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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Jul 26. 2019

인간이 되고 싶었던 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된 짐승과

짐승도 못된 인간들의 이야기...


  옛날 옛적 지금은 금강산이라고 부르는 그곳에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숲과 풍족한 먹잇감이 있는 그곳은 최상위 포식자인 곰과 호랑이가 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땐 서로의 강함을 알아보고 일찍이 누가 더 힘이 센지와 같은 무의미한 경쟁을 그만두고 둘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곰은 먹이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갔다가 평소 산에서 보던 짐승과는 다른 특이한 동물을 볼 수 있었다. 발이 네 개나 있으면서도 새들처럼 두 발만 사용해서 걷고, 그들의 연약한 가죽 위에는 다른 동물의 가죽이 덧대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걷는 데 사용하지 않는 두 앞발을 이용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곰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금강산의 모든 짐승들이 무서워한다는 불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곰은 돌아가서 호랑이에게 자기가 본 것을 말했다. 성미가 급한 호랑이는 후환이 될 수 있으니 우리가 먼저 그 동물을 공격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곰은 그들은  짐승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불을 가지고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호랑이는 평소 신중한 성격의 곰을 믿고 그의 말을 따랐다. 새로 발견한 동물을 부를 이름이 필요했기에 곰과 호랑이는 그 동물을 '인간'이라고 불렀다.


snow ladscape - pixabay



  금강산에도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먹이는 풍부한 편이었지만 가죽을 뚫는듯한 찬바람과 바위만 한 눈을 비집고 나가 사냥을 하기란 곰과 호랑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 번씩 나갈 때마다 넉넉히 사냥을 해서 함께 겨울을 보내기 위해 마련한 동굴에 놓고 아껴 먹기로 했다. 곰이 인간을 다시 만난 것은  사슴을 쫓아 산 아래로 내려갔을 때였다. 그들은 전보다 머릿수가 더 늘어있었는데 그들의 집에는 초식동물이나 먹는 풀이나 곡식들이 쌓여있었고 한켠에는 사슴고기도 제법 쌓여있었다. 곰은 인간이라는 동물을 잊고 지내기도 했지만 이 추운 겨울을 연약해 보이는 인간이 금강산의 어느 동물보다 풍족하게 보내고 있는 모습에 놀랐다. 곰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나뭇가지를 모으고 있는 인간을 발견하고 말을 걸기 위해 그 인간에게 다가갔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동물이여 그대는 나를 보고 왜 무서워하지 않는가?"

  사실 눈 앞에 곰이 나타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지만 곰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을 믿고 곧 평정심을 찾고난 뒤 곰에게 말했다.

  "내가 놀랄게 무엇이 있겠는가 자네가 이리로 올 줄 알고 있었네 친구여"

  "우리 둘의 생김새가 다른데 어찌 친구라고 할 수 있나? 적어도 서로가 인정할 만큼의 강함이 있다면 호랑이와 같은 친구가 될 수 있겠지만 너는 딱 보기에도 약하지 않은가?"

  기세에 밀리면 죽음뿐이라고 생각한 남자는 온갖 지식을 끌어모아 목숨을 부지 할 방법을 생각했다. 문득 자신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보고 나서 곰에게 다시 말했다.

  "나는 곰과 호랑이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지... 우리 인간은 모든 짐승들이 무서워하는 불을 다룰 수 있는 것을 알고 있겠지?"

  '불'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곰은 몸을 움츠렸다. 오래전 비가 거의 없던 가을 번개가 떨어진 나무에 불이 붙어 호기심으로 다가갔다가 화상을 입은적이 있었다. 그덕에 한동안 사냥을 못해 호랑이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 무서운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인간이 일순간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에헴... 그럼 인간...아니 친구여 혹시 우리에게도 불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겠는가? 우리도 불을 무서워하지만 그런 불을 자네들처럼 우리의 무기로 가지고 싶네만..."

