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인문학
내가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알게 된 건 몇 년도인지 기억도 안나는 초등학생 시절 들뜬 마음으로 놀러 간 사촌 형 집에서였다. 내가 모르는 게임도 가득했거니와 컴퓨터마저도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스타크래프트라는 존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 Real Time Strategy)이라는 장르도 생소했지만 동년도에 그 정도 퀄리티를 가진 게임이 없었기에 스타크래프트를 소개해주는 사촌 형의 목소리도 들떠있었다. 나풀거리는 뮤탈리스크의 날개와 기괴한 뮤탈리스크의 음성, 그리고 조금 징그러웠던 뮤탈리스크의 입을 강조한 인게임의 유닛 화면이 스타크래프트와의 첫 만남이다.
다 커서도 어려운 조작이 어릴 땐 쉬울 리가 없다. 마우스를 가지고 몇 번 움직이다가 적 유닛을 몇 번 공격해보는 것으로 한동안 스타크래프트를 만날 일은 없었다. 어느 날 대한민국 곳곳에 광랜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지역 여기저기에 PC방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PC방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하고 있던 게임은 당연 스타크래프트였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히드라와 마린을 테마로 한 PC방이나 노래방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당시 컴퓨터를 구매하면 스타크래프트의 데모 버전을 플레이할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데모 버전에 맛들려 PC방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내 랭킹이 존재할만큼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학생들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방과후에 학원을 땡땡이치고 게임하러 PC방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런 친구들을 잡으러 오는 부모님 역시 많았다. 귀를 잡혀 나가면서도 “제발 이 판만...”을 외치는 장면을 무수히 많이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선 스타크래프트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당시의 열혈남아들은 “너 공부 못하지”라는 소리는 참을 수 있어도 “너 스타 허접이라며?”라는 소리에는 주먹다짐이 일어날 수 있었다. 실제 1:1경기가 일어날 때까지 상대의 실력을 비하하는 썰전이 벌어지는데 친구들이라는 래퍼리(Referee) 앞에서 경기가 벌어지고, 승부가 나면 의외로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학생들이 많아 스포츠맨십을 기르게 해 준 고마운 게임이다. 친구들 간의 전적을 바탕으로 교내 랭킹이란 것도 존재했고, 왜인지 모르게 게임이 아닌 모든 학생의 전적을 기록하고 랭킹을 매기는데서 희열을 느끼는 교내 Kespa역할의 친구가 항상 존재했다.
당시 래더 게임을 할 피지컬이 안 되는 친구들도 유즈맵은 자주 플레이하곤 했는데 빨무, 포토 겹치기, 넥서스 뿌시기, 포켓몬스터 등 "이런 것까지 스타로 구현될 수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고퀄 유즈맵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전문가, 초보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드는데 유즈맵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스타크래프트는 방송 콘텐츠로도 꽤 성공했는데 곰TV, OSL, 스타 프로리그 등 한 때 엄청난 시청률과 함께 '온게임넷'을 폭풍 성장시키기도 했다. 특히나 리그제, 게임방송 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엄전김(엄재경, 전용준, (구) 김캐리, (신) 김정민)'의 해설은 게임 해설계의 송해처럼 이들의 해설은 시청의 재미를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최근에 이들의 해설을 담은 '보이스 팩'이 출시하기도 했다. '엄전김'은 지금도 스타크래프트 이외의 해설로도 활동하고 있다.
리그의 인기는 선수들의 경기력에서 비롯된 개개인의 별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황제 임요환, 천재 테란 이윤열, 폭풍저그 홍진호, 투신 박성준, 사신 오영종부터 임진록(임요환 홍진호), 택뱅리쌍(김택용, 송병구, 이영호, 이제동) 등 쟁쟁한 라이벌 구도에 이름을 붙여가며 팬덤을 형성했다.
지금은 90년대 아이들이 자라서 돈과 시간이 생기더니 다시금 친구들과 모여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친척이나 친구들이 명절날 고향에 모여 스타크래프트로 내기를 하는 모습이 명절의 민속놀이를 연상시켜 인터넷상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우리나라의 민속놀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꽤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추억을 나열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다. 얼마 전 우연히 스타크래프트라는 추억을 꺼내고 그것을 글로 헌사하며 어릴 적 친구들과의 추억을 곱씹어보고 싶었다. 특히 몸과 마음이 다 자라서 플레이한 스타크래프트는 치열함은 덜해졌지만 인간사와 닮은 세종족의 이야기에 애착이 생겼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게임 속 스토리와 설정을 연구하듯 공부해보려 한다. 학문의 분야로는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주제와 내용에 즐기며 할 수 있지 않을까? 원고가 완성된다면 희소성 있는 대중강연도 가능할 것 같다. 이름도 벌써 '스타크래프트의 인문학'이라고 지어봤다. 우선 스타크래프트의 배경이 되는 캠페인 스토리를 따라가며, 테란과 프로토스 그리고 저그의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세 종족의 체제를 분석해보려 한다. 평소에 시도해보지 않은 헛짓인 만큼 개인적으로 즐거운 공부가 될 것 같다.
#만렙백수윤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