밭
추모비와 방문객들이 놓고 간 꽃다발
마지막 공연이 있었던 클리어레이크의 호수
마지막 공연이 있었던 클리어레이크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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