  곰의 말을 들은 남자는 황당한 곰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빨리 이 공포스러운 곰과의 대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곰에게 무언가 불에 대한 힌트를 주지 않으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조금 고민하는 척하다가 곰에게 말했다.

  "불은 우리들의 아주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에 그냥 줄 순 없네 하지만 이 겨울이 가기 전까지 멧돼지 10마리, 사슴 20마리, 토끼 30마리를 잡아 우리들의 배고픔을 조금 해결해 준다면 봄쯤엔 내 기꺼이 알려주지..."

  그 얘기를 듣고 곰은 기쁜 얼굴로 말했다.

  "물론이지 그렇게 하겠네 자네도 그 약속을 꼭 잊지 말게 저기 나무 옆 큰 바위에 잡은 사냥감들을 올려놓겠네 그럼 봄에 보지..."

  곰은 방금 전 사냥했던 사슴을 바위 위에 약속의 증표로 올려놓고 어슬렁어슬렁 산으로 올라갔다.



  동굴로 돌아온 곰은 이 사실을 호랑이에게 말했다. 사냥하러 갔다가 먹이마저 인간에게 주고 온 곰에게 미련하다고 놀리면서도 강함을 동경했던 호랑이도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곰의 말에 조금 흥미가 생겼다. 겨울이라 먹이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곰과 호랑이는 인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멧돼지와 사슴과 토끼를 사냥해 약속한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한편 인간의 마을에선 곰과 호랑이를 부려 겨울철 식량난을 해결한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떤 이가 흉폭한 곰과 호랑이가 청년에게 절을 하고서 유유히 산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신이라는 소문도 생겨났다. 촌장이었던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동물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젊은 청년을 왕으로 모시고, 하늘에서 내려온 임금이라는 뜻에서 환인(桓因)이라고 불렀다.




  약속한 봄이 되자 곰과 호랑이는 환인을 찾아왔다. 곰과 호랑이는 본인들은 못 먹어가면서 열심히 인간들을 위해 사냥을 한 탓에 털은 거칠어지고 조금 야위었다. 하지만 곧 불을 다룰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들떴다.

  "우리는 자네와 한 약속을 모두 지켰네 이제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게나"

  환인은 곰과 호랑이가 바위 위에 사냥감들을 올려놓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정말 약속을 지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 되도록 그들이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불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자네들이 걸을 때나 사냥감을 잡을 때 사용하는 앞발을 좀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 이 앞발을 사용하려면 인간이 되어야 하네 그래도 괜찮겠는가?"

  호랑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의 강인한 육체를 포기하고 연약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니... 지금도 불만 없다면 인간을 전부 잡아먹을 수 있을텐데 어쩌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겨울에 그 고생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신중한 성격을 가진 곰이 호랑이에게 말했다.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 될지언정 모든 짐승이 무서워하는 불을 다룰 수 있으니 괜찮지 않은가?"

  이내 곰과 호랑이 모두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하여 인간이 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환인에게 물었다. 환인은 인간이 되는 것을 포기할 줄 알았던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를 희망하자 좀 더 독한 방법을 떠올렸다.

  "에헴... 사실 우리도 자네들처럼 짐승이었지만 저기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100일 동안 먹었더니 인간이 될 수 있었네..."

  환인이 가리킨 곳에는 들판에 널려 있던 쑥과 풍년으로 인해 처치 곤란한 마늘 다발이 쌓여있었다. 보기에도 역한 냄새가 풍기는 풀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호랑이는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걸 먹어야 한다는 건가? 정말 자네들은 저걸 먹고 인간이 되었단 말이지?"

