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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Sep 25. 2023

일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영화들

영화 큐레이션하지 - 스무 번째 영화들

스포일러 없는 김하지만의 특별한 영화 큐레이션, 그 스무 번째 영화들


   매일 숨 쉬듯이 출근하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서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심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를 돌이켜보면 딱히 없는 것 같다.

  일을 그저 밥벌이로만 생각하고 내 자리는 언제든지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에, 무력하게만 보냈던 나날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런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삶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목적지 없는 기차는 폭주기관차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준비해 본 오늘의 큐레이션은 '일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들로 꼽아보았다. 직업윤리 같은 거창한 단어 말고, 오늘과 어제를 되돌아보며 '일'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첫 번째 영화,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

메인 예고편 (02:32) https://youtu.be/6HQDIxd2tvQ?si=KkO819FaxrHx5id8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려 할수록 더욱 굳건히 닫히는 진실의 장벽. 결코 좌절할 수 없었던 끈질긴 ‘스포트라이트’팀은 추적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졌던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나는데… ‘스포트라이트’팀이 추적한 충격적인 스캔들이 밝혀진다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예고편에 나온 '내가 될 수도, 당신이 될 수도, 우리 누구든 당할 수 있다'라는 말은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그 누구보다도 진중하고 절실하게, 또 가슴 뜨겁게 사건을 파고든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영화를 보면 단숨에 깨달을 수 있다. 그들에게 일은 단순히 '일'이라고 하기엔 일을 넘어선 거대한 도전이고, 단순히 '사명'이라고 하기엔 가만히 두고 지켜볼 수 없는 끔찍한 현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절대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영화는 이 큐레이션의 얼굴이 되어도 좋다.




두 번째 영화,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히든 피겨스>

메인 예고편 (03:10) https://youtu.be/5WCpVjEktAY?si=0AsyJsbn9NPSa11m

천부적인 수학 능력의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NASA 흑인 여성들의 리더이자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우주 개발 경쟁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 천부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진 그녀들이 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800m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으며, 공용 커피포트조차 용납되지 않는 따가운 시선에 점점 지쳐 간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부정받는 기분은 무엇일까. <히든 피겨스>는 그런 기분을 매일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신의 능력과 가치가 충분함에도 시대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당시에 그들이 얼마나 귀하고 필요한 사람이었는지 그들 스스로 증명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지금의 우리를 비춰보자.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환경 탓만 하면서 스스로를 틀에 가두며 살 것인지는 결국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세 번째 영화,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

메인 예고편 (02:03) https://youtu.be/Gc2Z8Nt7DZE?si=G2EhThtdTa871SYe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에 그나마 실력 있는 선수들은 다른 구단에 뺏기기 일쑤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돈 없고 실력 없는 오합지졸 구단이란 오명을 벗어던지고 싶은 단장 ‘빌리 빈’은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를 영입, 기존의 선수 선발 방식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머니볼’ 이론을 따라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는 경기 데이터에만 의존해 사생활 문란, 잦은 부상, 최고령 등의 이유로 다른 구단에서 외면받던 선수들을 팀에 합류시키고, 모두가 미친 짓이라며 그를 비난한다. 과연 빌리와 애슬레틱스 팀은 ‘머니볼’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까?

  관성을 무시한다는 것은 큰 용기이다. 우리는 모두 살던 대로 살고 싶어 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내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 관성을 기꺼이 깨고, 다른 모험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로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머니볼>은 관성을 깬 사람의 도전기를 다루고 있다. 관성을 깨다는 것은 많은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 의심을 결과로 증명해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니볼>은 성실히 그리고 줏대 있게 해야 하는 것을 해내 보인다.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어떤 때에는 기꺼이 실패를 무릅쓰고 세상에 덤벼보기도 해야 한다. 그럴 기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기회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네 번째 영화,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의 <툴리(Tully)>

메인 예고편 (01:38) https://youtu.be/B5B4ie_DRNI?si=cd4oXBya9SWOCYNf

신발 하나 제대로 못 찾는 첫째 딸, 남들과 조금 다른 둘째 아들, 갓 태어나서 밤낮없이 울어대는 막내, 그리고 자신에겐 아무 관심도 없이 매일 밤 게임에 빠져 사는 남편까지, 매일 같은 육아 전쟁에 지쳐가는 ‘마를로’. 몸이 스무 개라도 모자란 엄마 ‘마를로’를 위해 그녀의 오빠는 야간 보모 고용을 권유한다.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어 왔던 ‘마를로’는 고민 끝에 야간 보모 ‘툴리’를 부르게 된다. 홀로 삼 남매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슈퍼 맘이 되어야만 했던 ‘마를로’ 곁에서 ‘툴리’는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그녀와 아이들을 돌봐준다. 슈퍼 보모이자 때로는 인생 친구가 되어 주는 ‘툴리’로 인해 ‘마를로’의 삶은 조금씩 변화하게 되는데…

  누가 집안일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단 한 번이라도 집안일을 제대로 해본 사람이라면 집안일이 엄연한 '일'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이는 없다. <툴리>는 일에 파묻여 자신을 잃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번아웃이 온 직장인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런 방향으로 이 영화를 해석한다면, 우리가 얻을 것은 더욱 많아진다.

  번아웃이 될 만큼 많은 것을 태워가며 일에 전부를 내맡겼던 하루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이고 쉼이랄 것 없이 또다시 시작되는 하루에 다시 나를 태우는 삶을 반복한다.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툴리>는 그 루틴을 직시하게 만든다. 일을 대하는 태도와, 일과 내가 공존하는 법. 그것을 찾는 것이 이 영화를 새롭게 보는 방법이다.




다섯 번째 영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

메인 예고편 (02:01) https://youtu.be/MwH_ebYprKs?si=vFeBH_XJlQZloLon

12개의 외계 비행 물체(쉘)가 미국,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 상공에 등장했다. 웨버 대령은 언어학 전문가 루이스 뱅크스 박사와 과학자 이안 도넬리를 통해 외계 비행 물체(쉘)에 접촉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18시간마다 아래쪽에서 문이 열리는 외계 비행 물체(쉘) 내부로 진입해 정체 모를 생명체와 마주하게 되고, 이들은 15시간 내 그들이 지구에 온 이유를 밝혀내야 하는데...

  <컨택트>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면 언어가 관계의 근간이고, 결국 관계라는 것은 상대방의 언어를 해석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언어학자는, 외계의 언어를 해독하는 중요한 임무를 받고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관통할 무언가를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가 어떤 일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일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어느 순간, 일이 일상이고 일상이 일이 되어버리는 때가 찾아온다. 하지만 일과 일상을 어떻게 칼 같이 구분하겠는가. 일이 끝나고도 일을 할 때, 일인 줄 알고도 행할 때는 묵묵히 그 일을 마무리해야할 필요도 있다.

  <컨택트>는 일상을 파고든 비일상 속에서 일을 통해 삶을 깨닫는 과정을 우아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외계인과 미확인 비행물체가 나오는 SF영화를 활용해서 보여준다니! 거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일의 의미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다. 일은 '밥벌이, 전공 살리기, 자아실현의 도구' 그 이상이 될 수 있을까. 일이 무엇인지 곱씹어봐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광범위하다랄까.

  오늘 꼽아본 영화들을 보면서 일의 의미를 다시 세우고, 일과 나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은 돌고 돌아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니까, 그 결론을 꼭 머리맡에 두고 고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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