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프더레코드 Oct 10. 2022

기일(忌日)

아직 마음으로는 보내드리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는 22년 전 돌아가셨다.

십년 만에 다시 온 두 번째 뇌졸중을 이기지 못했다.

그때도 아버지의 죽음에 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아버지의 첫번째 스트로크는 중학교 1학년 올라가던 1991년 1월 겨울이었다. 2개월 쯤 지나 아버지는 회복하셨고,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셨다.


이후 10년 동안의 나의 선을 넘은 방황이 아버지에게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고, 그게 쌓이고 쌓여 두 번째 스트로크로 이어졌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방황을 시작했다. 담배를 피웠고, 그때 표현으로 껄렁한 애들이랑 어울려 다녔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험을 앞두고 바짝 공부해서 당시 표현으론 '마산연합'이라는 8개 학교 중 하나인 창원고에 갔다.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일정 점수 커트라인을 통과하면 추첨으로 학교가 정해졌다.

원했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창원고에는 내가 하고 싶어했던 학내 그룹사운드(밴드)가 있었다. 물론 그땐 불법서클로 지정돼 있었다.

1학년 2학기 시작과 함께 밴드에 들어가 본격적인 방황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미쳤다. 자산동에서 창동으로 옮긴 지하 연습실에서 자고 집에도 학교에도 안 가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기도했고, 아버지는 반 포기하셨다.

그러다 나는 2학년 2학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쯤 밴드도 학교도 모두 그만뒀다. 자퇴서는 아버지께서 학교에 가서 냈는데, 어머니 말씀으론 아버지가 눈물이 고인 걸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러고 2년 동안 미친듯 공부했고, 검정고시 합격 뒤 거짓말처럼 서울대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내 앞에선 크게 기뻐하진 않으셨지만, 어머니 말씀으론 주위 분들에게 한 턱 내다 집구석 기둥뿌리 뽑을 뻔 했다고...


대학에 간 아들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끝물의 끝물인 학생운동에 몸을 던져 샤대문 밖 철거촌과 공단,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나는 3학년 겨울 초입, 그러니까 2000년 11월 갑자기 아버지에게 전화로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고, 그래서 결혼을 해야되겠다고 말했다.


내 고집대로 결혼 뒤 이듬해 6월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난 다음날 아버지는 두번째 스트로크로 쓰러졌고 두달 뒤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크게 바뀐 건 없었다. 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갚아야 할 빚들이 좀 있었고, 받아야 할 돈이 더 조금 있었다. 물론 베풀기 좋아했던 아버지 성격상 받아야 할 돈이 더 있었겠지만...


그러나 크면서 그렇게 애를 먹였던 녀석이 해야할 도리를 다 못했다는 사실과 두 번째 쓰러지기 전 아버지에게 계속 스트레스를 줬던 것 때문에 항상 미안하고, 그래서 피하고 싶고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기적을 기대하며 소독약과 특유의 병원냄새, 작은 한숨으로 가득 찬 보호자 대기실에 드러누워 보낸 더운 여름,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 병실을 지키고 계신 어머니와의 통화, 그리고 돌아가시기 2주전 "우야" 외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너무 반가웠던 마지막 통화까지. 그 모두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책임이 내게 있다는 생각과 믿음.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아내가 아버지 이야길 꺼내도 긴 말을 하지 않는다. 또 누가 아버지에 대해 물어봐도 그냥 공무원하셨고 재미있는 분이셨단 정도만 이야기하고 넘어간다.


작년 친동생으로 기는 후배 아버님의 병환 소식을 알게 됐을 때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머릿속이 복잡했고, 괴로웠다.  어떻게 해야 위로가 되고 힘이 될까.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내가 무슨 말을  자격이 되나. 표현할  없는 여러 생각의 조각들이 소용돌이쳤다. 그러다 지난 토요일 새벽 임종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후배에게 그동안 아무 말도 없어 서운했단 이야길 들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내 나이가 지금 내 아들의 나이와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아버지는 마치지 못한 과제처럼 마음 한 구석에 남겨져 계신다. 언제쯤이면 아버지를 마음으로 보내드릴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 수록 미안한 마음만 깊어지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둠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다.


지난해 기일, 그러니까 2021년 8월 12일 쓰기 시작했지만 서랍에 놓아 두었던 글을 이제 마무리한다.










작가의 이전글 [연재소설]전쟁의 기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