  "물론이지 단 인간이 되고자 하는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하네 동굴 속에서 빛을 보지 않으면서 육식을 하지 않고, 오로지 쑥과 마늘만 100일 동안 먹고 나를 찾아온다면 인간으로 만들어주지"


  환인의 말을 듣고 동굴로 돌아온 곰과 호랑이는 곧바로 쑥과 마늘을 동굴 속에 넣어 놓고 뜯어 먹으면서 인간이 되면 어떨지를 생각했다. 곰은 인간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보기로 했다. 분명 불이라는 무기만으로는 그들이 풍족하게 먹으며 머릿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인간만이 가진 또 다른 무기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신이났다. 반대로 호랑이는 오로지 불이라는 강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참고 인내했다. 앞발의 힘을 기르기 위해 단단한 나무를 부수며 연습하고, 뒷발의 힘을 기르기 위해 널찍한 바위를 도약했던 훈련에 비하면 먹는 것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일주일이 조금 지나자 곰은 점점 인간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굴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인간처럼 가부좌를 틀어 앉기도 했고, 쑥과 마늘 때문에 속은 쓰리지만 인간들의 속담인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를 외우며 수련의 경지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호랑이는 달랐다. 초식동물도 아니고 고기 대신 쑥과 마늘을 먹는 호랑이라니 우선 체면이 서질 않았다. 무엇보다 먹는 것은 둘째 치고 동굴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하고 싶은 본능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호랑이는 새벽이 되자 친구인 곰에게 미안한 마음에 말도 하지 않고 동굴을 나가버렸다. 곰은 호랑이가 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하기로했다. 곰은 어느새 인간의 마음마저 닮아있었다.

  50일이 지났다. 이제 곰은 쑥과 마늘을 불을 얻기 위해서 먹는 것인지, 인간이 되기 위해 먹는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오히려 정신은 인간이지만 곰이라는 육체에 갇혀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호랑이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곰이 가진 본능을 버려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인간이 되면 힘을 과시하지 않고, 약한 동물을 괴롭히지 않으며, 이타적인 삶을 살 것을 다짐하며 쑥과 마늘을 뜯었다.

  80일이 지났다. 곰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인간이 되려고 한다면 왜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고 곰으로 태어난 것인가?' 혹시 인간의 말처럼 태초에 신이 있고 동물은 각자의 기능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면 '곰으로 태어난 나는 곰의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들은 각자가 가진 개성을 존중해주고 그 개성을 꽃피우려고 노력하는데 왜 곰인 나는 '내 개성을 말살하고 인간의 개성을 심으려고 하는가?' 점점 인간이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갖게 되었다.

  99일이 지났다. 육체는 힘들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은 느낌이었다. 이제 곰의 삶이 더 좋은지 인간의 삶이 더 좋은지에 대해서 곰은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득도라기 보다는 100일 째가 다가오니 어서 이 힘든 고통을 끝내고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쩌면 이런 안일한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이미 인간에 가까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0일이 되어 넝마가 된 몸을 이끌고 동굴에서 마을로 내려갔다. 인간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친 몸에도 두발로 직립해 인간의 마을로 걸어갔다.

  "내 친구 환인이여 인간이 될 준비가 되었네..."

  "곰 내 친구여 어서 오게나..."

  환인은 자신의 앞에 다시 나타난 곰을 보고 첫 만남 때와 같이 놀라진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병사의 창을 빼앗아 들어 곰을 찔러 죽였다. 날카로운 인간의 창을 받아 낼 힘이 남아있지 않던 곰은 그 자리에서 쓰려졌다. 곧바로 곰의 시체는 지난 겨울 호랑이와 곰이 사냥감을 올려 두었던 바위 위로 옮겨져 가죽이 벗겨지고 불이 피워졌다.


  "역시 환인님은 대단하지 않나요?...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 속에서 푹 숙성된 녀석이라 그런지 그 흔한 잡내 하나 없이 아주 맛있는 고기가 생겼네요..."

  "그러니까 이 곰은 설마 정말 자신이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아휴 그러니 예전부터 미련 곰탱이란 말이 있잖아요."

  "정말 미련한 곰이로구만!"


  환인의 결혼식이 있던 그날 마을 사람들은 모두 풍족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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