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이야기
(시진핑과 바이든이 정상회담을 한다길래 2014년 경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올립니다)
미국에서 외교라고 하면 각국의 대사관이 몰려 있는 워싱턴 D.C. 같은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겠지 아이오와 촌구석에서 무슨 외교? 라고 생각하셨다면... 사실 맞다. 아이오와가 외교의 중심일 리는 없고, 단지 아주 드물게 아이오와가 외교적인 일과 관련되는 경우가 한번씩 생기기 때문에 워낙 신기해서 아는 사람들만 주목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아이오와에 외교적인 이슈가 생길 만한 일이라면 어떤 것일까? 미국의 농업을 대표하는 주들 중 하나가 아이오와라는 것이 중요한 단서다.
아이오와의 주도인 디모인 부근에 쿤래피즈 (Coon Rapids, Iowa) 라는 동네가 있다. 이곳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로스웰 가르스트는 농부일 외에 가르스트 앤 토마스 코 (Garst & Thomas Co.) 라는 종자회사를 설립한 사업가이기도 했는데, 그는 높은 수확량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하이브리드 옥수수 종자를 개발해 판매했다. 가르스트는 미국 중서부의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하이브리드 옥수수 전파에 힘을 썼을 뿐 아니라 칠레, 헝가리, 독일 등 외국에도 자신의 회사가 개발한 하이브리드 옥수수 종자를 판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55 년에 디모인 지역의 신문인 디모인 레지스터에서는 소련의 서기장인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사절단을 아이오와로 파견해 어떻게 하면 식량생산을 늘릴 수 있는지 배워가라는 공개서한을 게재한다. 냉전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에 관심이 많았던 흐루쇼프는 실제로 아이오와에 사절단을 파견했고 사절단 대표가 가르스트 농장을 방문하게 된다. 이후 흐루쇼프의 초청으로 가르스트도 부인과 함께 수차례 소련을 방문해 흐루쇼프를 만났고 흐루쇼프는 1959 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쿤래피즈의 가르스트 농장을 들렀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적대시하던 냉전시대에 흐루쇼프의 방미는 짧은 해빙기를 가져오는 듯 했지만 사이비과학에 가까운 리센코의 학설을 농업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던 흐루쇼프는 큰 실패를 맛보았고 이를 포함한 여러 가지 정책 실패들이 원인이 되어 결국 1960 년대 중반 권좌에서 물러난다. 소련에도 옥수수 농사를 전파하려던 가르스트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가르스트 농장은 흐루쇼프의 방문으로 대표되는 화해 무드의 상징처럼 여겨져 2009 년에 역사유적지로 지정되었고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다.
어느 맑은 겨울날 오후에 찾은 가르스트 농장은 한적했다. 방문객도 없었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안내용 인쇄물만 건물 입구에서 나를 반겼고, 거실 벽에 걸려있는 1959 년 흐루쇼프 방문 당시의 사진들이 그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소련의 최고권력자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은 중국 차례다. 2014 년 현재 중국의 최고권력자는 시진핑이다.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주석직에 오르기 얼마 전인 2012 년 2 월, 시진핑은 미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터키를 방문했는데 미시시피 강변에 있는 아이오와의 작은 도시 머스카틴 (Muscatine, Iowa) 이 방문 장소 목록에 들어 있었다. 수도인 워싱턴 D.C. 라든가, 첨단 IT 업체가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라면 쉽게 이해가 가겠지만 대체 아이오와에는 왜? 이야기는 약 3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 년 당시 허베이 성에서 관료 생활을 하던 시진핑은 중국에서 보낸 농업시찰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시찰단은 허베이 성과 자매결연을 한 아이오와 주로 와서 디모인과 시더래피즈를 거쳐 머스카틴의 한 농장에서 2 주 가량 머물며 옥수수, 콩, 돼지, 그리고 소를 키우는 것을 보며 농업기술을 배우고 돌아갔다. 이 농업시찰단 방문의 영향으로 이후 머스카틴 고등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외국어에는 중국어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 방문이 시진핑에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는지 차기 주석으로 내정된 상태에서 미국을 방문하면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아이오와에 들러 예전에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농장을 보여준 미국인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했던 것이다.
시진핑이 1985 년에 방문했다는 농장에 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고, 치열한(?) 구글링 끝에 2012 년 다시 머스카틴에 왔을 때 옛 친구들과 만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고 알려진 저택의 주소를 알아내 어느날 시카고를 다녀오는 도중에 잠시 들렀다. 유적지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저택이기 때문에 내부를 들어가 본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길가에서 사진만 한 장 찍고 발길을 돌렸다.
사실 머스카틴 시는 한국하고도 약간의 인연이 있다. 아시아인 최초로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고, 현재(그러니까 2014년 당시) 세계은행의 총재직을 맡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짐 용 킴 (Jim Yong Kim 한국명 김용) 이 다섯 살 때 미국에 이민 와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이곳, 아이오와 주의 머스카틴 시이기 때문이다. 머스카틴 고등학교를 다닐 때 미식축구 팀의 쿼터백이자 농구 팀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던 스포츠맨인 데다가, 아이오와 대학으로 진학했다가 브라운 대학으로 옮겨 학사학위,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박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보건과 관련된 많은 업적을 쌓은 분이니 어쩌면 훗날 아이오와가 키워낸 훌륭한 인물들 중 한 명으로 꼽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