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ssian Nov 21. 2022

늑대가 나타났다

거짓말쟁이들의 마을 - 4


땅에 바싹 엎드려 흙내음을 맡았다. 습기 가득한 달밤 아래의 흙덩이에서는 한낮 햇볕에 잘 마른 땅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향기가 느껴졌다. 다시 고개를 들어 타오르는 모닥불로 시선을 옮긴 순간 불꽃 너머로 무언가가 보였다. 숨을 죽이고 불꽃 저편을 살피던 중,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거대한 은회색 늑대였다. 이후부터 늑대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나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서로의 모습이 간신히 보이는 거리에, 모닥불을 피우는 밤에는 항상 불꽃 반대편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 늑대를 하얀 바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얀 바람은 짖거나 울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를 먹잇감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이 해소되었다. 한낮의 여정을 마치고 야영지를 만들기 시작하면 하얀 바람은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가 식사거리를 구해 왔다. 사냥이라는 불확실한 수단 탓인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은 들쑥날쑥했지만 그가 나타날 무렵은 항상 불길이 가장 거세게 타오를 즈음이었다.     


하얀 바람은 잠들지 않았다. 깊은 밤 눈을 떠 보면 곁에 앉아 항상 하늘의 달이나 별을 조용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기척을 내어도 이쪽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밤하늘만을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그 눈에 비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 뒷모습에는 우리가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릴 때 내뿜는 공기가 서려 있는 듯했다.






아침햇살에 눈을 뜨면 하얀 바람은 항상 지평선 어딘가에 우뚝 서 있었다. 처음에는 애써 그를 무시하고 원래 나아가던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사막 위의 이정표처럼 서 있는 늑대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저 그림자 너머에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는 환상을 품게 만든 까닭이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서 문득 떠오른 의문.

'늑대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인가, 혹은 내가 늑대의 발자취를 좇고 있는 것인가.'


나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