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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플로 Apr 29. 2020

2.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이오와 이야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뒤늦게 찾아온 사랑을 소재로 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흥행에도 성공하고 평도 상당히 좋았던 작품이다. 불륜을 소재로 하네 어쩌네 하는 딴지를 걸고 싶은 사람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어디 서로에게 딱 맞는 남자와 여자만 만나서 살아지게 되던가. 이런 인연이 있으면 저런 인연도 있을 수 있는 거고, 인연인 줄 알았는데 뒤늦게 인연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고 그러는 거지. 



작품의 배경이 된 매디슨 카운티는 아이오와의 중심부, 주도인 디모인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다수의 서부영화에서 주연, 감독, 제작 등을 맡은 것으로 유명한 존 웨인이 매디슨 카운티의 윈터셋에서 태어났다.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19 세기 후반에 지어진 지붕이 있는 다리들이다. 원래는 더 많은 수의 다리가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여섯 개. 영화에 등장했던 것은 로즈먼 브리지 (Roseman Bridge) 와 홀리웰 브리지 (Holliwell Bridge) 다. 여섯 개의 다리 중 시더 브리지 (Cedar Bridge) 는 2002 년 가을 불타 없어졌다가 2004 년 최대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달리 불이 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방화를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던 여주인공 프란체스카는 전쟁 중에 만난 미국 군인인 리차드를 따라 이탈리아에서 아이오와로 오게 되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로버트에게 그 연유를 설명하다가 아이오와의 생활이 자신이 생각하던 미국과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좋은 이웃들이 있지만, 아이들 가르치던 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아 전업주부로 아이 둘을 키우고 살림을 하는 농부 아내로서의 삶이라는 것이, 더군다나 20세기 중반의 농촌에서는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이탈리아에 살던 젊은 여성이 그 당시 미국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화려한 이미지, 기회의 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막상 미국이라고 남편을 따라서 왔더니 사방을 아무리 둘러 보아도 옥수수밭밖에 보이지 않는 중서부의 아이오와가 집이었고, 반복되는 집안일과 농장일에 온 기력을 쏟아붓고 나면 처음에 상상했던 번화한 대도시의 이미지는 달나라 만큼이나 멀리 있는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아이오와를 횡단하는 RAGBRAI 에 참가했을 때, 하루 종일 서 있어 봐야 차 한대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힘들, 양 옆에 옥수수들만 즐비하게 늘어선 길 옆, 5 분은 걸어들어가야 건물이 있을 것 같은 어느 집 입구에 갓난아기부터 너댓 살 정도 된 아이들까지 서너 명을 데리고 나와 RAGBRAI 참가자들을 구경하던 젊은 부부가 눈에 띄자 전원생활의 낭만 같은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던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천혜의 자연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창살없는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는 곳이 중서부의 넓은 평원이다. 



어느 겨울 오후, 디모인 부근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매디슨 카운티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늦은 오후에 영화에 등장했다는 다리들을 한 번 살펴볼까 하고 급히 윈터셋으로 달려갔다. 시간 상 다리는 하나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홀리웰 다리를 선택했다. 로버트는 구설이 생길까 해서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프란체스카가 단호하게 가겠다고 해서 둘이 만났던, 영화에 두번째 순서로 등장하는 다리다. 녹지 않은 눈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지만 하늘은 화창했다.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그야말로 미국적으로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약간 젊어 보이는 여자분과 함께 등장하셨다. 하워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아버지는 그리 멀지 않은 오스칼루사에 살고 있다고 했고, 같이 온 킴벌리가 자신의 "거의" 두번째 부인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반대한다나. 내가 남한에서 왔다고 했더니 아, 공부가 끝나고 나서도 꼭 미국에 남으란다. 미국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좋게 보자면) 애국심이 물씬 풍겨나왔다. 빈정이 약간 상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찍고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네들 사진을 좀 찍어달란다. 그러마고 하고는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이메일 같은 거 없단다. 그러면 인화를 해서 보내드릴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사례를 하겠다는 걸 극구 말리고 다리 앞에서 포즈를 잡아달라고 했다. 카메라를 눈에 가져다고 찍으려는 순간, 냅다 키스를 하시는 두 분. 영화처럼 안타까운 사연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몇 주 후에 사진을 인화해서 적어둔 주소로 보내드렸다. 행복하게 잘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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