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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Feb 23. 2022

나이 오십넘어 독일에서 재취업 가능?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한국보다 차라리 쉽다

독일에서 살면서 한가지 놀라운 것은 나이가 들어도 괜찮은 직종으로의 취업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은 취업시장에서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가 우리나라만큼 높지 않고, 수평적인 직장 분위기로 인해 나이가 많은 직원을 뽑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많지 않다. 50이 넘은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퇴직 걱정을 한다. 한때 기업체 간부로 일하던 분이 50대 중후반에 명예퇴직을 하고 택시기사나 경비원을 하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종종 본 적이 있다. 이게 한국 50대의 현실인 반면, 독일에서는 50대 직원을 한창 일할 나이의 직원으로 쳐준다. 많은 사람들이 년인 67세를 채우고도 연금이 생활하기에 부족하거나 적적하면 회사에 남아 파트타임으로도 일을 한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만 봐도 많은 부서의 직원들이 상사보다 나이가 많았다. 특히 회계부서 직원의 경우 모두 50대 이상이었다. 나이 50대 중반에 우리 회사에 입사해 3년 동안 근무하고 있는 오텐브라이트 씨를 비롯, 지금은 퇴사했지만 입사당시 50대 초반이었던 필립 부인 그리고 무려 60이 넘어 입사한 린테너 부인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40대 중반에 접어든 회계부장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았다. 그리고 경력단절로 말하자면 전 회사의 한 여직원은 10년을 근무하는 동안 애 둘을 낳았고 셋째를 임신해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아마도 그녀는 근무년수의 3분의 1은 출근하지 않은 걸로 안다. 당시 우리는 이것을 출산휴가로 생각했지 경력단절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자유로웠던 전 회사의 분위기에 힘입어 나는 퇴직을 생각할 무렵, '한창 일할 나이인데 설마 재취업이 어려울라고...' 하는 마음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서두르지 말고 독일어를 배우며 푹 쉬자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놀고먹다 보니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놀고먹으면서 편했던 것은 딱 두 달. 두 달이 지나니 마음이 초조 불안했다. 독일어 과정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일하게 되면 금상첨화다. 그리하여 몇 군데 한국 기업체에 원서를 내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국 대기업인데 원서가 들어왔으면 접수가 되었다, 불합격이면 불합격이다 소식이 있을 법도 한데 한결같이 감감무소식이었다. 많이 서운했다. 독일 기업체의 경우 작은 기업체라도 합격 불합격 소식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싶어 비교가 되었다.


어쨌든 이런 와중에 나는 중소기업 면접을 본 적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낙방이었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계속 낙방하는 것인지 그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내가 30대 중반에서 후반이었을 무렵, 그때는 지금보다 경력과 능력이 많이 부족했지만 면접 연락이 꽤 왔었다. 그중 한 곳은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나머지는 이사를 가야 하는 점 때문에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내가 취업을 고사했다. 그런 경험에 비하면 지금의 이 연이은 낙방은 두 가지 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었다. 50대 초반이라는 내 나이와 회사에서는 꽤 높게 느껴졌을 내 연봉. 그중 가장 유력한 원인은 50대라는 내 나이가 될 것이다.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나의 이력서는 밑으로 읽어 내려갈 틈도 없이 상단 생년월일 부분에서 까였을 것이다. 기분이 착잡했다.




예전에 내 나이 40대 초중반에 취업을 준비할 무렵 한 취업 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저는 왜 취업이 잘 안 될까요? 하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나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국 기업체의 경우 대부분의 주재원들이 30대 중후 반인 관계로 40대 직원을 뽑는데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40대가 되면 슬슬 취업에 문제가 생기는데 하물며 50대야... 50대도 취업이 잘되는 부류들이 있을 수 있다. 전문직이다. 50대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수들은 나이가 들수록 경력이 쌓이다 보니 나이가 들어도 취업시장에서 아예 밀려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 기업체로의 취업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독일회사에 취업하려고 취업사이트인 Stepstone과 Indeed를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독일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이 얘기는 다음 편에 쓸 예정이지만 간단하게 그 자리에서 오갔던 대화를 써본다. 그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이 보인 내 나이에 대한 반응은 내 생각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전 회사에서 퇴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사실 퇴직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제가 나이가 있어서 아무래도 재취업에 어려움이 있겠다 싶어서요. 그래도 재충전이 필요해서 퇴직을 결심하게 되었죠."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정색을 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나이가 들었다니요, 그런 건 우린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저 치레에 불과한 말인지 아니면 그 면접관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리셉션에서 마주쳤던 직원 얼굴이 생각났다. 그분은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내게 음료수를 마시겠냐고 물어왔었다. 60대 리셉셔니스트를 쓰는 회사에서 50대 회계직 직원을 안 뽑을 리 없다. 그의 말이 맞다. 내 나이가 맘에 안들었다면 뭐하러 시간낭비해가며 면접 자리를 만들었을까. 나는 50대인 내가 아직도 취업시장에서 쓸모 있는 존재란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한 회사에서 25년 근속하며 현재는 매니저가 된 아는 언니가 그랬다.


50대라고 기죽지마. 나도 50대 뽑을 의향있어.


사람들은 직장을 못구해 안달이지만 회사 역시 사람을 못구해 안달이라고. 최근 언니네 부서에서 젊은 직원 2명이 연달아 퇴사하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라고. 같은 조건이라면 자기는 20대나 30보다는 차라리 40대와 50대를 뽑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고. 아무래도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이직율도 줄어들 것이고 일도 책임감있게 할 것 같고.


사람 나름이지만 언니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이유에서 50대를 반겨줄 고용주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50대라고 기죽을 필요없다.




나의 경우는 외국에서의 취업이니 재쳐두고 한국의 경우를 보자면, 나이 오십에 취업시장에서 밀려나는 한국의 현실을 한국 회사의 위계서열 문화라고 볼 수는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의 좁은 취업시장 때문이다. 한국은 독일과 비교했을 때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부족하다. 젊은 이들의 실업률이 높은 와중에 나이 든 직원이 회사에 오래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 이후, 그러니까 메르켈이 독일을 통치했던 시대는 독일 경제의 황금기였다.(지금도 그렇고) 독일이 유럽 경제를 주도하면서 경제가 활성화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며 실업률이 줄어들었다.


그 혜택을 내가 톡톡히 보고 있다.


내 이력서에는 백수로 놀았던 기간이 거의 없다. 사실 현재 내 상황은 백수이긴 하지만 이력서 상으로는 취업에 필요한 어학을 단련하는 시간이다보니 한 줄 써넣을 수 있는 경력을 만드는 시간이다. 이런 이력서는 설사 구직자가 나이가 좀 있더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벌이는 시원찮지만 그럭저럭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들이 수없이 많다. 혹시라도 내가 내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눈높이를 약간 낮춰 그런 일자리 중 한 곳을 비집고 들어가 일 할 자신이 나에게는 있다.(30년전에 점쟁이가 그랬다. 나는 과거운이 좋다고) 그래서 나는 낙방을 경험할 때마다 '걱정마, 내가 들어갈 곳은 아직 있어.' 하고 나 자신을 위로한다. 수많은 낙방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라도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나는 운이 좋다. 이 독일 경제의 황금기에 살고 있는 나는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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