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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Oct 31. 2022

늑대가 나타났다

거짓말쟁이들의 마을 - 1


소년은 놀이터 벤치에 홀로 남아 있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같이 놀던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중 누군가가 데리러 오지 않은 유일한 아이라는 사실이 서러웠는지도 모른다. 신발이 흙탕에 젖어 질퍽해졌다는 불쾌감에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울어야 할 때가 되어 한번쯤 맘껏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른여섯 살 소년만큼이나 여섯 살 소년의 심경도 복잡한 법이다.


해질 무렵 놀이터 모래밭을 비추는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면 소년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하곤 했다. 삭막한 엘리베이터와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늘 어두웠다. 어른들이 귀가해도 실내는 늘 차갑게 느껴졌고 조명을 전부 밝혀도 집안은 여전히 침침했다. 메마르고 차가운 형광등 빛이 싫었던 소년은 햇볕의 온기가 남아 있는 석양을 끝까지 지키며 서쪽 하늘이 보이는 어딘가에 앉아있곤 했다.


특별히 슬프거나 우울한 일이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식사나 잠자리를 챙겨주는 이른바 어른들은 친척이나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곁을 대강 지켰지만 하나같이 꼬마를 방치하지 않는 선에서 방치하는 일에 탁월했다. 여섯 살 소년은 늘 스스로에 묻고 답을 구해야 하는 세상에 지쳐 있었다. 어느 누구도 여섯 살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해주지 않았고, 또래와 교류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외롭다'는 어른들의 단어를 자신의 상황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저 세상은 조금 불친절한 곳이구나, 생각할 따름이었다.


소년에게는 두 가지 믿음이 있었다. 언젠가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또 다른 하나는 누군가와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때로 단순한 소망이나 믿음을 넘어선, 일종의 확신임에도 이를 표현할 어휘를 찾지 못해 그저 믿음이라 비약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 소년이 가진 믿음이란 바로 그와 같은 모양새에 가까웠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알고 있다.'

소년의 귓가와 가슴 언저리를 늘 맴도는 생각이었다.




오렌지빛 석양은 서서히 하늘의 푸른빛과 섞여 사라져 갔다. 노을에서 다시 놀이터로 시선을 돌리는 소년의 눈에 커다란 늑대 한 마리가 들어왔다. 늑대는 붉은 그네 한쪽 구석에 앉아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밝은 호박색 눈빛에 소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거대한 짐승은 몸을 사뿐 일으키더니 소년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지만 다가오는 늑대로부터 벗어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뒤쪽의 경비실을 향해 달릴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를까?

재빨리 엄마나 아빠를 외치며 달려나갈까?


어느 하나 마땅치 않았다. 결국 여섯 살 소년은 눈을 꼭 감기로 했다. 눈을 감고 이곳에 없는 척 숨 죽이고 있으면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나갈 거라 되뇌며, 눈을 굳게 닫고 양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덮었다.


세상은 고요했다. 지나칠 정도로 고요했다. 코앞에 늑대가 있건 공룡이 있건 이미 문을 걸어잠갔으니 어떠한 불청객도 결국은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소년은 굳게 믿었다. 가녀린 믿음이야 어찌 되었건 바람은 문이 열린 곳을 향해 불고, 물은 길이 놓인 곳을 향해 흐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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