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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Jul 01. 2019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알탕'이다.

화순 시골의 알탕 잘하는 그 집 어부마을

  1997년에 IMF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쳤다. 당시 8살 꼬마였던 내가 느낀 IMF는 그저 친구들이 모이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해야 하는 나쁜놈이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무슨 죄라고...) 우리 가족이 외환위기를 겪을 일은 없겠지만 당시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인해 소중한 보금자리를 은행에 내어줄 정도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유치원을 다녀오니 말도 없이 집이 이사하게 되었는데 어른들이 말하지 않아도 당시 꼬마였던 나는 상황을 대충은 이해하고 묵묵히 어른들을 따라갔다...

  이사하게 된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새식구가 된 내 동생을 포함한 여섯 식구가 같이 살게 되었다. 보증을 섰던 아버지는 면목이 없었고 침체된 가정에서 그나마 동력이 남아있던 사람은 대장부 기질의 어머니였다. 일하고 배운 것이 요리였던 그녀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라남도 화순군이라는 작은 시골에 '어부마을'이라는 음식점을 차렸다. 가게의 자리가 몇 번은 옮겼지만 그렇게 22년 동안 화순을 지키고 있다.


어부마을 알탕의 모습


  대구탕, 아구찜, 버섯육개장, 대구뽈찜, 정어리 쌈밥 등 22년 동안 수많은 메뉴가 메뉴판에 오고 갔지만 그중 부동의 판매 1위이자 무려 22년 간 메뉴판을 지키고 있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알탕이다. 식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뜨끈한 뚝배기에 알과 곤이가 가득 담긴 매콤한 자태의 알탕은 내가 아는 최고의 해장국이다. 6개월을 채 못 넘긴 다는 자영업의 폐업 주기로 보았을 때 한 지역에서 무려 22년이나 팔고 있다는 말은 검증은 이미 끝났다는 말과 같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화순에서 '알탕?'하고 물어보면 바로 '어부마을'이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이다. 지금은 '알탕'과 함께 '아귀찜', '해물찜' 등의 메뉴와 함께 화순군민의 대표 식사메뉴이자 맛깔난 술안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의 재치가 묻어있는 광고 전단지 - <전남 화순군의 어부마을>


  보증으로 인해 의기소침했던 아버지가 그저 '빛'이 되는 때가 있었으니 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전단지를 만들 때였다. 아버지와 컴퓨터 앞에 앉아 전단지 디자인을 할 때면 '이런 아재 개그를 왜 전단지에 쓰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가게를 수놓은 전단지들을 다시 보고 있으면 시대를 풍자함과 동시에 감성을 살리고 더불어 홍보까지 하는 아버지의 감각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쉽게 뿌려지고 또 쉽게 버려지는 전단지겠지만 어부마을의 역사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단지라는 본인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로 나타낸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2017년 3월 뇌출혈로 급작스레 돌아가셨다. 평소 몸이 안 좋으신 줄은 알았지만 뇌질환이 아버지를 데려갈 줄은 몰랐다. 아버지를 추모관에 모시고 들었던 생각은 왜 아버지를 어려워해 술 한잔을 하지 못했었나... 그리고 왜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더 슬퍼하지 못했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해가 어부마을의 20주년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2년이 지나 가게의 22주년을 기념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어부마을은 알탕을 팔고 있다. 이상하게 추모관으로 향하는 길은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들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던 알탕과 벽면에 수 놓인 전단지에서 아버지의 향수를 대신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별미이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해 알탕을 먹는다.


어머니의 알탕이 나의 8할 정도는 키운 것 같다...


  집밥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만 식당집 아들한텐 가게의 메뉴가 곧 내 집밥이었다.(가게 때문에 집밥에 좀 소홀하셨던 탓도 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22년 간 내가 먹어치운 알탕 뚝배기 숫자가 얼마나 될까? 대개 '빵집 아들은 빵을 하두 먹어 빵이 물린다.'라고 하던데... 이상하리만큼 어머니의 알탕은 질리지가 않는다. 맛도 있거니와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려있고 또 이 알탕을 팔아 어머니가 날 키워낸 것을 생각하니 내 인생의 소울푸드 중 '알탕'만 한 게 없지 않은가

  예고 없는 여름 장마가 찾아온다고 한다. 꿉꿉한 날씨를 피해 화순에 있는 조그만 식당 '어부마을'에 잠깐들러 시원한 알탕 한 그릇 어떤가?



마지막 컷은 어부마을에선 찜을 먹고 나면 이렇게 볶음밥을 해준다.


  


#만렙백수윤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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