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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쓰니 Oct 18. 2021

오늘 퇴사를 하고서야 그때의 네가 보이기 시작했어. ④

나도 어느새 낯선 사람이 되어있었던 거야.

    다 변하더라고 했다. 다른 환경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니 당연히 관계도 변해가더라는 게 S 언니와 H 언니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변한 관계는 모두 끊어지나요? 그렇진 않다고 했다. 어떤 관계는 변한 모습들을 좁히지 못해 완전히 멀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관계도 분명히 있다고.

    정확히는 돌아온다기보단 새롭게 정의되는 것 같았다. 달라진 환경과 방식 속에 달라진 서로를 다시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


    한동안 멈춰 두었고, 그래서 이곳으로 떠나올 때 두고 왔던 오랜 친구들과의 관계를 떠올려봤다.


    우리는 좁히지 못할 만큼 멀어져 온 걸까, 그럼에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걸까?

    나는, 그 친구들과의 관계를 놓아버리고 싶은 걸까 아니면 지키고 싶은 걸까?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퇴사 이전의 감정을 기억하는 M과 여전히 4 교대 근무에 치이고 있는 A.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M처럼 퇴사를 경험해보았고 A와는 달리 회사를 떠난 나.

    치앙마이에서 하는 거라곤 주로 넷플릭스를 정주행하고 때때로 외출하는 게 전부였던 내 일상은 단조로웠고,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던 예전에 비해 주로 듣는 쪽이 되곤 했다. 조금 더 자세해졌을 뿐 테두리는 크게 다를 게 없는 친구들의 일상. 그런데 그 조금의 자세함이 그들의 이야기를 사뭇 다르게 만들었다.


    “퇴사하기 직전까지도 동대문 새벽시장을 밤새 홀로 돌았었다고?”

    “병동 엘리베이터에서 도망가고 싶어 펑펑 울었었다고?”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던 장면들이 그려졌다. 적응해가는 줄 알았던 M이 실은 책임을 다하려고 애써 버텼던 거라는 거, 본인의 힘듦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 같았던 A는 사실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는 거. 당시엔 모르고 지나쳤던 친구들의 날들이 보였다.

    먼저 어른이 되어 멋있다는 말이 M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었을지, 별다른 고민 없이 건네는 힘들겠다는 말이 A를 얼마나 공허하게 만들었을지… 지난날 내가 M을 이해하지 못하고 A에게 서운했던 만큼, 그들 역시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테고 나만큼 서운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변한 것은 친구들뿐만이 아니었어. 나도 어느새 낯선 사람이 되어있었던 거야.


    어떤 이야기든 항상 되묻던 내가 그렇구나 하며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고, 보통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묻던 내가 혼자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굳이 물어보긴 귀찮아서, 당장 내 눈앞의 일들이 버거워서, 나의 하루가 더 큰 것처럼 느껴져서. 나의 적응기가 수월하듯 친구들의 시간도 그런대로 괜찮을 거라 넘겨짚던 안일한 날들, 몰래 고통의 무게를 비교해 위로를 얻거나 속상해하던 이기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그들이 변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들은 나도 똑같이 변한 모습들이었던 것이다.


    “있지, 그땐 나도 여유가 없었나 봐. 여기서 혼자 아무것도 안 하며 지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때 네가 그렇게 힘든 줄도 몰랐어. 그게 뒤늦게 미안하네.”

    “이제 지난 일인데 뭐. 그냥 다들 힘들었던 거지~”


    내가 떠나와서야 깨달은 걸 머물러 있는 중에도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 눈치 빠르고 세심한 건 내 몫이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나만 빼고 언제 이만큼 자란 거야? 답답했던 고민들이 허무하리만큼 가벼워진 기분이다.

    그래, 변해버린 게 속상했던 거지 잃어도 괜찮은 건 아니었어. 괜히 친구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주말 야시장에 나가 각양각색 기념품을 골라본다.




    한국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각자 바쁜 친구들과 따로따로 약속을 잡아 선물을 전달한 것.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단체 채팅방에서 누가 어떤 기념품을 가질지 시끄럽게 정했고 누구와 만나든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며 한 사람의 근황을 완성시켰다.


    우리들이 사회인으로서 이런저런 과정을 겪어낸 것처럼, 우리의 관계도 수월하거나 고단한 적응기가 필요했던 거겠지.


    예전처럼 다 같이 수시로 모이고 시시콜콜한 수다를 떤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달라진 모습들을 그런대로 이해하고 그런대로 받아들이면서 맞춰 나가는 중.


    치앙마이에서의 대화가 명쾌하게 매듭지어지진 않았지만… 우리의 변화를 우리대로 지나 보내는 게 변해가는 관계를 받아들이는 비법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름대로 매듭을 지어본다.

    보이지 않았던 걸 볼 수 있게 되고,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걸 들여다보게 되면서 지켜나가는 거라고.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이해해보려 하면서 이어갈 수 있는 거라고.


    적어도 이 관계를 잃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지.





TMI 한 스푼

왠지 친구들의 근황도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M은 요즘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패션 사업을 준비 중이고, A는 이러다 수선생님까지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으로만 퇴사를 외치는 프로 간호사가 되었다. 각자의 적응기도 잘 지나 보낸 멋쟁이 친구들. 참, 나도 내 식대로 잘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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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flat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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