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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Sep 21. 2019

#1 백수는 지금 다크투어 중

백수는 지금 다크투어 중


후쿠오카로 향하는 비행기 안 태풍 링링의 영향권이 남아있는지 밖엔 비가 오고 있다.


'어둠 dark' 그리고 '밝음bright' 


  후쿠오카로 출발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운전하는 창밖으로 거뭇거뭇한 구름이 여럿 보이더니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부턴 아예 빗줄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이륙 후 내가 볼 수 있는 것도 새하얀 구름뿐이었다. 


  평범한 여행이었다면 풍광을 가리는 구름이 원망스러웠겠지만 지금은 왠지 짙게 깔린 구름이 너무나 고마웠다. 파란 바다도, 멀리서 조그맣게 보이는 마을도 구경할 수 없는 이 구름이 있는 동안에는 혹시나 들뜰 수 있는 마음을 누르고 이번 여행은 어떤 여행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크 dark’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다크 dark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생각보다 일상에서 다크라는 단어를 자주 볼 수 있다. 초콜릿보다 더한 농도의 다크 초콜릿이 있고, 어두 컴컴한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크 블루, 다크 퍼플, 다크 버건디라는 색 옷을 애용하며, 어떤 이는 어두 침침한 분위기의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RPG 다크 소울을 플레이한다. 다크는 어떤 색이라기 보단 ‘어두움’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두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밝음bright’이다. 밝다는 것은 빛이 많은 상태이고, 어두움은 빛이 전혀 없는 암흑의 상태인 것이다. 



아우슈비츠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그럼 다크 dark와 투어 tour의 결합어인 다크 투어란 무엇일까?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는 용어는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 (Glasgow Caledonian University)의 말콤 폴리(Malcolm Foley)와 존 레넌(John Lennon) 교수가 함께 쓴 『Dark Tourism』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전쟁, 테러, 재난,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둘러보는 일종의 역사교훈 여행이다. 대표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400만 명이 학살당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는데 인간이 저지른 과거의 어두운 현장을 둘러보고 인류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생체실험실, 고문실, 가스실, 처형대, 화장터 등과 함께 희생자들의 생활용품, 기록물 등 당시 나치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끔 구성해 놓았다.


  그 밖에도 9·11 테러가 발생했던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원자폭탄 피해 유적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평화기념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는 한국전쟁 전후로 엄청나게 많은 양민이 희생된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비롯하여 군부에 의해 헌정질서 파괴는 물론 부당한 공권력으로 국민 다수의 피해가 났던 광주 5·18 민주평화 교류원 및 망월동 묘지 그리고 거제 포로수용소 등이 있다. 


  또한 다크투어는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이라고 부르는 등 다양한 용어가 있지만 지금은 주로 ‘다크 투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이번에 둘러볼 여행지도 일반적인 휴양 목적의 여행지와는 다르다. 조선과 얽혀있는 일본의 사상과 인물을 알아볼 수 있는 야마구치현의 하기시,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으로 대표되는 야하타 제철소와 군함도 등 일본이 감추고 왜곡하려는 역사 유린의 현장을 방문할 생각이다. 마음이 무거운 여행인 만큼 역사에 대한 사전 공부도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여행을 가지 않고 사전 공부만으로도 대강의 역사는 알 수 있겠지만 여행을 통해 공부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춰야만 비로소 ‘역사’를 ‘인식’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카타역 근처의 거리 모습


  늦은 오후 도착한 후쿠오카의 날씨는 맑았다. 내일은 야마구치현으로 떠나야 하기에 숙소는 기차역과 가까운 하카타에 잡게 되었다. 어둑해지는 도시의 거리는 이국 땅이라도 별다를게 없이 비슷했다. 퇴근한 사람들이 오가고 주점들은 슬슬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튿날의 계획을 세울까 하다가  짐만 풀고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여행에서 계획이 거창하면 그 계획을 따라가느라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처럼 ‘무엇을 꼭 얻고 가겠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이번 여행의 템포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은 되도록 적게 둘러보고 많이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낯선 이국 땅 일본이 어두운 곳에 감추려는 것은 무엇이고, 또 내가 빛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피곤한 몸과는 다르게 정신은 또렷해지는 첫날밤이다.




본 글은  우리도 모르고 있던 아픈 사실을 찾아내고, 일본이 감추려는 역사적 사건들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크투어 일기입니다. 우리 역시 역사인식이 필요합니다. 알아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백수는 지금 다크투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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