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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혜은 Sep 19. 2024

어머니께 못다한 이야기

추석에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어머니 저예요.

어머니 며느리. 어머니 면회 갔다가 한 마디도 못하고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하고 밍숭 맹숭 싱겁게 서 있다만 만 왔네요. 그나마 얼굴도  절반은 마스크에 가려서 어머니 내 얼굴 기억이나 하실는지...염려 되었어요.


어머니 귀가 살아 있을 때

저 말해주고 싶었어요. 어머니 들을 수 있을 때, 내 말 전할 수 있을 때 들려드려야지... 매번 다짐 하지만 이 날도 역시 오두커니 서 이발걸음만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네요.


어머니 손이라도 제대로 잡아 드리고 올걸... 매번 후회한다.


저는 어머니께 고마운 것이 많아요.

예전엔 몰랐는데,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더라고요. 제게 주신 사랑.

옛날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 고쟁이 안 속에 며칠 씩 묵었던 사탕 한알이, 그 안에서 나오던 만 원짜리 한 장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아요. 어머니께도 그런 할머니의 사탕 같은 사랑을 저 많이 받았거든요.


그땐 몰랐어요.

어머니에게 귀한 걸 내게 주신 걸

내 맘에 들지 않아도 마땅치 않아도 그게 어머니 마음이고 사랑이었다는 걸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 음성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사실 떠오르는 단어는 많지 않아요.


제가 어머니! 하고 부르면

'응'

'하~'

'아 그렇지'

'음 하하하하'


이런 의성어 같은 것들이 떠올라요.

그냥 그렇게 있어주시던 어머니, 늘 부축해 드려야 함께 걸을 수 있었던 어머니

나란히 함께 걷던 그 길 위에 나누었던 어머니와의 시간들이 춘천 곳곳에 남아 있어요. 어머니 메아리처럼 제가 속삭입니다. 어머니의 웃음이 멀리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 어머니 뵙고 오던 추석 전날 그날도 그랬어요.

어머니 계신 요양원이 명동 한가운데 있잖아요. 우리 어머니는 아실까? 춘천서 가장 번화한 그곳에 어머니 떡 하니 누워 계신걸...


명동 골목길을 저는 결혼하고 처음 가봤지요.

서울 살던 서울사람이 처음 본 춘천 명동은 얼마나 작았게요. 제게는 작고 시시한 명동 거리가 어머니께는 데려갈 수 있는 춘천의 가장 번화한 도심이었다는 걸 몰랐지요. 15년의 세월 동안 명동의 거리도 많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몇 곳은 그대로 남아있네요. 은지 임신했을 때 내 손을 잡고 어머니는 비너스 속옷 가게를 찾으셨어요. 한 벌에 15만 원이 넘는 속옷 세트를 두 세트 사주셨지요. 이런 비싼 속옷은 입어 본 적이 없었어요. 겉 옷은 명품을 입어도 남들이 보지도 않는 속옷에 이런 거금을 들이기가 저는 많이 아까웠거든요.


'아이참, 어머니 쓸데없이 왜 이런데 돈을 쓰시지? 차라리 이 돈을 내게 주었다면 나는 임산부 속옷도 사고 내 옷도 한벌 샀을 텐데...' 어머니의 행동에 저는 늘 계산기를 들이대며 실속을 챙겼더랍니다.


하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 어머니께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신기합니다. 어머니께서 주려고 했던 마음이 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거든요.


"애야. 속옷만큼은 편하고 좋은 걸 입어라. 남들이 보지 않더라도. 네가 무엇보다 제일 편안해야 해. 임신하면 여자 몸도 많이 변하고 불편해질 거야. 그러니 속옷만큼은 명품이어야 해. 임산부를 위한 속옷을 말이다. 달라야 하거든. 아무거나 입어서는 안 돼. 잘 만든 회사에서 제대로 만든 속옷이 네게 앞으로 필요할 거야.


축하한다. 며느리. 그리고 고맙다. 내 손주 품어주어서..."


어머니 마음이 아마도 이랬을 거라는 거... 지금에야 추측해 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앞으로 종종 이렇게 편지를 써 볼라구요.

다음 번 면회는 식구들 한 명씩 신청해 보자 했어요. 우르르 몰려가 아무말도 못하고 온다고... 하고 싶은 말도 전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창피해서 입도 벙긋 못하고 오거든요. 아마 은지 아빠도 비슷할거에요. 어머니 가장 사랑하는 아들... 하지만 어머니 아들이 표현 잘 못하는거 아시잖아요. 그날도 어머니 한번 안아드리고 오라고 그러라고 했는데,결국 어머니 손만 멀슥하게 잡아 보고 팔 한번 벌려 보지도 못하는걸 제가 봤잖아요.


준비한 말도, 그동안 못다한 감사함의 표현도 우리 남편 쑥스러워서 못해요. 평소 이야기 잘 하던 저도 이러는 걸요. 그래서 앞으로 어머니 한 사람씩 보자고 했어요.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을 때 울 어머니 들을 수 있을때 꼭 전해 드리자고. 그래야 한다고...


어머니 다음 번엔 제가 이 편지 읽어 드릴께요. 그리고 앞으로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 있으면 이렇게 써서 기억할래요. 잊지 않고 꼭 전할 수 있게...


어머니, 잘 자요.

같은 하늘 아래 어머니 계심에 감사하며,  어머니 사랑을 포근한 이불 삼아 저 다시 잠들랍니다.

굿나잇 이정희 여사님

어머님도 편안히 주무세요.


2024. 09.19

AM 3:34 어머니 며느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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