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언제부턴가 청새치를 잡고 싶었다.
푸른 대양에서 청새치를 낚아 올리는 낚시꾼의 모습은 늘 마주하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 혹은 공상과도 같았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육중한 덩치와 그 머리에 솟은 거대한 창살은 그야말로 바닷속 유니콘의 형상이었다.
내리쬐는 햇살에 빛나는 비늘과 함께 반짝이는 솟구친 물결 방울들. 이야말로 도심의 번잡함, 반복되는 일상과는 정 반대편에 위치한 세상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고 광활한 바다 위로 나가는 일도, 배를 타고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떠 있는 일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어떤 거대하고 빛나는 목표를 뒤쫓는 일도, 그에 수반될 비 일상적 시간과 비 현실적 비용까지도 한 화폭에 어우러진 일종의 초현실처럼 느껴졌다.
이른바 현실이란 세상이 끝없이 내주는 숙제와도 같아서 스스로 숙제를 해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 이상 쳇바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다. 훨씬 멋진 내일을 꿈꾸지만 발전적인 변화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때때로 '멋진 내일' 대신 완전히 '다른 내일'을 상상하는 방식으로 지친 마음의 도피처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상만 하는 일은 좋아하지도 않고 스스로 용납하지도 못하는 까닭에 상상 속 청새치를 현실에서 마주할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청새치 낚싯배에 오르기 위해서는 태평양 인근 나라들의 어선을 섭외해야 했으므로 해당 지역으로의 여행 경비가 기본적으로 필요했다. 어선 섭외의 경우 지역에 따라 차등적이지만 하루 12시간 출조를 기준으로 했을 때 미화 약 500~700 달러는 예상할 필요가 있었다. 만일 수 일간의 여정을 고려한다면 24시간에 약 1,100 달러 수준 정도가 가장 저렴한 청새치 잡이 낚싯배였다. 필요한 장비들은 어지간한 프로급이 아닌 이상 낚싯배 업체에서 대여하는 장비를 사용하면 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출조하여 청새치를 만날 가능성, 그리고 이 환상의 어종을 낚아 올릴 낚시꾼으로서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였다. 이는 단발적인 노력보다 긴 시간 투자와 수많은 실패를 통해 메워야 하는 성질의 문제였고, '청새치'의 경우 무턱대고 이른바 '초심자의 행운'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상상 속 이야기를 현실에서 해결할 문제로 고체화시키자마자 순식간에 설렘과 즐거움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에 고운 재 한 삽을 던져 넣은 형국으로, 이른바 진짜 로망과 가짜 로망이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처음부터 명확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던 것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내리쬐는 불볕과 그 아래의 투명한 대양,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의 모습이었다. 마주한 현실을 기꺼이 뒤로 하고 찾아 나서고 싶었던 곳은 수면 아래 어딘가에 청새치가 휘젓고 다닐 어느 미지의 바다였다.
청새치 낚시에 대해 상상하며 온전히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거기까지였다.
해가 갈수록 부풀려진 허상과 알맹이를 구분하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하곤 한다. 청새치를 잡고 싶다는 소망이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그 절반은 제멋대로의 허상, 나머지 절반만이 진실이었음이 드러났을 따름이다. 스스로 품었던 '청새치'라는 작은 꿈의 실체가 모래 위의 신기루처럼 나약했다는 사실에 허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언젠가 한 번쯤을 속삭이며 마음속 버킷에 담아둔 하나의 잠재적 보물이었던 까닭이다.
잃는 것이 있다면 늘 얻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여전히 먼 곳에 숨 쉬는 꿈인 청새치 낚시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지나친 기대로 인해 부풀려진 허상이 차츰 걷히면서 가장 깊은 곳에 품은 꿈의 형태를 새삼 깨달았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빠, 그게 뭐야?"
딸아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내가 지켜보던 영상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화면에서는 노련한 낚시꾼이 태평양 어딘가의 해변에서 청새치와 여유로운 사투를 벌인 다음 승리를 거두는 중이었다. 우리 부녀가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 낚시꾼은 몸체 길이가 1.2 미터가 넘는 청새치의 뿔과 몸체를 쥐고 물밖으로 들어 올린 뒤 자신감 넘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전리품을 투명한 바다로 되돌려 보냈다.
짧은 시간 함께 영상을 지켜보았지만 딸에게는 멋진 뿔이 달린 푸르고 거대한 물고기도, 까무잡잡하고 자신만만한 낚시꾼도, 푸르기 그지없는 태평양의 해변도 모두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낚시꾼이 다 잡은 물고기를 요리해서 먹지 않고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주는 장면이었다.
"아빠, 왜 잡은 물고기를 왜 안 먹고 돌려보내주는 거야? 물고기 낚시는 요리 재료를 구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꼭 그렇지는 않아. 저 낚시꾼은 운동이나 취미로 물고기를 낚아 올린 다음 항상 다시 풀어주던 걸. 팔씨름 알지? 팔씨름처럼 물고기와 서로 잡을 수 있나 없나를 겨루는 시합 같은 거야."
"그럼 우리도 저 청새치랑 시합하러 가면 안 돼?"
여전히 태평양이나 낚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리고 이제부터 차근차근 계획하고 준비해야겠지만,
이렇게 청새치를 잡으러 갈 일이 생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